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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충남방적그룹

중앙일보 1984.06.06 00:00 종합 9면 지면보기
충남방적그룹은 동아건설·한국화약그룹과 더불어 충남을 대표하는 기업군이다.

충방그룹은 70년 실질적인 창업이후 14년만에 모기업 충방을 비롯해 대성모방·한일건설·한흥증권등 8개 기업군을 거느릴만큼 빠른 성장을 했다. 83년 매출액은 2천4백25억원.

14년전 부실기업 인수, 국내최대 면방업체로|이종성회장의 경영철학은 생산직 사원 우대

충방은 법무부·내무부 총무과장을 거쳐 내각수반 비서실장을 끝으로 30년간의 공직생활을 청산한 이종성씨가 70년5월 충남천안에있는 면방적기 3만추의 국안방적을 인수함으로써 시작된다.

국안방적은 당시 l2개 면방업체 가운데 최하위인데다 시설또한 아주 낡았으며 경영부실로 4년간 경영주가 6번이나 바뀌는등 부실회사로 문을닫은 상태였다.

이종성씨는 이런 모습의 국안방적을 인수, 상호를 충남방적으로 바꾸고 공장의 야전침대에서 종업원들과 숙식을 같이하며 재건의 집념을 불태웠다.

인수 14년만인 오늘의 충방은 면정방 57만주, 직기5천5백대를 갖춘 국내최대의 면방업체로 발전했다.

70년 당시 4백여명에 불과했던 종업원수도 1만5천명으로 늘어났다.

충방창업의 공로자들로 이민재씨(자금및 총무담당) 유주형씨(대외섭외담당) 오일근씨(생산및 공장증설담당)등 3명을 꼽을 수 있다.

이씨는 국안방적 말단사원부터 충방계열사인 한국이연사장까지 오른 입지전적 경영자로 충방초기의 어려운 살림을 잘 꾸려왔다.

이씨는 한때 건강 때문에 고생했으나 지금은 독립, 자기사업을 하고 있다.

유씨는 대농공채 1기생으로 대정부·대방협등 대외업무와 면사수출·면방시설도입등 폭넓은 활동을 하면서 대성모방사장·회장을거쳐 지금은 충방이 충남홍성에 세운 혜전전문대학장으로 교육계로 전신했다.

창업공신 3명중 오일근씨만이 아직도 충방의 경영일선(한일건설진흥사장)에서 힘을 쏟고 있다.

이종성회장의 처남이기도한 오씨는 천안공장재건당시 이회장과 함께 야전침대 생활을 하는등 예산공장·대전공장등 공장신증설의 실무책임자로 생산본부장을 맡아왔다.

오늘의 충방그룹을 움직이는 사람은 창업자 이종성회장, 김형덕충방사장, 이준호충방부사장등 3사람.

이회장은 81년3월 제11대 국회의원에 당선, 정계로 진출한이후 국민당부총재직을 맡는등 바쁜 일정을 보내고 있으나 아직도 날마다 충방회장실에 출근, 충방그룹의 중요사항을 결정한다.

이회장은 본인이 직접 결재를 하지는 않지만 자신의 장남이기도한 이준호부사장으로부터 일일보고를 받고있으며 임원인사를 비롯한 중요사항은 꼭 챙기고있다.

그러나 이회장이 정계에 진출한후 상당부분이 이씨의장남 이준호부사장에게 이양되고있다.

이준호부사장은 경기고와 연대를 졸업, 해군장교로 복무를 마친후 계열사인 우일산업 이사로 시작, 현재 무역회사인 (주)충방사장도 겸직하고있다.

이씨는 그룹의 자금과 계열기업관리를 맡고있다. 그는 활달한 성격으로 34세라는 젊은 나이지만 원만한 대인관계를 유지하고 있으나 업무처리에 있어서는 무척 깐깐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형덕 충방사장은 육사4기 출신으로 육군병참학교장을 끝으로 군을 떠나 방직협회로 옮겼다.

김씨는 방협의 전무이사와 동협회 워싱턴주재 전무를 거쳐 74년 충방상무로 부임, 대성모방사장과 충방부사장등을 거쳐 80년 충방사장이 됐다.

김사장은 워싱턴주재 경험을 살려 원면구입에 남다른 실력을 보이고 있으며 치밀한 성격등으로「관리통」으로 평가받고 있다.

충방은 특히 노사간의 일체감을 중시한다. 73년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공장부설 학교를 설립, 무상교육을 실시한 것이나 80년 국내최초로 노조지부장을 비상임감사로 선임, 경영에 참여시킨 것도「생산직사원우선」이라는 이종성회장의 경영철학에 근거한 것이다.

충방은 최근 고졸자로서 반장·조장등 공장에서 지도적 위치에있는 3백여명에게 일급제가 아닌 사원제를 적용하고있다.

충방은 또한 절약을 강조한다. 아직도 중역급의 골프가 원칙적으로 금지되고 회장실을 비롯한 어떤 본사사무실에도 에어컨이 없다.

최근 충방은 면방그룹에서 탈피. 첨단기술산업진출을 신중히 모색하고있다.<특별취재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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