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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장의 힘 … 태국·호주 청소년 흡연 반 토막

중앙일보 2015.04.21 01:23 종합 12면 지면보기
지난달 23일 태국 수도 방콕의 번화가 시암 거리에 위치한 담배 판매점 10곳을 찾았다. 각 판매점에서 한 갑씩 담배를 구입해 봤다. 점원이 꺼내준 담배마다 경고그림이 있다. 포장지 앞뒷면 가득 구강암·폐암으로 손상된 사람의 장기, 안치소에 누운 시신 등의 섬뜩한 경고그림과 문구가 인쇄돼 있다.


태국, 담뱃갑에 시신 사진 넣자
담배 피우는 아이들 19 → 10%
호주, 녹갈색 갑에 폐암 남성 사진
청소년 “흡연은 끔찍” 인식 갖게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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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태국은 담뱃갑에 세계에서 가장 큰 경고그림을 넣는 나라다. 2006년 담뱃갑 앞뒷면에 각각 50% 크기의 경고그림을 넣은 데 이어 지난해 9월 담뱃갑 전체 면적의 85%로 크기를 확대했다. 이날 시암 파라곤 백화점 지하 담배 판매점에서 만난 한국인 관광객 이모(35)씨는 담배를 받아들자마자 인상을 찌푸렸다. 이씨는 “그림이 너무 끔찍해서 들고 다니기 창피할 것 같다”고 말했다.



 태국의 남성 흡연율은 2000년대 초 55%로 당시 한국과 비슷한 수준이었다. 담뱃세를 매년 꾸준히 올리자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한 흡연율은 2006년 경고그림을 도입하자 크게 떨어졌다. 지난해 기준 38%까지 감소했다. 경고그림은 특히 청소년의 흡연율을 떨어뜨리는 효과를 거뒀다.



태국 보건부 국가담배규제위원장 브라킷 바티사콕깃 박사는 “2005년 18.9%에 달하던 청소년 흡연율이 절반(9.7%)으로 줄어든 건 경고그림 덕분”이라며 “아직 담배를 피우지 않는 청소년들에게 담배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확실히 심어줘 애초에 흡연을 시작하지 않게 하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했다.



 호주도 태국 못지않다. 2012년 12월 이후 시판된 모든 담뱃갑 포장은 하나로 통일돼 있다. 이를 ‘플레인 패키징(Plain packaging)’이라 한다. 짙은 녹갈색(팬톤 컬러 448C) 바탕에 폐암으로 사망한 남성 시신, 임부의 흡연으로 조산된 아기 등의 사진과 굵은 글씨로 인쇄된 경고 문구를 넣었다. 담뱃갑의 색상은 설문조사를 거쳐 젊은층이 가장 싫어하는 걸 골랐다. 담배 회사 로고도 여기엔 없다. 아랫부분에 작은 글씨로 브랜드 이름만 넣도록 했다.



 호주 멜버른의 도심에 위치한 담배 판매점 진열장 내부는 ‘담배는 폐암·구강암·췌장암·신장암을 일으킨다’는 경고 문구가 선명하게 들어간 문으로 가려져 있다. 멜버른 중심가인 플린더스역 앞에서 10년 넘게 담배 판매점을 운영해온 티머시 옥슬리(54)는 “플레인 패키징 도입 이후로 젊은 고객이 많이 떨어졌다. 세보지는 않았지만 30~40%는 준 것 같다”고 말했다. 시내에서 만난 고등학생 킴벌리 존슨(17)은 “주변 친구 가운데 흡연자를 본 적이 없다”며 “담배가 얼마나 해로운 것인지 잘 알기 때문에 전혀 피우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는다”고 말했다.



 호주의 흡연율은 1993년 25%에서 담배 가격 인상, 광고 규제로 꾸준히 떨어지다가 2000년대 중반 18% 선에서 정체기를 맞았다. 그러다 2007년 경고그림을 처음 도입하면서 다시 탄력을 받았다. 플레인 패키징 도입 1년 만인 지난해 12.5%까지 떨어졌다.



 호주 보건부의 네이선 스마이스 인구보건국 부국장은 “담배 가격 인상이 가장 효과적인 금연 정책이지만 이것만으로는 효과가 떨어진다. 담뱃갑 경고그림 정책이 뒤따라가야 제대로 효과를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경고그림은 어린이·청소년에게 담배가 전혀 멋지지 않고 끔찍한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준다”고 지적했다.



 이처럼 경고그림은 기존 흡연자뿐 아니라 청소년에게 장기적으로 영향을 끼친다. 빅토리아주 암위원회 론 볼랜드 박사는 “경고그림의 주요 목적은 미래 세대를 보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남자 청소년(중 1~고 3)의 흡연율은 지난해 1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남성 평균 흡연율과 비슷한 수준이다. 청소년의 ‘처음 흡연 경험 연령’도 초등학교 6학년 정도인 12.6세다. 청소년 흡연자들이 처음 담배를 피우게 된 가장 큰 이유로 꼽은 게 ‘호기심’(52.8%)이다.



 청소년기에 흡연하면 성인이 돼 시작하는 것보다 해롭다. 국립암센터 서홍관(가정의학과) 교수는 “약 20년간 흡연하면 암 등 합병증이 생기는데 10대에 담배를 접하면 30~40대면 암에 걸려 조기 사망에 이른다”고 말했다. 볼랜드 박사는 “한국이 지금 경고그림을 도입한다면 한 세대 지난 뒤 담배로 인한 사망자 수와 의료비 지출을 절반으로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방콕·캔버라·멜버른=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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