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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회의 기수 「파비우스」

중앙일보 1984.07.19 00:00 종합 4면 지면보기
지난해 12월13일자 파리의 몇몇 신문에 서울을 방문중인 「로당·파비우스」공업성장관(당시)의 대문짝만한 사진이 실렸었다.

81년 사회당정부가 들어선 뒤 적지 않은 프랑스고관들이 방한했으나 어느 누구의 한국방문도 그만큼 큰 사진, 그만큼 많은 분량의 기사로 프랑스신문에 소개된 일은 일찌기 없었다.

한불 기존관계 변화가능성 적어

당시의 한불관계 등이 프랑스언론의 관심사였던 때문이기도 하나 「파비우스」장관 개인의 「무게」를 가늠할 수 있는 자(척)이기도 했다. 그로부터 7개월 뒤 그는 수상이 됐다.

「미테탕」이 우파인 「파비우스」를 수상에 앉힘으로써 이제 프랑스 사회당은 이념적인 대전환이 예고되고 있다. 어쩌면 「미테랑」은 일대 우선회조치로 프랑스의 전통적인 사회주의이념과 결별을 시도할지도 모른다는 보도까지 나오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파비우스」수상이 프랑스 테크노크라트의 대표적 인물이라는 게 중요하다. 파리신문들은 18일 그의 수상취임을 『테크노크라트의 대관』이라고 표현했다. 그는 이념보다 실용주의를 앞세우는 철저한 테크노크라트다.

그래서 이곳 언론들은 앞으로 「모르와」수상시대의 정열적·이상주의적 사회주의, 내핍과 긴축의 사회주의에서 실용주의적 테크노크라트의 사회주의로 사회당정책이 바뀔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파비우스」수상은 특히 기업의 자율경영, 시장의 자유경쟁기능, 투자 등에 관심을 갖고 있고 기회 있을 때마다 컴퓨터 등 첨단기술분야의 개발·육성을 강조했다. 이 점은 「미테랑」대통령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경제·사회등 각분야에서 프랑스가 안고있는 산적한 문제들을 프랑스정치사상 최연소의 「파비우스」수상이 어떤 솜씨로 요리해 갈 것인지도 주목되지만 이 싯점에서 우리의 관심은 아무래도 대한정책의 변화가능성 여부에 모아진다.

그의 수상임명직후 파리한국대사관의 고위외교관은 대통령중심제에서 수상이 바뀐다고 기본정책이 변하는 일은 없다고 한불기존관계의 변화가능성을 부인했다.

그는 차라리 「파비우스」수상이 철저한 테크노크라트라는 점, 서울방문 때 한국의 고위당국자들과 만났었다는 점, 『북한승인은 현안이 아니다』라고 말했던 사실 등을 들어 양국관계의 장래를 낙관했다.

한국을 보고 왔으니 안가본 사람보다는 호의적이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파비우스」장관의 방한 때 그에 대한 대접이 소홀했지 않았나 아쉬워(?)하는 견해도 한때 대사관주변에 남아있었다.

그의 방한에 앞서 그가 「미테랑」대통령의 측근으로 실력자이며 차기수상후보중의 한 명이라는 등 중량급임을 서울에 강조, 특별한 관심을 가져줄 것을 기대했었으나 서울의 반응이 기대이하였다는 푸념이었다. 【파리=주원상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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