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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호근 칼럼] 예향의 수모

중앙일보 2015.04.21 00:05 종합 31면 지면보기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신격화된 천황제로 똘똘 뭉친 전전(戰前) 일본도 지역분열이 극심했다. 1868년 메이지유신 당시 지역국가인 번(藩)이 280개나 난립했으니 번벌(藩閥) 간 쟁투가 오죽했겠는가. 그런 상태에서 일찍 개화에 눈뜬 사쓰마, 조슈번의 무사계급이 중앙권력을 장악하고 개혁을 단행하자 도처에서 반발이 일어났다. 무사정신의 전형으로 존경받는 사이고 다카모리(西鄕隆盛)가 중심을 형성했다. 사이고는 군사를 일으켜 도쿄로 진격하다가 급하게 편성된 메이지 정규군에 의해 진압됐다. 이후 사쓰마, 조슈 출신 세력은 승승장구해 일본을 제국열강의 반열로 끌어올렸고 결국 파시즘으로 밀려들어 갔다. 이 악몽의 질주에서 조연에 그치거나 동원 대상이 되었던 다른 번들의 불만은 높았다.



 가와바다 야스나리(川端康成) 작 『설국』의 그 유명한 도입부 ‘국경의 긴 터널을 지나면 설국이었다’처럼 1937년에도 국경 의식은 엄연히 존재했다. 그런데 전후 일본 정치에서 지역 대립이 중앙정치를 훼손하지 않은 것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침략국가라는 대외적 비난에 공동으로 대처한다는 내부적 연대가 작동한 탓이고, 폐(迷惑)를 끼치지 않는다는 오랜 전통이 내부 분열을 억제했던 것이다. 아베 총리가 메이지유신의 정신적 지도자인 요시다 쇼인(吉田松陰) 유적지에 달려가도 조슈번의 지역주의로 비난하지 않는다. 자칫 정치적 지역갈등으로 번졌을 이 역사적 유산을 ‘향토적 문화주의’로 전환시킨 것은 일본 현대사에서 봐줄 만한 대목이다. 80년대 ‘일본 미(美)’에 대한 세계 관심이 고조된 것도 그런 생존의 지혜에 빚지고 있다.



 ‘충청 총리 낙마하면 다음 총선·대선 두고 보자.’ ‘뒤끝 있음’을 강하게 암시하는 이 앙갚음류(類) 협박은 무엇인가. 그것도 민주화 40년을 앞둔 2015년, 3김(三金)시대의 불가피한 정치유산을 청산하고 발전적 지역경쟁 또는 향토 자산을 문화자본으로 승화시켜야 할 이 시점에서 말이다. MB 정권에서 정운찬 충청 총리가 있었음에도 ‘두고 보자’는 속류 정치의식은 아무래도 예향(禮鄕) 충청도민의 심성을 왜곡하는 정치협잡의 표출임에 틀림없다.



 충청포럼을 지휘했던 고(故) 성완종 회장의 작품인지는 모르겠으나 만에 하나 이완구 총리와 사전교감이 있었다면 불법자금을 받은 것보다 더 중대한 범죄라고 생각한다. 총리 인준을 두고 지역주의를 촉발하는 플래카드를 거는 행위도 그렇거니와 민주화에 바친 국민의 열정과 희생을 짓밟고 우리를 다시 지역갈등의 늪으로 퇴행시키는 저 저급한 슬로건이 그렇다. 충청포럼처럼 도정쇄신과 지역발전을 위한 명사 모임은 도(道)마다 활동 중이다. 그들이 명사이고 사회지도자인 만큼 공론장에 나서면 자기검열 기제를 더 엄격하게 가동하는 것이 상식이다. 그렇지 않으면 모리배와 무엇이 다르랴.



 충청도는 예향(禮鄕)이다. 17, 18세기 조선이 왜란과 호란의 후유증을 극복하고 번듯한 국가로 거듭나는 정신적 긴장을 생산해 낸 것은 충청에 터를 잡은 호서(湖西)학파였다. 호서학파의 핵심은 예학(禮學), 현실의 근본을 예의와 신의, 언행과 몸가짐으로 바로잡는다는 것. 호서학파의 거두는 회덕의 송시열, 노성의 윤선거와 윤휴였는데, 그 유명한 예송(禮訟) 논쟁에 목숨을 건 것도 민심의 본을 만들겠다는 사(士)의식의 발로였다. 송시열이 왜 사약을 받으며 ‘주자가례’를 제자에게 주었겠는가. 송시열의 오랜 친구 윤휴가 결국 숙종의 사약을 받아야 했던 이유는 예를 통해 하늘의 뜻을 실행한다는 그들 나름의 통치철학에 내재돼 있다. 예의는 얼굴 표정을 바로 하고(齊顔色) 말을 순조롭게 하는 데에서(順辭令) 시작된다고 했다. 그러니 ‘충청도 말투가 그래서…’는 사의식의 자존을 무시한 발언이다.



 충청도 말투가 흐릿하다는 뜻인가? 의뭉스러운가? 예의(禮義)가 진심과 정의를 뜻한다면 “정말 성의를 다했는데…”라는 성완종 회장의 한탄은 부정(不正)에 대한 토로였다. 은행 돈을 분무기로 무차별 살포한 행위가 성의였는가. “충청도 말투가 그래서…”는 진실을 등진 가식의 궁색한 변명이었다. 모두 한국의 정신 자산을 내팽개쳤다는 점에서는 공통이다. 어지러운 나라를 언행과 몸가짐으로 바로잡겠다는 예향의 가르침을 배반했음에 공통이다. 도백, 국회의원 선거에서 치렀던 일을 일일이 기억할 수는 없다 해도 적어도 중요한 모임들을 주관해줬던 사람에게 사적 의리라도 표명해야 했다. 이 총리의 말대로 고인과 별 관계가 없기를 바라지만 지난 1년간 착·발신 전화가 217통이나 된다니 그런 것도 아닌 듯하다. 충청도 사투리로 서민 정서를 문학으로 승화시켰던 고 이문구 작가가 이렇게 말하는 듯하다. “그러시먼 못쓔. 그래서는 쓰겄슈? 인젠 쬐끔 늦은겨. 다 시절 돌아가는 걸 보아가메 눈치로 허야는 것을. 탐두 많기두 휴.”(이문구, ‘암소’ 여기저기 발췌).



송호근 서울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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