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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잡초 예찬

중앙일보 2015.04.21 00:07 종합 28면 지면보기
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
봄을 반기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으랴마는 정원 가꾸는 것이 가장 큰 즐거움인 내게 특히 봄은 설렘 그 자체다. 가을부터 모아둔 꽃씨들을 보면서 땅에 심을 이날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이런 나를 이해하지 못하는 지인도 많다. 그 정성으로 차라리 텃밭이라도 하나 일구면 얼마나 생산적이냐는 것이다. 하지만 삶이라는 것이 언제나 생산성이나 효율성만으로 재단될 수는 없다. 남들이 뭐라고 해도 나는 그저 꽃이 좋을 뿐이다. 자고로 꽃 좋아하는 사람치고 나쁜 사람 없다는 어머니의 지론으로 스스로를 격려하면서.



 그러나 좋은 일에 방해가 없을 리 없다. 나의 봄은 늘 잡초와의 전쟁으로 시작된다. 겪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리라. 잡초가 보여주는 그 무서운 생명력을. 잡초가 취하는 생존전략도 가지가지다. 어떤 놈은 남들보다 일찍 싹을 틔운다. 미리 터를 잡고 앞서 나가기 위해서다. 다른 놈은 인해전술이 특기다. 좁은 틈바구니에 수십 개의 조그만 싹들이 파르르 올라오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두렵기까지 하다. 때로는 위장전술이 사용되기도 한다. 자기와 똑 닮은 화초 옆에서 자라나니 그냥 지나치기 일쑤다. 그렇게 때를 놓치면 어느 새 뽑아내기 힘들 정도로 커지고 만다. 없애고 없애도 다시 살아 나오는 잡초와의 싸움은 그래서 끝이 보이지 않는 전쟁이다.



 잡초와 씨름하면서 보낸 시간이 많아서일까. 화초를 키우면서 오히려 잡초 박사가 되었으니 인생은 그래서 흥미롭다. 잡초를 보면 무조건 미워하는 마음도 줄어들었으니 미운 정도 정인가 보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눈에 띈 낯선 꽃망울. 아! 잡초도 꽃을 피우는구나. 이름 없는 꽃도 이렇게 아름답구나. 탄성이 절로 나왔다. 그리고 반성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동안 내 입장에서만 선악과 미추를 판단하고 없애려 했으니 잡초 입장에서 이보다 더 억울한 일이 어디 있을까.



 그 후 다시 보는 잡초는 예전과는 달리 감탄스럽기 그지없다. 어찌 저런 구석에서도 싹을 틔울까. 하루 이틀 사이에 무섭게 자라나는 저 위대한 생명력. 저들이 없었다면 우리의 산과 들은 또 얼마나 황량할까. 그래서 시인은 노래한다. “잡초야말로 고향을 지키는 민초고 거친 산야 살찌게 하는 꽃”이라고. 잡초에 대한 나의 사상적 전향을 남들은 이해하지 못하리라. 그래도 잡초를 예찬한 시들이 적지 않은 것을 보면 나 혼자만의 생각은 아닌 듯해서 은근히 마음이 놓이기도 한다.



 알고 보면 잡초에도 이름이 있다. 잡초에 대한 나의 사랑은 그 이름을 찾아내서 불러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새로운 관계를 만드는 힘이다. 단순한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던 것이 비로소 나에게로 다가와 꽃이 되는 이 놀라움. 새로운 풀을 만날 때마다 여기저기 물어서 이름을 찾아주는 것이 이제는 나의 새로운 즐거움이 되었다. 바랭이, 쇠비름, 너도방사니, 소루쟁이, 망초대, 명아주, 애기똥풀, 며느리배꼽…. 얼마나 익살스럽고 순박한 이름들인가. 생각을 바꾸고 나니 잡초가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내 정원은 늘 꽃밭이다.



 오늘도 언론은 수많은 사건 사고를 전달하느라 분주하기 짝이 없다.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많은 사람이 모여 살다 보니 어찌 문제나 갈등이 없을 수 있으랴. 그러나 단순하게 생각하면 갈등의 근본 원인은 적대적 잡초관이 아닐까. 내가 좋아하지 않거나 필요 없다고 생각하면 잡초로 규정하고 없애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 것 말이다. 내가 보는 잡초가 다른 이에게는 소중한 꽃일 수도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잡초를 결코 우습게 볼 일이 아니다. 잡초는 다른 이로부터의 인정을 기대하지 않는다. 밟히고 밟혀도 다시 되살아나는 것으로 스스로를 증명할 뿐이다. 고난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는 불굴의 의지. 지금 안 되면 다음을 기대하면서 씨를 뿌리는 헌신. 그러니 잡초 같은 인생은 비난이나 조롱이 아니라 찬사이어야 마땅하다. 세상 살기가 힘들어질수록 더욱 그렇다. 체념하지 않고 인고의 세월을 버틴다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일까.



 부디 잡초라고 무시하고 함부로 짓밟지 말기를. “한 송이 꽃도 피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잡초다.”



민은기 서울대 교수·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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