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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성희의 별 볼 일 있는 날] 강력계 형사 눈빛, 미소년 아이돌은 잊어라

중앙일보 2015.04.24 00:20 종합 24면 지면보기


이제는 그를 배우라고 부르는 게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그저 배우가 아니라, 앞날이 궁금해지는 썩 괜찮은 배우다. K팝 한류를 이끈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 원년 멤버이자, 이제는 인생 2막을 성공적으로 열고 있는 박유천(30) 얘기다. 지난해 스크린 데뷔작 ‘해무’로 각종 영화상을 휩쓴 그는 ‘연기돌’(아이돌 출신 연기자)의 대표주자다. 음악, 연기 등 전방위적인 우리 아이돌 파워를 상징하는 인물이기도 하다. 최근에는 미스터리 수사 로맨틱 코미디 ‘냄새를 보는 소녀’(SBS)에서의 맛깔나는 연기로 주목받고 있다.



미스테리 수사 로맨틱 코미디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연쇄살인범을 좇는 최무각 순경역을 맡은 박유천. [SBS]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그가 맡은 최무각 순경은 여동생을 연쇄 살인마에게 빼앗기고 그 충격으로 통각, 미각, 후각 등 감각을 잃은 남자다. 마찬가지로 부모가 살해당한 후 기억을 잃고 대신 냄새를 볼 수 있게 된 오초림(신세경)과 파트너가 된다. 오초림은 냄새를 보는 능력으로 최무각의 수사를 돕고, 최무각은 개그맨 지망생인 오초림의 만담 파트너가 돼주는 것이다.



 동명 웹툰이 원작인 만큼 만화적 상상력을 기반으로 해 연쇄살인, 로맨스, 코믹 만담 등 다양한 요소를 버무렸다. 본격 수사물이라기엔 정교함이 부족하고 코믹 만담 에피소드에서는 억지스러움도 느껴지지만, 그 숱한 헛점들을 가리는 것은 두 주인공의 연기 호흡이다. 박유천은 민망할 정도의 대머리 분장과 우스꽝스러운 말투로 한껏 망가지고서도 아무 일 없다는 무표정해지는 능청스러운 연기를 선보이고 있다. 코믹과 진지, 액션과 로맨스를 오가는 연기다. 평소의 우울함을 덜어내고 명랑소녀로 변신한 신세경도 한몫했다. 커플의 ‘케미(호흡)’ 덕인지 드라마는 수목극 시청률 1위에 올랐다. 시청률과 화제성 등을 총체적으로 평가하는 ‘콘텐트 파워지수(CPI)’에서도 ‘무한도전’을 밀어내고 1위를 차지했다(3월30일~4월5일주).



 박유천의 연기 데뷔는 2010년 KBS 로맨스 사극 ‘성균관 스캔들’이다. 소속사 SM과의 분쟁이 끝나고 3인조 JYJ로 독립한 다음 해다. ‘미생’의 임시완이나 ‘괜찮아 사랑이야’의 도경수(EXO 멤버) 등이 작은 배역부터 시작한 것과 달리 단숨에 주역을 꿰찼다. 귀공자풍 외모에 송중기, 유아인에 전혀 밀리지 않은 인상적인 데뷔였다. 비주얼과 연기력, 국내외 열혈 팬덤을 두루 갖춘 스타탄생으로 주목받았다. 곱상한 얼굴에 중저음의 목소리, 그윽한 시선이 로맨스 히어로에 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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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어 타임슬립 로맨스물 ‘옥탑방 왕세자’(SBS·2012)에서는 코믹 배우로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현대로 온 왕세자가 후줄근한 추리닝 차림에 옛날식 권위를 따지는 물정모르는 코믹함으로 눈길을 끌었다. 이후 그의 행보는 아이돌 출신이라는 꼬리떼기에 방점이 찍힌 듯 하다. 동방신기 시절 ‘달콤한 스윗가이’ 이미지를 걷어내려는 듯 다양한 장르와 역할에 도전했다. 범죄와 복수로 점철된 진한 멜로(‘보고싶다’), 대통령과 권부의 암투를 그린 정치드라마(‘쓰리데이즈’) 등이다. 배역도 형사, 경호원 등에 집중됐다.



 지난해 영화 ‘해무’는 그런 행보에 정점을 찍은 작품이다. 중국 밀항자들을 실어나르는 배에서 벌어진 끔찍한 사건을 그린 영화다. 김윤석, 김상호,이희준 등 쟁쟁한 연기파들과 제대로 합을 맞췄고 그 결과 청룡영화상, 대종상,영화평론가협회상, 부산영 영평상 등 각종 영화제 신인상 그랜드슬램을 달성했다. 어딘지 보호본능과 연민을 자극하는 그의 순수한 표정이, 지옥같은 공간에 온기를 불어넣는데 성공했다는 평이다. 제작자인 봉준호 감독은 “뛰어난 배우를 우리 영화계가 얻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쁘다”란 말을 남겼다. 평론가 박인호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얼굴은 ‘해무’를 생각할 때 가장 먼저 떠올리는 표정이 됐다”고 썼다.



 어느덧 30세, 이제 그는 더 이상 10대 소녀를 자지러지게 하는 가냘픈 몸매의 미소년 아이돌은 아니다. 몸은 제법 관록이 붙었고, 주로 거친 형사 배역이 많다 보니 한때 알아주던 패션감각이나 용모의 수려함도 대충 가리고 넘어간다.



종종 TV 카메라는 뺨의 여드름 자국을 정직하게 보여준다. 그는 한 인터뷰에서 “외모적으로 바꾸고 싶지 않다. 여드름 자국도 좋고 눈썹이 없는 것도 좋다. 눈썹문신하라는데, 하고 싶지 않다. 예전에 너무 꾸미고 살아서 이제는 그러고 싶지 않은 것도 있다. 화려한 것은 그런 자리에서만 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제는 나이와 세월을 따라 자연스럽게 삶과 일상이 묻어나는 진짜 배우로 살고 싶다는 뜻일 것이다. 그의 차기작은 설경구 고수 강혜정 등과 호흡을 맞추는 미스터리 터치의 영화 ‘루시드 드림’이다. 왕성한 연기 만큼 그의 음악을 그리워 하는 팬들에게는 아직도 방송에서 JYJ를 볼 수 없다는 점이 아쉬울 뿐이다.  



양성희 문화부 부장대우 shy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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