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꿈꾸는목요일] "돈 덩어리야, 너 같은 애 낳아 고생해 봐" 이런 말 참으세요

중앙일보 2015.04.30 00:53 종합 23면 지면보기
“넌 입에 걸레를 물었니, 말버릇이 그게 뭐야?”


부모·자녀 공감 대화법
화내는 대신 잘못된 행동 설명을
문제 해결 방식 차분히 제시해야
‘말하기’보다 중요한 건 ‘듣기’
프랑스선 “경청은 의무” 가르쳐
토론, 상대 존중 배우는 데 효과

 박모(48·여·서울 구로구)씨는 최근 중학생 딸의 전화 통화 소리를 듣고 버럭 화를 냈다. 욕설을 섞어 가며 아무렇지 않게 대화를 나누는 딸을 보고 울화가 치밀었다. 박씨는 “몇 차례 주의를 줬지만 고쳐지지 않아 감정이 폭발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씨는 곧 후회했다. 그는 “‘걸레라는 표현을 쓰며 화내는 엄마도 똑같은 것 아니냐’는 딸의 말을 생각하니 화를 참지 못한 자신이 매우 부끄러웠다”고 했다.



 송모(55·경기도 구리)씨는 요즘 고등학생 아들과 대화가 안 된다. 지난주 중간고사 기간에 제 방에서 게임만 하고 있는 아들에게 소리를 질렀다. “네가 무슨 천재라고 공부는 안 하고 놀기만 하느냐”며 몇 분간 언성을 높였다. 아들도 “아빠와는 말이 안 통한다”며 방문을 열어젖히고 거실로 나가 버렸다. 송씨는 “엄마와 얘기하다가도 퇴근하고 오면 ‘아빠 떴다’며 방으로 들어간다. 소통이 너무 힘들다”고 말했다.



 자녀와의 소통으로 문제를 겪는 부모가 많다. 순간적인 감정에 욕설을 하거나 진심과는 달리 상처를 주는 말로 사이가 멀어지고, 정작 문제 해결은 못하고 말싸움만 하다 끝난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최근 ‘막말’ 논란을 일으킨 사회지도층도 마찬가지다. “너 나가”라며 기내 승무원을 몰아세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 교수들에게 “목을 쳐 줄 것”이라고 한 박용성 전 중앙대 이사장 등도 상대와 공감하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 없이 무작정 감정을 배설한 사례다.



 특히 부모들은 자녀와의 갈등 상황에서 문제를 푸는 열쇠를 본인이 쥐고 있다는 사실을 망각한다.



김종영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는 “아이에게 부모는 엄청난 ‘갑’”이라며 “자녀의 마음을 읽어 주지 못하는 부모의 대화법은 큰 상처를 남긴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갈등 상황에선 감정을 쏟아내고 갈등을 키우기보다 문제 해결을 위한 대화에 집중해야 한다”고 했다.



 전문가들은 대안으로 ‘공감 대화’를 제시했다. 강태완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장은 “화를 가라앉히고 감정과 사실을 분리해 생각할 것”을 주문했다. 먼저 상대를 비난하기보다는 구체적인 행동을 콕 집어 지적하는 게 좋다. 그래야 화를 키우지 않는다.



게임에 빠진 아이에게 “너 참 한심하다”고 하기보단 “게임한 지 3시간이 지났다”고 사실만 말해 주는 거다. 다음은 잘못된 행동이 미치는 영향에 대해 설명한다. “게임을 오래 하면 뇌가 빨리 늙는다”는 식이다. 끝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차분히 제안한다. “한 시간 게임을 했으면 운동을 하거나 공부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가족 간에 ‘공감 대화’를 하려면 먼저 자녀들에게 ‘경청’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오미영 가천대 언론영상광고학과 교수는 “대부분 아이가 하나둘인 가정에서 크다 보니 상대의 말을 듣는 능력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오 교수는 가정에서 쉽게 따라 할 수 있는 경청 교육으로 ‘랜덤 토론’을 제안했다. 한 가지 주제를 놓고 찬반 양쪽 근거를 모두 준비하도록 한 뒤 두 입장을 번갈아 가며 토론하는 방식이다. 오 교수는 “양쪽 입장 모두 옳은 부분이 있다는 것을 깨닫고 ‘내가 맞고 넌 틀렸다’는 선입견을 버리게 된다”고 말했다.



 김종영 교수는 ‘구성적 듣기’를 제안했다. 그림이나 영상을 보여 주고 자녀가 본 것을 그대로 말하도록 훈련시켜 관찰력과 집중력을 높이는 것이다. 반대로 이야기로 들은 내용을 그림으로 그리도록 해 귀담아듣는 법을 재밌게 가르쳐 보는 방법이다. 김 교수는 “우리는 경청을 배려 정도로 생각하지만 프랑스에선 토론수업 때 ‘경청을 의무’라고 가르친다”며 “대화의 시작은 상대의 말을 듣는 것에서 시작한다”고 말했다. 유대인의 ‘하브루타’ 교육방식도 같은 원리다. 수업은 물론 일상생활에서도 짝을 지어 토론하게 하면서 반대 의견을 존중하는 법을 익힌다.



 성인이 돼서도 공감 대화는 필수다. 조롱하고 비난하는 말하기가 반복되면 인간관계에도 금이 간다. 조직에선 업무 효율이 떨어진다.



지난해 8월 잡코리아 조사(작장인 304명 대상)에선 직장인의 61%가 “직장에서 동료들과 대화가 잘 안 통한다”고 털어놨다. 승진 등으로 높은 자리에 오를수록 ‘공감의 수사학’이 필요한 이유다.



 박성희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는 2009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2009년 취임 연설문을 분석했다. 총 18분의 연설시간 동안 2393개의 단어를 사용했는데 이 중 빈도수가 가장 높은 단어는 ‘our’(68회)였다. 둘째가 ‘we(62회)’였고 ‘I’는 3번밖에 쓰지 않았다. 박 교수는 “일방적인 연설이지만 주어를 ‘우리’로 사용하는 것만으로도 대화처럼 느끼게 한다”고 말했다.



 강태완 원장은 “미래형 리더의 조건 두 가지를 꼽는다면 아랫사람의 얘기를 잘 듣고 지시하는 대신 질문하는 자세”라고 설명했다. 그는 “‘우리’라는 표현을 쓰면 상하 구분이 없어지고 친밀해지는 효과가 있다. 단합이 잘 돼 조직의 효율성을 높인다”고 했다.



윤석만·신진 기자 sam@joongang.co.kr
공유하기

중앙일보 뉴스레터를 신청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