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상읽기] 일본은 왜 사죄하지 않나

중앙일보 2015.05.06 00:16 종합 32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남정호
논설위원
일본은 왜 일제 만행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나. 같은 전범국 독일은 화끈하게 사죄하는데도 말이다.



 독일인은 양심적인데 일본인은 막돼 먹어서? 중국 난징(南京)에서 30만 명을 도륙한 일본이다. 하지만 독일 민족이 더 정의롭다고 하긴 영 궁색하다. 맨 정신에 600만 유대인을 학살한 게 누군가.



 패전 후 일본 정치학계에선 파시즘 연구가 붐을 이뤘다. 일제 때 군부·관료가 왜 무모한 전쟁을 벌였는지 진단이 쏟아졌다. 아시아 피해국에 대한 사죄가 불충분한 것도 연구 대상에 올랐다. 결론은 이랬다.



 먼저 독일은 책임을 떠넘길 대상이 있었다. 다름 아닌 나치다. 독일인 다수가 미치광이 집단 나치의 포퓰리즘에 속아 온갖 악행을 저질렀으니 용서해 달라는 논리가 가능했다. 실제로 나치 핵심은 죄다 비정상인이었다. 아돌프 히틀러는 과대망상증 환자였고 나치 돌격대장 헤르만 괴링은 모르핀 중독자, 게슈타포 총수 하인리히 힘러는 남색광(男色狂)이었다.



 일본은 달랐다. 20세기 초부터 사회 주류인 관료와 군부 전체가 파시스트로 변화한다. 도쿄대·육사를 나온 멀쩡한 최고 엘리트들이다. 이들이 식민지 침략과 전쟁을 주도했으니 누구 탓을 하겠나.



 자신의 뜻보다 중론을 좇는 일본인의 특성이 다른 배경으로 꼽혔다. 법정에 선 일본 전범들은 자신의 결정이 “당시 상황에선 어쩔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주변 상황이, 전체 의견이 압박해 와 극단적 선택을 했단 변명이었다. 나치 핵심들은 무모했을망정 비겁하진 않았다. 법정에 선 괴링은 “오스트리아 합병은 히틀러의 반대까지 무릅쓰고 100% 내 책임하에 이뤄졌다”고 당당하게 진술한다.



 일본 군부에 만연했던 ‘황도(皇道)주의’도 큰 원인으로 지적됐다. 이는 일왕의 힘을 온 천하에 퍼트리는 게 정의라고 여긴 맹신적 사상이다. 포로 학대로 법정에 선 일본군 간수들의 변명은 똑같았다고 한다. 하나같이 “얼마나 포로들에게 잘했는데 이러느냐”고 억울해 했다. 포로들을 군홧발로 짓밟은 건 뉘우치지 않았다. 그저 자신이 수용소 시설 개선에 얼마나 애썼는지 강변했다. 포로 학대조차 일왕의 영광을 드높이기 위해 마땅한 행위라 믿었던 거다. 심지어 난징 학살 책임자였던 상하이주둔군 사령관 마쓰이 이와네(松井石根)는 이런 말까지 한다. “아시아는 한가족으로 중일전쟁도 형이 잘못된 동생을 사랑하다 못해 때린 것”이라고. 무고한 30만 명 학살마저 사랑에서 나온 행위라는 궤변이었다.



 이런 비뚤어진 인식이 일본 사회에 똬리를 틀고 있는 한 진심 어린 사과가 나올 리 없다. 군국주의 부활을 꾀하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가 물러난들 크게 달라지진 않을 거다. 일본 내 양심세력들조차 “누가 들어서도 위안부 문제를 정부 차원에서 공식 사과할 확률은 0%”라고 입을 모은다.



 독도 문제도 그렇다. 홍콩의 저명한 역사학자 펑쉐룽(馮學榮)은 최근 ‘중국 역사와 관련된 우스개’란 글을 인터넷에 올려 화제를 모았다. 중국 역사와 관련, 그가 꼬집은 사안은 다섯 가지였다.



 먼저 몽골 땅을 강탈한 중국이 각국의 독립을 지지한다고 선전하고, 베트남과 한국전 때 베트남·한반도에서 전쟁을 벌이고도 외국을 침략한 적이 없다고 자랑하는 건 기만이라고 썼다. 대만이 고대부터 중국 땅이었다고 우기는 일이나 청나라 말기 조선을 삼키려 했음에도 제국주의 정책을 편 적이 없다고 주장하는 것 모두 실소를 자아낸다고 그는 지적했다.



 끝으로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를 중국 땅이라고 무조건 강변하는 것도 웃기는 일로 꼽았다. 센카쿠 열도가 왜 자신들의 영토인지 근거도 못 대면서 중국인 모두가 흥분한다는 거다.



 한국이나 일본이라고 크게 다를까. 독도 소유권을 놓고 상대방 논리를 조목조목 반격할 수 있는 양국 국민이 몇이나 있을까. 거의가 덮어놓고 원래 자신들 땅이라고 주장할 게 뻔하다. 이런 판에 ‘과거사 해결 우선’을 고집한들 뭘 얻겠는가. 한 일본 전문가는 한·일 간 위안부, 독도 분쟁을 고혈압·당뇨와 같은 성인병으로 비유한다. 항상 치유에 힘써야 하지만 완치도 어려워 어쩜 평생 달고 살아야 할 사안이라는 거다. 그러기에 위안부·독도 문제 해결이 우선이라고 버티는 건 일본과 상종하지 않겠다는 것과 매일반이다.



 아베 등장 후 한국 내 대일 감정이 나빠졌다. 중국은 더 심하다. 올 초 여론조사에서 한국인의 74%가 “일본에 호감이 가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에 비해 지난해 말 “일본이 싫다”고 응답한 중국인은 83%였다. 그런 중국이 지난달 일본과의 정상회담을 전격 단행하면서 실리를 도모하기 시작했다. 일본을 무시하기엔 경제적 이해가 너무 큰 탓이다.



 한국도 마찬가지다. 성인병 같은 과거사 문제와 정치·경제적 협력을 따로 논의하는 ‘투트랙(two track)’ 얘기가 나오는 것도 그래서다.



 이러다간 동북아에서 왕따 된다는 우려가 곳곳에서 들린다. 아직 활로는 있다. 한·중·일 정상회담을 한국 주도로 개최하는 것도 방법이다. 체면을 구기지 않으면서도 대일 관계를 개선할 길을 찾지 않으면 한국 외교의 앞날은 갈수록 어두워진다.



남정호 논설위원
공유하기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