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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 가득 … 수수하고 맛깔난 남도 상차림

중앙일보 2015.05.06 00:04 2면
‘이시돌’ 주인 염대수씨와 부인 이경순씨가 남도반가(南道班家) 상차림과 함께 주요 메뉴인 굴비·간장게장을 보여주고 있다. 사진=프리랜서 장정필


“90대 어르신이 ‘인천에서 두 시간 이상 차를 타고 왔다’며 아들 내외와 함께 식당을 들어설 때는 내 등골이 오싹하더라고요. 밥 한 끼 먹자고 노구를 이끌고 먼 길을 달려오시다니…. 음식이 담겼던 그릇들이 거의 빈 것을 확인하고 ‘잃어버린 입맛을 되찾았다’는 어르신 말을 들으니, 오히려 내가 감사하더라고요.”

남도음식전문점 이시돌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영동리 243번지 ‘이시돌’ 주인 염대수(60)씨가 한 이야기다. ‘이시돌’은 서울은 물론 멀리 경기도 북부권이나 강원도 등에서도 손님이 찾아오는 곳이다.



 염씨는 20년 이상 관록을 지닌 철학이 있는 셰프다. 남쪽인 전남 목포에서 시작해 구례군 지리산 입구를 거쳐 충남 공주시 계룡산 초입에서도 음식점을 경영했다. 그의 식당은 재벌 회장들의 숨겨진 맛집이었고, 고객 중에는 내로라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정세균·한완상·김중권 같은 정치인과 이시형 박사, 가수 윤형주, 희극인 구봉서, 육·해·공군 장성, 언론인 등.



 일화도 많다. 계룡산 초입 시절의 ‘이시돌’에서 식사를 한 도올 김용옥 선생은 저서의 여백에 난(蘭)을 친 다음 ‘계룡의 정기가 길러낸 산채를 군자의 정성이 향기 나게 만들다’라는 한시(漢詩)를 써 줬다. 한 검찰 고위간부한테는 “당신 집이 맛과 품격에서 최고다. 그 어떤 권력도 음식 권력을 넘지 못한다”라는 찬사를 받았다. 예약한 상차림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요구하는 계룡대 장군들의 보좌관들을 혼낸 일화도 유명하다. “차라리 다른 식당으로 가라. 내 집 음식상은 내가 차린다”며 퇴짜를 놓은 것. 음식을 비굴한 서비스로 포장하는 대신 열과 성을 음식에 쏟는다는 게 염씨의 철학이다.



 깊은 맛과 정성으로 승부하는 그의 상차림은 국적불명의 음식은 배제해 화려하지 않다. 수수하지만 맛깔스럽고, 씹을수록 고소한 맛이 난다.



 1인당 2만5000원인 남도반가(南道班家) 상차림은 굴비·간장게장·떡갈비·훈제오리고기·홍어삼합이 대통밥·찰밥·연잎밥과 함께 나온다. 여기에 송어젓갈과 김·깻잎·매실·더덕·무말랭이 장아찌, 호박꽂이·표고버섯·뽕잎·토란대·참취 나물·마른 가지 무침 등이 큰 상을 가득 채운다. 철과 시기에 따라 반찬이 변한다. 쑥부쟁이 들깨무침과 다래순 나물, 젠피 장아찌가 상에 오를 때도 있다.



 주 요리인 간장게장은 우선 짜지 않아 좋다. 영광군 법성포 굴비는 지리산 야생차를 우려 내놓는 찬물에 말은 밥 숟가락에 한 점씩 곁들여 먹으면 제격이다.



 1인당 2만원의 게장정식과 1만6000원의 보리굴비 밥상도 있다. 요리연구가인 부인 이경순씨는 “음식 장만은 종업원을 시키지 않고 남편과 둘이 직접 한다. 화학조미료는 절대 안 쓰고 주 재료 본연의 맛을 살리기 위해 마늘·생강처럼 자극적인 양념을 피한다”고 말했다. 소금은 값이 비싸지만 짠 맛과 쓴 맛이 덜한 토판염(土版鹽)을 사용한다.



 방은 좌식 상이지만 홀은 탁자를 놓아 의자에 앉아 먹을 수 있다. 또 녹차·홍차와 커피 등을 놓아 식사 후 차를 마시며 환담을 즐길 수 있다.



서울 올림픽대로~미사리~팔당을 거쳐 남한강 변을 끼고 양평으로 가는 드라이브 코스 중간에 있다. 잠실이나 미사리에서 30분, 강남·분당에서 40분가량 걸린다. 마당에 큰 느티나무·벚나무 등이 있고 옆으로 개울이 흘러 운치가 있다. 경관조명을 설치해 밤에도 아름답다. 문의 031-761-0112, 010-3131-6779.



 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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