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일본은 “소녀상 철거” 수천 통 메일 … 한국선 “땡큐” 한마디 없었대요

중앙일보 2015.05.11 00:30 종합 26면 지면보기
지난해 7월 미국 캘리포니아주 글렌데일시 도서관에서 ‘Do the right thing!(옳은 일을 하라!)’이라는 주제로 문화행사가 열렸다. 그림은 김정기 작가가 위안부 소녀상을 보면서 즉석에서 그린 드로잉.


전혜연씨는 “소녀상은 위안부 역사를 지우려는 일본에 대항하는 상징”이라 했다. [사진 전혜연]
전혜연(42)씨는 지난해 1월 미국 글렌데일시에서 느꼈던 창피함을 잊을 수 없다. 큐레이터 일 때문에 미국에 있던 전씨는 우연히 지인을 따라나섰다가 위안부 소녀상에 헌화하는 미국 연방 하원의원을 봤다. 이 의원은 이후 일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본의 잘못과 위안부의 역사는 부인할 수 없다.” 이를 본 전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

큐레이터 전혜연씨
미국 유일 ‘위안부의 날’결의
글렌데일 위한 문화행사 기획



 “순간 머리가 ‘띵’했어요. 한국 사람도 아닌 이가 그런 말을 하는 거에요. 정작 우리는 아무 일도 안 하고 있다는 게 창피했습니다.”



 전씨는 “한국 사람도 움직인다는 걸 보여줘야겠다”고 생각했다. 전씨는 시 관계자를 만나 “위안부의 날을 알리기 위한 문화행사를 해보자”고 제안했다. 글렌데일시는 전세계에서 유일하게 ‘위안부의 날’(일본 정부의 사죄를 촉구하는 위안부 결의안이 의회에서 통과된 7월30일)을 만들고 위안부 소녀상을 세운 곳이다. 로스앤젤레스 인근에 위치한 인구 20만의 소도시지만 강대국에 학살당한 아픔을 갖고 있는 아르메니안계가 다수인 곳이기에 위안부 문제에 공감할 여지가 많았다.



 알면 알수록 전씨는 그런 활동이 필요함을 깨달았다. 일본인들이 위안부 소녀상을 철거하라며 하루에 수천 통씩 항의 메일을 보내는데 정작 한국인들은 감사하다는 메일 한 통 보내지 않았음을 알고서다. 게다가 일본계 미국인들은 미국 법원에 소녀상을 철거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전씨가 총괄기획·전시총감독을 맡은 문화 행사는 지난해 7~8월 성공적으로 열렸다. 과거의 처참함을 알리는 미술 작품이 전시되고 관련 공연도 열렸다. 미국 한인단체들과 재능기부자, 전씨의 모교인 대일외고, 동덕여대 동문의 도움이 컸다. 미국 정치인 등 1400여 명이 참석했고 미주 사회에서 화제가 됐다. 올 2월엔 미 캘리포니아주 1심 법원이 소녀상 철거 소송을 기각했다.



 그러나 전씨는 “위안부의 날 문화 행사는 계속돼야한다”고 말한다. 일본 측은 계속 항소해 대법원까지 가려 하는데 소녀상을 지키기 위한 소송에 글렌데일시 세금을 쓰는 걸 시민들이 문제 삼을 수도 있어서다. 일본계는 이미 소송 비용으로 15만 달러 이상 모아놓았다. 전씨는 “작년 행사에 쓰인 돈은 모두 미국 현지에서 조달했다”며 “하지만 계속 그럴 순 없다. 이젠 한국의 역할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커피 한 잔 값만 아끼자’라는 크라우드 펀딩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엔 글렌데일시의 자매도시인 김포·고성·보은 등에서 위안부 소녀상 릴레이 운동(성화 봉송처럼 전달하는 행사)을 열어 관심을 촉구하기도 했다.



 전씨는 올해엔 중국으로까지 행사를 확대시킬 예정이다. 중국 작가를 참여시키고, 7~8월 글렌데일시 행사가 끝난 뒤 9월엔 중국 베이징에서, 10월엔 서울에서 행사를 이어가기로 했다. “왜 그런 행사를 외국에서 해야하냐구요? 한국에서 수요집회를 10년을 해도 눈 깜짝 안 한 게 일본입니다. 그런데 미국 글렌데일시 행사엔 일본이 스트레스를 받아요. 그러니 소송까지 내면서 막으려고 하는 거겠죠. 해외 곳곳에서 그런 물결이 차고 넘친다면, 일본이 역사를 인정하고 사죄하는 데 힘이 실릴 거에요.”



백일현 기자 keysme@joongang.co.kr



◆전혜연씨는= 동덕여대 회화과·서양화과, 베이징 중앙미술원에서 공부했다. 동덕여대 조형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강의를 하면서 개인회사를 갖고 있는 독립기획자이기도 하다.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