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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지금 꼭 4대 강 둘러봐야 했을까

중앙일보 2015.04.21 00:05 종합 29면 지면보기
이명박 전 대통령(앞)이 낙동강 강정고령보 전망대에서 4대 강 사업 설명을 듣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김윤호
사회부문 기자
검은 양복에 보라색 넥타이. 신문·방송 카메라가 올 것을 의식했던 듯 얼굴엔 메이크업을 했고 머리는 기름을 발라 넘겼다. 20일 오후 2시 대구시 달성군 낙동강 강정고령보에 온 이명박(MB) 전 대통령의 모습이 그랬다.



 평소 서울 논현동 자택과 삼성동 사무실을 오가는 정도였던 이 전 대통령으로서는 흔치 않은 나들이였다. 그렇게 오랜만에 택한 나들이 시점과 장소는 좀 묘했다. 지금은 ‘성완종 리스트’로 말미암아 현 정권이 공격받는 시기다. 이 전 대통령의 치적이라던 자원외교 관련 수사의 불똥이 현 정권에 옮겨붙어서다. 그런 시기에 이 전 대통령이 박근혜 대통령의 국회의원 지역구였던 달성군을 찾았다. 그 첫 방문지는 한때 현 정권이 공격했던 4대 강 사업의 현장이었다.



 강정고령보 옆 물 박물관 ‘디아크(The ARC)’에 50여 분 정도 들러 4대 강 사업 설명을 들을 때 이 전 대통령은 시종 웃는 표정이었다. 박물관 3층 카페에서 커피를 한잔 마시면서는 함께 온 류우익 전 대통령 실장 등에게 “여기선 커피보다 물을 마셔야 한다”는 농담도 건넸다. “4대 강, 관광에도 좋지”라고도 했다.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기자들의 질문에는 “정치적인 사안에 대답할 필요가 있나. 모든 게 잘 진행돼 나라 안정, 국민이 편안해야 한다”고만 했다.



 이 전 대통령의 강정고령보 방문은 1박2일 대구 일정의 시작이었다. 저녁엔 대구 시내 호텔에서 권영진 대구시장, 김관용 경북도지사, 신일희 계명대 총장, 이인중 전 대구상공회의소 회장 등 지역 인사들과 식사를 같이했다. 께름칙했음인지 21일 치려던 골프는 20일 오후 늦게 취소했다.



 대구상의에 따르면 이 전 대통령의 방문은 성완종 리스트가 공개(4월 10일)된 직후에 최종 결정됐다. “두 달 전에 대구를 찾아달라고 청했고, 일주일쯤 전 약속이 확정됐다”는 게 대구상의 측의 설명이다. 강정고령보를 둘러본 건 “4대 강 사업으로 만든 16개 보 가운데 가장 큰 것이어서”라고 했다.



 “나라가 뒤숭숭하고 세월호 1주기가 얼마 지나지 않은 이때 꼭 대구를 방문하고 골프까지 계획했어야 하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이 전 대통령의 측근은 “대한민국이 조용한 적이 있었느냐. 굳이 정치적인 시각으로 해석한다면 몰라도 대구든 어디든 방문하는 게 별일 아니지 않으냐”고 답했다.



 그래도 뭔가 개운찮았던 건 기자만이 아닌 듯했다. 이 전 대통령이 강정고령보를 둘러볼 때 누군가는 행여 들릴세라 작은 소리로 “왜 이런 시기에 오셔가지고…”라고 했다. 그러고 보니 강정고령보에서 기자가 대구 방문 목적을 물었을 때 이 전 대통령은 이렇게 답했다. “놀러 왔으니 잘 놀다 가야지.”



김윤호 사회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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