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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리석·유리의 변신에 놀라움 기발한 가구 디자인에 즐거움

중앙선데이 2015.04.25 16:51 424호 9면 지면보기
에르메스의 원형 대리석 테이블
1 카르만의 오르부와 전등. 샹들리에 전등이 녹아내린 듯한 아이러니한 디자인이다 2 카르만의 티 베도 올빼미 전등 3 카펠리니의 판다 전등 4 리바 1920
5 모오이 몬스터 의자 세트
14일부터 19일까지 이탈리아 밀라노 북부 로(Rho) 박람회장에서는 69개국 31만명이 참가한 가운데 제 54회 디자인 위크가 열렸다. 음식을 주제로 한 밀라노 엑스포(5월 1일~10월 31일)를 코눈앞에 둔데다 곳곳에서 열린 이벤트 역시 음식과 관련된 것이 많아 행사 자체가 마치 엑스포를 시식하라고 내놓은 ‘전채요리 같았다. 덕분에 부엌가구 브랜드들은 각종 이벤트에 주연같은 조연으로 참여했다. 마르셀 반더스, 넨도, 프론트, 필립 스탁, 자하 하디드, 캄파냐 형제 같은 스타 디자이너가 총 출동한 것은 물론이고, 역사가 오래된 대기업 가구업체는 르 코르뷔지에 같이 이미 세상을 떠난 디자이너나 알레산드로 멘디니 같은 노장의 오리지널 디자인을 현대적, 실용적으로 변형시키고 인체공학적으로 재해석해 새로 출시했다.

밀라노 디자인위크 2015를 가다

특히 원형 혹은 직사각형으로 얇게 잘라낸 대리석을 사용한 테이블은 가구 제조업체들의 필수 신제품이었다. 가공하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무늬가 돋보이는 회색, 갈색, 검은색 톤의 대리석은 자연이 디자인한 ‘리미티드 에디션’인 셈이었다.

강렬한 색상 또한 돋보였다. 노랑, 연두색 야광빛이 도는 색채를 대담하게 사용하는가 하면 보색 대비의 색채를 한꺼번에 쓰기도 했다. 주재료로 유리를 선택한 업체도 많았다. 의자, 선반, 심지어 드레스룸의 클로짓 전체를 유리로 만들어 박물관이나 고급 부티크의 진열장 안에 들어온 듯했다.

삶을 즐겁게 만드는 펀(fun) 디자인 가구도 흥미로웠다. 올빼미의 큰 눈에 전등을 넣은 카르만 사의 티 베도(Ti Vedo) 전등이나 카펠리니의 팬더 전등처럼 귀여운 이미지의 동물을 응용한 전등, 닥스훈트 모양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벤치, 녹아내리는 촛농 모양의 샹들리에, 한 대 얻어맞은 듯한 도깨비 얼굴을 수놓은 모오이의 의자는 보는 것만으로도 웃음이 났다.

6 베르사체의 라 쿱 데 듀 의자 7 에트로의 소파 8 펜디의 플라워 커피테이블
9 노마디 여행에서 영감을 얻은 루이비통 오브제 컬렉션
패션과 럭셔리 업계 참여 두드러져
올해 가장 주목할 점은 패션과 럭셔리 업계의 적극적인 참여다. 수 년 전부터 브랜드의 성격이 드러나는 홈 컬렉션을 출시해온 베르사체, 펜디, 에트로, 미쏘니, 디젤 같은 이탈리안 패션 하우스는 물론 벤틀리, 불가리 등 타 분야 럭셔리 브랜드도 메종의 정체성이 살아있는 가구들을 내놨다. 베르사체는 기존의 화려한 그리스 무늬와 메두사 얼굴에서 벗어나 절제되고 미니멀한 스타일로 변신했다. 카르텔과 협력한 에밀리오 푸치는 필립 스탁의 디자인으로 원색과 파스텔톤이 조화된 의자 세트를 카르텔 부스에서 선보였다. 에트로와 미쏘니는 패브릭 제품에 중점을 두었는데, 박람회장은 물론 고객과 직접 만날 수 있도록 밀라노 명품거리 몬테 나폴레오네 구역의 매장에서도 함께 전시했다.

프랑스 명품 브랜드 에르메스는 매장을 네이비 블루 색상의 카페트와 신제품 패브릭으로 꾸며 중후한 분위기를 연출했다. 에르메스가 금년에 런칭한 ‘레 네쎄쌔르(Les Nécessaires)’가구 시리즈는 메종만의 독창적인 스타일을 엿볼 수 있었다. 입구 바로 옆에는 대리석 테이블이 금년의 트렌드라는 것을 확인시키듯 대리석으로 제작된 원형 테이블 사텔리트(Satellites) 세 개를 세팅했고 매장 전체를 신제품 패브릭과 월페이퍼(벽지)로 장식했다. 적색과 남색톤의 정글 라이프 월페이퍼를 바른 벽에는 빛을 쏘아 나비가 날아든 창문처럼 보이게 했다. 녹색톤의 월페이퍼에는 나비와 꽃을 붙여 실제로 정글에 있는 듯한 느낌을 냈다. 정사각형 실크 스카프에서 영감을 얻었다는 의자 ‘카레 다쎄즈’는 쉽게 옮길 수 있어 커피 테이블로도 쓸 수 있었다.

루이비통도 디자이너 9명과의 협업을 통해 유랑자의 여행에서 영감을 받은 ‘오브제 노마드(Objets Nomades)’시리즈를 19세기 말 건축된 보코니 빌라에서 전시했다. 여행의 예술과 장인정신이라는 브랜드의 핵심이 담긴 메종의 가죽 오브제들을 보기 위해 수많은 방문객이 빌라를 방문했다. 아르마니는 ‘아르마니 인테리어 디자인 스튜디오’가 협업한 전 세계의 주요 호텔과 레지던스의 인테리어 프로젝트를 모형과 사용된 재료를 이용해 아르마니 시어터에서 최초로 공개했다.

10 비오픈의 ‘가든 오브 원더스중 하나로 장 마리 마소드가 베르티프 향수병을 새롭게 선보였다. 사진 Gionata Xerra
사라진 향수 되살려낸 ‘가든 오브 원더스’ 프로젝트
시내 곳곳에서도 400개가 넘는 디자인 이벤트가 열렸다. 밀라노 시는 팔라초 레알레 궁전에 레오나르도 다빈치 특별전(7월 19일까지)을, 트리엔날레 전시장에는 금년 엑스포 주제인 음식에 관련된 예술작품 및 포스터·사진·도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아트&푸드’전시(11월 1일까지)를 마련했다. 현재 400개의 프로젝트를 진행중인 넨도는 디자이너 스튜디오로는 유일하게 2014-2015년에 선보인 100개의 프로젝트 중 일부를 한데 모아 페르마넨테 뮤지엄에서 전시회를 따로 열었다.

가장 눈에 띄었던 것은 브레라 예술학교 뒷편의 보타닉 가든에서 열린 ‘더 가든 오브 원더스(The Garden of Wonders)’ 행사였다. 디자인과 창의성 분야에서 활동하는 국제재단 ‘비오픈(BEOPEN)’이 주관한 이 행사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여덟 개의 글로벌 향수회사를 리브랜딩해 향수를 통해 세상을 시대적으로 탐험하는 이벤트였다. 비오픈 재단은 향수가 전 세계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재료의 역사이자 각 지역 문화와 밀접하게 관련됐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그리고 8명의 유명 디자이너와 디자인 스튜디오에 의뢰해 각 회사의 전통과 특성에 걸맞는 향수병 혹은 프레젠테이션을 기획하게 함으로써 디자인이 동시대 시장과 소비자를 만족시키는 강한 힘이라는 사실을 증명하고자 했다.

11 에밀리오 푸치. 카르텔 제작, 디자인 필립 스탁 12 모오이의 찰스 체어. 디자인 마르셀 반더스 13 모로소 글라이더 소파 세트. 디자인 론 아라드 14 카펠리니의 비손 소파와 퍼프. 디자인 넨도
토드 분체(Tord Boontje)는 체코의 향수회사 발더스 에 스폴(Waldes et Spol)을 재디자인했고, 페르난도와 훔베르토 캄파냐 형제(Fernando e Humberto Campana)는 프랑스 브랜드 비에트(Biette)를 재해석했다. 또 스웨덴의 트리오 디자이너 프론트(Front)는 프랑스 길라(Guyla)를 예술적으로 승화시켰다. 이탈리아 브랜드 베르텔리(Bertelli)는 디모레 스튜디오가, 러시아의 콜러 앤드 코(R. Koehler & Co)는 일본 스튜디오 넨도가 맡았다. 영국 브랜드 부와싸(Boissard)는 스페인 디자이너 제이미 하욘(Jaime Hayon)이, 미국 회사 런드보그(Lundborg)는 이탈리아 디자이너 피에로 리쏘니가, 베르티프(Bertif)는 장 마리 마소드(Jean Marie Massaud)가 각각 협업했다. 각각의 설치물은 ‘이스투와르 드 파르팡(Histoires de Parfums)’ 브랜드를 창시한 프랑스의 유명 조향사 제랄드 길랑(Gerald Ghislain)이 역사속으로 사라진 향수들의 추억을 되집어 다시 제작한 새 향수들과 짝을 지었다. 정원에는 1700년대부터 역사적으로 사용해온 향수의 기술을 엿보고 향기도 맡아볼 수 있는 ‘향수를 통한 여정’ 부스도 마련돼 있었는데 당시 사용한 향수중에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는 고약한 냄새를 풍기는 것도 있었다. 이 전시는 5월 24일까지 열린다.

15 박강용정상길의 주칠 30합 발우
삼성전자현대차  눈길 끈 한국 기업들
밀라노 디자인 위크에 5년째 참여하는 삼성전자는 이탈리아 법인 본사 1층에 이벤트장을 설치하고 ‘포옹: 감각적 경험’이라는 주제로 인간 중심의 디자인 철학을 표현했다. 전시장에는 65인치 커브드 삼성 울트라 하이 데피니션(SUHD) 36대를 이어 만든 지름 10m 짜리 거대한 링 두 개가 공중에 매달려있었다(이 이벤트를 위해 한국에서 제작한 링을 4개로 나눠 비행기로 실어왔다고 한다). 원의 중앙에 들어서자 거대한 링이 회전하며 선과 파동으로 이루어진 초현실적 이미지가 모니터에 나타났다. 5분 정도 진행되는 영상의 몰입감이 상당해 현실과 꿈의 경계가 사라지는 가상세계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행사장 옆 쇼룸에서는 삼성이 제안하는 미래형 주택의 모델이 있었다. 다이닝 테이블에 설치된 스마트패드는 미래형 식탁의 한 형태를 보여주었다. 하지만 현재 유럽에서는 ‘스마트 디바이스로 인한 가족간의 대화 단절을 극복하자’는 움직임이 일고 있는 만큼 함께 식사하는 사람들의 대화를 단절시킨다는 우려를 어떻게 극복할 것인지가 관건으로 보였다.

현대자동차는 디자인 철학의 결정체인 ‘헬리오 커브’로 가상의 움직임에 생명을 불어넣는 움직임을 표현했다. 미국 설치작가 루빈 마골린이 기획한 이 설치물은 전시공간 중앙에 우유팩같이 생긴 400여 개의 나무블록을 양쪽 도르래에 연결해 슬로우모션으로 움직이는 파도처럼 만든 장치였는데 시간마다 바뀌는 조명때문에 더 기이하게 느껴졌다. 전시장 옆에는 제네바 모터쇼에서 선보였던 컨셉트카 인트라도(Intrado)도 전시해 놓았다.

현대카드 또한 카드 회사보다 디자인 회사로서 인식되고 싶다는 의지로 디자인위크에 처음 참여했고, 역시 같은 장소에서 전시한 LG하우지스는 프랑스 디자이너 마르셀 반더스와 협업해 ‘코스모스-마크로코스모스에서 미크로코스모스로’라는 신비한 공간을 만들었다. 지난해보다 예술적 측면에서 한 걸음 더 진보한 금년 전시는 LG 소재의 풍부함과 다양성을 제대로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올해 세 번째를 맞이한 ‘한국 공예의 법고창신’전은 예년과 다름 없이 밀라노 트리엔날레 전시장에서 6일간 열렸다. ‘수수, 덤덤, 은은’이라는 주제로 열린 이번 전시에는 192점의 도자·한지·칠기·누비한복 등이 전시됐다. 다수의 작가들이 아트 갤러리와 수집가로부터 판매를 요청받았고 한지에 대한 현지인들의 관심 또한 높았다.

하지만 전시 오프닝에 참여한 한 이탈리아 디자이너는 “전시 자체는 훌륭하지만 때와 장소가 맞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그는 “ 전시를 방문한 사람들은 한국의 디자인이 전통적인 것에 머물어있는 것으로 알기 쉽다”라며 “유능한 한국 디자이너들의 실력을 디자인 위크에서 볼 수 없다는 것은 유감”이라고 덧붙였다.

한국은 디자인 위크 동안 전통적 공예품을 가지고 나온 유일한 국가였다. 젊은 디자이너와 디자인 기업이 참여해 동시대 디자인 파워를 알리고자 한 다른 나라들과는 대조적이었다. 한국의 전통과 함께 새로운 디자인 파워도 알릴 수 있는 기획이 아쉬웠다.


밀라노 글·사진 김성희 중앙SUNDAY S매거진 유럽통신원 sungheegioielli@gmail.com, 사진 각 브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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