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통념 깬 악기 배치 … 새로운 베토벤을 만났다

중앙일보 2015.04.21 00:43 종합 22면 지면보기
로열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와 지휘자 이반 피셔가 20일 오후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베토벤 교향곡 전곡 연주를 시작했다. 첫날 교향곡 1·2·5번 세 곡을 통해 악단고유의 입체적 음향이 돋보인 연주를 선보였다. 공연은 23일까지 이어진다. [사진 빈체로]



피셔 지휘 RCO 내한공연 첫날
금관악기 오케스트라 양쪽끝 분리
트럼본 주자는 2악장 끝난 후 입장
23일까지 교향곡 9곡 릴레이 연주
“베토벤이 꿈꾼 유토피아 보게 될것”

악기 배치가 달랐다. 보통 앞뒤로 놓이는 첼로와 콘트라베이스가 서로 먼 곳에 놓였다. 가장 저음 악기인 콘트라베이스는 오케스트라의 맨 뒷줄에 위치했다. 첼로는 오케스트라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금관악기끼리도 헤어졌다. 보통 같은 줄에서 양 옆에 앉는 호른과 트럼펫 연주자도 맨 왼쪽과 오른쪽에 앉았다. 독특한 악기 배치는 이뿐 아니었다. 심지어 2악장이 끝난 후에야 트롬본 주자 세 명이 걸어들어와 합류해 연주하는 파격도 보였다.



 20일 오후 8시 서울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네덜란드의 명문 악단인 로열콘세르트허바우 오케스트라(RCO) 내한 연주 첫날이었다. 지휘자 이반 피셔(64)는 악기를 해체해 독특하게 재배치했다. 같은 음역대의 악기를 분리해 먼 곳에 떼어놓았다. 결과는 생동감이었다. 각 악기의 소리가 독립성을 가지고 살아났다. 첫 곡은 베토벤의 청년 시절 교향곡 1번. 베토벤이 아직 선배들의 규범을 따르고 있을 때의 작품이다. 하이든·모차르트의 영향이 남아있다. 피셔는 각각의 악기군을 살려내 생생하게 움직이도록 지휘했다. 주제를 연주하는 악기 소리가 또렷하게 살아나 객석으로 날아왔다. 음악에서 강조하는 지점 또한 분명했다. 피셔는 이날 오전 기자간담회에서 “베토벤은 극단적인 작곡가였다. 음악은 극단적으로 서정적이거나 거칠다. 전체 교향곡을 연주해보면 그 성품이 보인다”고 말했다. 아직 이전 시대의 규칙을 따르는 1번 교향곡이었지만 피셔는 그 안에서 베토벤 극단성의 씨앗을 발견했다. 각 악기들이 조용하게 연주하던 악상은 총주(總奏)에 이르러 폭발했다. 피셔는 이 효과를 노리고 악단에 분명한 악상을 주문했다. 갑자기 커지거나 작아지는 부분에서 오케스트라는 여러 겹의 소리를 낼 수 있는 역량을 충분히 선보였다.



 ◆일사분란함 보다는 고급스러움=2008년 영국 음악잡지 그라모폰은 RCO를 세계 1위의 오케스트라로 꼽았다. 그러나 이날 보여준 연주는 베를린 필의 일사분란함, 바이에른 방송 교향악단의 기름진 음향과는 거리가 멀었다. 2번 교향곡 3악장의 경우 시작 부분부터 현악기와 관악기의 호흡이 맞지 않고 리듬이 삐걱거리기도 했다.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는 대신 소리의 질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음향에서 자신들만의 독특한 색채를 유지하려 애썼다. 오케스트라의 파격적 배치 또한 이를 위한 것이었다. 5번 교향곡에서는 연주자의 입장 시기까지 바꿔가며 파격을 추구했다.



 류태형 음악 칼럼니스트는 “칼 같이 맞추는 식의 연주는 포기한 점이 있지만 고유의 고급스럽운 색채를 유지하는 데 집착하는 점이 분명히 드러난 연주”라고 평했다. 박제성 음악칼럼니스트 또한 “지휘자의 현대적인 해석과 오케스트라만의 고전적인 음색이 묘한 조화를 이뤘다”고 말했다.



 ◆“음악계뿐 아니라 세계를 변화시켰다”=20일 1·2·5번 세 곡을 연주한 피셔와 RCO는 21~23일 매일 베토벤 교향곡을 두 곡씩 연주해 총 9곡을 완주한다. 피셔는 기자간담회에서 “아홉 곡을 다 들으면 집에 돌아가 ‘베토벤이 이런 사람이었다’고 확신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베토벤은 매우 다양한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며 “교향곡 4·6·8번에는 내면의 고독과 외로움을 담았고, 5·9번으로는 자신을 표현하며 세계를 변화시켰다”고 설명했다. 또 “베토벤의 교향곡은 음악계뿐 아니라 세계를 변화시켰다”는 말도 했다. 베토벤 이전의 작곡가들이 특정계층, 즉 귀족의 유희를 위해 작곡했다면 베토벤은 프랑스 혁명 등 시대 변화에 따라 인간 전체를 위한 음악을 썼다는 얘기다. 피셔는 “베토벤의 교향곡은 계급·국적 불문이며, 이 음악에서 그가 꿈꿨던 유토피아를 만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피셔와 RCO는 아시아 국가에서 유일하게 한국에서 베토벤 전곡 연주를 한다. 127년 전통의 RCO가 베토벤 전곡을 연주하는 것은 1979년 암스텔담 이후 처음인데 지난해 암스텔담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한국을 선택했다. 다비드 바젠 RCO 행정감독은 한국을 택한 이유에 대해 “한국 청중이 클래식 음악에 대한 이해 수준이 높으며 공연장에서 열정적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