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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국민 신뢰를 잃은 총리의 사퇴, 불가피했다

중앙일보 2015.04.21 00:03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완구 국무총리가 어제 해외 순방 중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사의를 표명했다. 박 대통령은 금명간 또는 오는 27일 귀국 직후 사의를 수용할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총리 거취를 둘러싼 정국의 혼란은 일단 정리될 것으로 보인다. 만시지탄(晩時之歎)이 있지만 총리 사퇴는 불가피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6일 중남미 순방을 위해 출국하기 전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로부터 사실상 ‘총리 사퇴 불가피’ 여론을 전달받았다. 대통령은 “다녀와서 결정”하겠다고 했으나 27일 귀국까지 기다리기에는 혼란의 정도가 컸다.



 특히 중요 변수는 야당의 해임건의 추진이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의원총회를 열어 해임 건의안 제출에 의견을 모을 태세였다. 해임건의의 가결에는 새누리당 의원 14명 이상이 찬성에 합류해야 한다. 만약 이런 일이 벌어져 가결이 되면 박근혜 정권은 내부 분열로 급속한 레임덕(lame duck)에 빠졌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아직 5년 임기의 절반도 채우질 못했다. 첫해는 잇따른 인사 참사와 국정원 댓글 사건, 둘째 해는 세월호 사태와 정윤회 문건 파동으로 국정의 에너지를 소진시켰다. 내년 4월엔 총선이 기다리고 있다. 일할 시간이 별로 없는데 총리 문제로 권력 내 지진이 터지면 상황은 심각해지는 상황이었다. 공무원연금과 노동시장의 개혁을 포함한 4대 개혁과제가 흔들리게 된다.



 이 총리는 4·19 기념식에서 자유민주주의를 더욱 성숙시켜 국가의 품격을 높이자고 말했다. 다수 여론이 총리의 사퇴를 요구했던 것은 바로 국가의 품격 때문이다. 총리는 대통령의 위임을 받아 국정을 총괄하는 자리다. 그런 인물이 성완종 사건에서 거짓말, 말 바꾸기, 둘러대기로 일관했다.



 그는 성 전 회장과 친밀한 관계가 아니라고 했다. 그런데 그가 최근 20개월 동안 성 전 회장을 23번 만났다는 기록이 발견됐다. 검찰 조사 결과 지난 1년여 동안 두 사람 사이에 휴대전화 착·발신이 210여 차례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절반만 연결됐어도 100여 차례 통화가 있었던 셈이 된다. 성 전 회장이 3000만원을 전달했다는 부여 선거사무소에 분명히 성 전 회장이 갔으며 두 사람이 만났다는 증언도 이어지고 있다. 그런데 이 총리는 자신과 그렇게 긴밀히 접촉했던 성 전 회장이 선거사무소에 왔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고 한다. 그가 여러 차례 말을 바꾼 사실을 의원들이 지적하자 그는 ‘충청도 말투’라는 궤변으로 충청도민의 명예를 훼손했다.



 3000만원의 진실과 별개로 이 총리는 총리직을 수행할 수 있는 품격과 능력을 상실했다. 중앙일보가 그의 조속한 사퇴를 요구한 것도 그런 이유였다. 그는 “나에게도 명예가 있다”고 주장해 왔다. 만약 그가 정말 3000만원을 받지 않았다면 시간이 그의 명예를 지켜줄 것이다. 이제 박 정권은 후임 총리를 준비해야 한다. 여러 덕목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 정권의 분위기를 일신할 수 있는 도덕성을 갖춘 총리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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