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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험·논쟁·사회성 문제적 예술 … 활짝 핀 베니스

중앙일보 2015.05.11 00:42 종합 25면 지면보기
2015 베니스 비엔날레 은사자상 수상작인 임흥순 감독의 ‘위로공단’ 상영 장면. 미술 전시장과 극장의 구분이 없어졌다. 전시장 중간의 방에서 관객들은 95분짜리 긴 영화를 소화했다. 1970년대부터 현재까지 아시아 여성 노동의 역사를 다룬다. [사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캄보디아 프놈펜, 우리의 과거가 저들의 현재로 확산되는 현장이다. 봉제 공장 기숙사에서 앳된 소녀가 말했다. “한 달에 110달러 벌어요. 정말 몸이 아파서 매니저에게 말했다가 꾸지람만 들었어요. 돈 벌어서 언젠간 학교 가고 싶어요.” 이번엔 서울, 중년 여성의 인터뷰다. 봉제 공장에서 일하다 폐결핵에 걸리면 술집으로들 나갔죠. 그런 언니들을 길에서 만나면 ‘아는 척도 하지 말아라. 병 걸리지 말고, 이런 데 오지 말아라’고 했어요”라고 돌아봤다. 화면은 검은 밤하늘에 흰 벚꽃이 우수수 떨어지는 영상으로 전환된다. 불야성의 서울에선 불꽃놀이도 한판 벌어진다. 이 풍요의 뒤안길에서 얼마나 많은 꽃다운 청춘들이 스러졌을까. 애잔하다.

경계 사라지는 현대미술
임흥순 ‘위로공단’ 뜨거운 반응
관객 “노동의 문제 알게 됐다”



 제56회 베니스 비엔날레 미술전 본전시에 출품된 임흥순(46)의 영화 ‘위로공단(Factory Complex)’이다. 베니스 아르세날레, 과거 국영 조선소이자 무기고로 쓰였던 곳에서 전시 중이다.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는 ‘모든 세계의 미래(All the World’s Futures)’라는 주제로 11월 22일까지 열린다. 53개국 136명의 작가가 본전시에 참여했다. 인근 자르디니와 베니스 시 곳곳에는 89개의 국가관 전시도 열리고 있다.







밀도 있는 작품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온 이 대규모 현대미술전에서 임씨의 영상에 대한 반응은 뜨거웠다. 낡은 건물 한 방에서 임씨의 95분짜리 영화를 그대로 틀었고, 관객들은 의자가 모자라 바닥에 앉은 채 숨죽여 긴 영상을 지켜봤다. “예술이 아직 힘이 있다는 믿음을 보여줬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독일의 정치사회학 전공 대학생 탈레아 루핀(21)은 “내가 입고 있는 이 옷이 얼마나 고된 노동의 결과물인지 잘 모르고 있었다. 미술이 당장 세상을 바꿀 수는 없겠지만, 우리가 이 문제를 인식하게 해 주는 의미있는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은사자상을 받은 임흥순, 황금사자상 평생 공로 부문의 알 아나추이(가나), 특별상의 수전 게츠(미국)와 최고 작가 부문의 아드리안 파이퍼(미국), 국가관 황금사자상을 받은 아르메니아관 커미셔너 아델리나 쿠베르얀 본 퍼스텐버그(왼쪽부터). [베니스=AP·뉴시스]


 ◆미술의 사회적 역할에 주목=베니스 비엔날레 120년 역사상 첫 아프리카계 감독인 오쿠이 엔위저(52)는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나 미국에서 정치학을 전공했다. 미술의 사회적 역할을 중시하는 그는 1996년 요하네스버그 비엔날레 감독을 시작으로 카셀 도쿠멘타(2002), 파리 트리엔날레(2012) 등 세계적 미술제를 기획했다. 마침내 ‘비엔날레 중의 비엔날레’로 꼽히는 베니스에 입성한 그는 미술 정치학, 이산(離散) 등 그간 천착해 온 주제를 한껏 강조했다.



 아르세날레에서 열린 본전시 앞머리에는 바닥에 장검을 잔뜩 꽂았고(아델 압데세메드의 작품), 이는 벽면에 네온으로 ‘죽음(death)’ ‘증오(hates)’ 등의 단어를 번쩍이게 한 브루스 나우먼의 설치와 조응했다. 자르디니 한복판에 세운 19세기 건물인 이탈리아관(중앙관) 입구에는 검은 천 다발(오스카르 무리요, 글렌 리건)을 드리웠고, 건물 중심엔 ‘아레나’(전장)라 이름 붙인 붉은 무대를 세워 전시 기간 내내 퍼포먼스를 진행한다. 특히 배우 둘이 마르크스의 『자본론』을 번갈아 낭독하는 퍼포먼스 ‘자본론 오라토리오’(아이작 줄리언)가 화제였다.



 이처럼 목소리 큰 작품이 앞다퉈 나온 이번 전시에서 “5인의 심사위원들 또한 비엔날레의 실험성·논쟁성을 극대화한 작품에 주목했다. 이미 미술관에 들어가 제도화된 예술에는 상 주지 않겠다는 의지가 있었다”고 이용우 심사위원이 전했다. 아프리카 같은 소위 ‘변방’의 부상, 퍼포먼스와 영화 등으로의 미술 영역 확대 등 이번 비엔날레 경향에 부응해 황금사자상은 관객 책임을 강조한 개념 미술을 내놓은 아드리안 파이퍼(67)가 받았다. 국가관 황금사자상은 집단학살 100주기를 맞아 아르메니아학의 거점이었던 베니스 외곽 섬에서 전시를 연 아르메니아 공화국에 주어졌다. 평생 공로 황금사자상은 가나 출신 엘 아나추이(71)가 받았다.



 광주 비엔날레와의 인연도 눈길을 끌었다. 이용우 심사위원은 1997년 광주 비엔날레 창설부터 지난해까지 20년 가까이 광주 비엔날레에서 활동했다. 오쿠이 엔위저는 2008년 광주 비엔날레 총감독을 지냈으며, 임흥순은 세 차례 광주 비엔날레(2002·2004·2010)에 참여하며 작가로서 역량을 키웠다.



베니스(이탈리아)=권근영 기자 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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