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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완종 2차 사면 … "MB인수위서 요청" "노 정부와 딜한 것"

중앙일보 2015.04.21 04:01 종합 5면 지면보기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의 사면 기록은 특이하다. 두 차례 유죄판결을 받았는데 두 차례 모두 특별사면됐다. 공교롭게도 노무현 정부 때다. 사면되기 전 성 전 회장은 미리 상소(上訴)를 포기했다. 사면될 자신이 없이는 하기 힘든 결정이라고 법 전문가들은 말한다. 사면의 진실을 찾기 위해선 시곗바늘을 거꾸로 돌리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때 그 사람들이 말하는 사면
2005년 5월 성완종 1차 사면엔
친노 인사들 “자민련 의중 반영”
정진석 “당시 자민련 쪼그라진 당”



 2005년 5월 1차 사면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다. 민정수석은 사면 업무를 담당한다. 그러나 문 대표는 “사면은 법무부의 업무”라며 선을 그었다. ‘두 차례 사면이 특혜가 아니냐’는 질문엔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당시 민정비서관으로 민정수석을 보좌했던 새정치연합 전해철 의원의 설명은 더 구체적이다. 전 의원은 “1차 사면 때는 당시 야당인 자민련 김종필(JP) 명예총재의 의중이 반영됐다”고 주장했다. 성 전 회장은 당시 회사 돈 16억원을 빼돌려 자민련에 불법 기부한 혐의로 기소됐다. 17대 총선 직전까지 청와대 정무수석을 지낸 유인태 의원도 “성 전 회장 사면은 JP의 몫”이라고 했다. 그는 “여당인 열린우리당이 소수 정당으로 꼼짝 못할 때 JP는 한나라당을 견제해 주는 등 고마운 사람”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민련에 몸담았던 정진석 전 의원은 “자민련이 완전히 쪼개져 사면 당시 이미 3~4인 정당으로 쪼그라들었는데 누굴 추천하는 게 말이 되느냐”며 ‘자민련 몫의 사면’이라는 주장에 반박했다. 자민련은 2004년 17대 총선에서 참패했다. 비례대표 1번인 JP마저 낙선, 정계에서 은퇴했다.



 2007년 12월 2차 사면 당시는 이명박(MB) 후보가 대통령에 당선된 뒤였다. 전해철 의원은 “2차 사면 땐 MB 인수위원회의 의중이 반영됐다”고 말했다.



 반면 MB 인수위 인사들은 이런 주장을 반박했다. 이상득 전 의원의 측근인 장다사로 전 청와대 민정비서관은 “성 전 회장이 상고를 포기한 시점은 (MB 당선 전인) 11월”이라며 “그때 상고를 포기했다는 건 인수위가 가동되기 전에 이미 노무현 정부와 사면에 대한 ‘딜’이 끝났다는 것을 뜻한다”고 주장했다. 당선인(MB) 비서실 총괄팀장이던 박영준 전 지식경제부 차관도 “노 전 대통령이 MB에게 불만을 표출, 인사자료도 넘겨주지 않는 등 사면을 의논할 상황 자체가 되지 않았다”고 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의 마지막 민정수석인 이호철 전 수석의 말은 다르다. 그는 “당시 MB의 최측근 인사로 분류됐던 양윤재 전 서울시 부시장이 12월 사면에 포함돼 청와대 내에서 논란이 있었다”며 “그 정도 인물이 포함되려면 당선인(MB)이 직접 부탁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전 수석은 “당시 성 전 회장이 사면 대상인지는 논란거리도 아니었다”며 “성 전 회장은 양 전 부시장과 함께 인수위 요청으로 사면 대상에 포함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양 전 부시장은 MB가 서울시장 때 추진했던 청계천 복원사업의 추진본부장이다. 이 과정에서 비리에 연루돼 징역 5년에 추징금 1억520만원을 선고받았다. 이 전 수석의 말대로 2007년 사면 대상에는 양 전 부시장이 포함됐다. 당선인 비서실에서 활동했던 새누리당 정두언 의원은 “권력을 잡은 인수위가 사면에 관여하지 않았다는 게 오히려 비상식적인 상황”이라며 “법무부는 물론 청와대와도 사면 대상을 사전에 논의한 걸로 안다”고 했다. 그는 “당시 핵심 인사가 성 전 회장의 사면과 공천까지 특별히 챙겼다”며 “한번은 핵심 인사가 찾아와 ‘(공천을 달라는) 성완종을 어떻게 주저앉혀야 하느냐’며 하소연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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