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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생도 ‘알몸 게임’사는 구매대행 사이트

중앙일보 2015.05.06 01:23 종합 12면 지면보기
주부 김성경(42)씨는 지난달 초등학교 3학년 아들의 방에 들어갔다가 깜짝 놀랐다. 아들이 열중하고 있는 게임에서 벌거벗은 여성 캐릭터가 스트립댄스를 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게임을 어디서 샀느냐”고 묻는 김씨에게 아들은 “지난 설날에 삼촌에게 받은 문화상품권으로 샀다”고 했다. 김씨는 “초등학생 아들이 성인용 게임을 인터넷에서 손쉽게 구매할 수 있다는 사실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며 “적어도 성인인증이나 부모의 동의를 받는 절차를 거쳐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청소년 불가 외국 선정적 폭력물
상품권 받고 성인 인증 없이 팔아
게임물관리위 “일일이 적발 한계”

 김씨의 아들이 했던 게임은 ‘GTA(Grand Theft Auto)5’. 전 세계적으로 5000만 장 이상이 팔려나갈 정도로 히트를 치고 있는 온라인 게임이다. 뛰어난 그래픽과 현실 묘사로 게이머들 사이에선 ‘세기의 명작’으로 통한다.





 하지만 선정성과 폭력성이 지나쳐 초등학생 등 저연령층이 이용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게임에선 주인공이 돈을 들고 스트립클럽을 드나들거나 마약을 사고 약물에 취한 상태로 살인을 하기도 한다. 여행 중인 외국인 여성 관광객이나 술 취한 커플들을 납치해 국제 인신매매단에 넘기는 미션까지 있을 정도다.



 실제로 이 게임은 선정성과 폭력성, 사행성 등을 이유로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게임물관리위원회로부터 ‘청소년 이용불가’ 판정을 받았다. 평소 이 게임을 즐겨 한다는 직장인 유모(30)씨는 “성인들이 단순 오락용으로 즐기기엔 문제될 게 없지만 어린이들이 하기엔 적절치 않은 콘텐트들이 많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김씨 아들이 이런 게임을 아무런 제재 없이 즐길 수 있었던 건 ‘게임 구매 대행사이트’에서 손쉽게 게임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행사이트는 국내에 출시되지 않은 외국 게임이나 해외 신용카드로만 살 수 있는 게임을 대신 구매해 준다는 명목으로 6~7년 전부터 우후죽순 생겨났다. 하지만 별도의 성인 인증 시스템을 도입하지 않은 곳이 많아 연령과 관계없이 성인용 게임을 구매하는 통로로 악용될 소지가 많다.



 실제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서 ‘게임 구매 대행’을 검색해 보면 관련 사이트 수십 개가 나온다.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GTA5 이외에도 청소년 이용불가 판정을 받거나 국내에서 심의를 받지 않은 성인용 게임들이 상품 목록에 떠 있다. 카드 결제는 물론 초등학생이 많이 이용하는 문화상품권이나 도서상품권으로도 결제가 가능하다. 별도의 성인인증 절차가 없는 곳이 많아 클릭 몇 번이면 미성년자도 손쉽게 성인용 게임을 구매할 수 있는 것이다.



 이 같은 일부 대행사이트들의 게임 판매는 별다른 규제를 받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게임물관리위원회 황재훈 사무국장은 “국내 심의를 거치지 않거나 ‘청소년 이용불가’ 판정을 받은 게임들을 미성년자에게 파는 행위는 불법”이라면서도 “여기저기 난립해 있는 대행사이트들의 불법 행위를 적발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측은 “게임 자체를 과도하게 규제하는 건 세계적 추세에 맞지 않다”면서도 “최소한 등급 심의 결과를 철저히 지킬 수 있도록 구매 대행사이트들에 성인인증 시스템을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법 개정을 논의 중”이라고 했다.



손국희·백민경 기자 9ke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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