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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워싱턴에서 벌어지는 싱크탱크 삼국지

중앙일보 2015.05.11 00:08 종합 33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채병건
워싱턴 특파원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가 미국을 방문 중이던 지난달 29일 워싱턴의 한 고급 호텔의 지하 콘퍼런스룸은 인파로 북적였다. 사사카와(笹川)평화재단USA가 주최한 아베 총리를 ‘모시는’ 자리로, 참석자들 중엔 낯익은 싱크탱크 학자들도 보였다. 콘퍼런스룸 바깥에 다과를 준비해 놓은 공간은 수백여 명의 참석자가 몰렸다.



 사사카와평화재단USA는 워싱턴의 싱크탱크를 지원하거나 재단 자체적으로 각종 세미나를 열어 일본 알리기를 주도하는 첨병이다. 이 재단은 미 의회의 ‘일본연구모임’을 후원해 소속 의원들의 일본 방문 경비도 지원한다. 일본 정부는 또 아베 총리의 방문을 앞두고 미국 조지타운대·컬럼비아대·매사추세츠공대(MIT)에 각각 500만 달러를 지원키로 했다고 밝혔다. 일본학 연구를 지원하는 명목이지만 그 배경엔 한국의 거센 과거사 공세를 미국 현지에서 차단하겠다는 심산이 깔려 있다.



  중국도 싱크탱크 경쟁에 가세했다. 지난 2월 첫 콘퍼런스를 열며 워싱턴에 입성한 중·미관계연구소(ICAS)는 ‘하이난 난하이연구재단이 만든 독립적이며 비영리적인 학술연구기관’으로 홈페이지에 소개돼 있다. 그러나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하이난 난하이연구재단은 중국의 남중국해국가연구소에 의해 만들어졌다”며 “ICAS 설립은 지난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소프트 파워’를 강조한 뒤 이뤄졌다”고 보도했다. 결국 ICAS 설립은 중국 정부의 입김과 무관치 않다는 얘기다. WSJ에 따르면 ICAS의 첫 콘퍼런스에 참석한 추이톈카이(崔天凱) 주미 중국대사는 남중국해에서 건설 중인 인공섬에 대한 방어 논리를 펼쳤다.



 한국은 어떤가. 우리도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와 브루킹스연구소에 ‘한국석좌’ 직을 만들었고, 한국국제교류재단이 조만간 우드로윌슨센터에 한국학 프로그램을 개설한다. 하지만 싱크탱크를 상대하는 공공 외교는 일본에 비하면 재원 규모가 대단히 미미하다. 아베 총리의 방미 기간 중 일본 이 발표한 미·일 교류 및 일본학 연구 지원 프로그램 ‘가케하시 이니셔티브’는 규모가 30억 엔(약 270억원)이다. 이런 재원이 없으니 한국은 한인단체의 풀뿌리 운동에 의지하곤 한다. 아베 총리 방미 때 한인단체들이 집요한 캠페인으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사과 여론을 다시 일깨운 게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런 사례는 흔치 않고, 싱크탱크는 한인단체의 몫도 아니다.



 이제 중국도 워싱턴에 뛰어들었고 일본은 돈으로 싱크탱크 여론을 사들이고 있다. 한국도 비용 타산만 따지고 있을 때가 아니다. 투자가 있어야 워싱턴 싱크탱크에서 한국 친화적 정책과 여론을 만들 수 있다.



채병건 워싱턴 특파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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