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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현 교수의 스트레스 클리닉] 건강 프로그램이 날 더 아프게 하네

중앙일보 2015.04.21 00:01 강남통신 8면 지면보기


01 100% 진실인 의학 정보는 없다

병에 걸릴까 맥주 맛도 잃어버린 40대 남성



Q (건강 염려증에 걸린 중년남) 40대 중반 남성입니다. 저는 건강에 관심이 많은데, 쏟아져 나오는 건강 관련 프로그램을 시청할 때마다 나도 저런 병에 걸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이 심해집니다. 특히나 고통을 수반하는 질병에 대한 방송을 볼 때 불안감은 더 커집니다. 예를 들어 통풍 관련 프로그램을 보고 나선 맥주를 마실 때 맥주가 통풍을 유발한다던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맥주 맛이 없어지고 마실 기분도 사라집니다. 뛰는 것도 무릎 관절에 안 좋고 잘못하면 인공 관절 시술을 받아야 한다는데 하는 생각이 들어 운동하고 나서도 개운치가 않습니다. 건강 프로그램이 저에게 주는 또 다른 스트레스는 같은 문제라도 전문가들의 대답이 상당히 다를 때가 있다는 겁니다. 어떤 이야기를 믿어야 하는 것인지 혼란스럽고 머리가 아픕니다. 건강 프로그램을 보지 말아야 할까요.



A (웃음이 보약이라는 윤 교수) 건강하려고 건강 콘텐트를 보는 건데 그 내용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삶에 제한까지 생긴다면 슬픈 일입니다. 더욱이 건강 프로그램을 보지 말아야 하느냐는 질문까지 나왔다면 살짝 건강 프로그램에 중독이 되어 있는 상태라 보여지는데요. 애주가들이 항상 술 끊겠다 하고 애연가들이 항상 올해는 담배 끊겠다고 하는 것처럼요.



 건강 콘텐트가 중독을 일으킨다는 건 건강이란 주제가 무언가 우리 마음 안의 원초적인 본능을 자극한다는 것이겠죠. 건강에 관심을 갖는 것을 뒤 집어서 보면 죽음에 대한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행동입니다. 죽지 않기 위해 사는 것만큼 강력하고 원초적인 삶의 동기는 없을 겁니다. 그러나 우리는 철학적 존재이기에 그저 산다고만 해서 삶의 만족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건강염려증이란 병이 무섭습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살려고 하는 것이고 그래서 건강에 관심을 가진 건데 너무 강박적으로 건강을 걱정하면 왜 살려고 하는지에 대한 방향성이 흩어져 버리는 거죠. 90세까지 병 없이 살았는데 마지막 30년은 건강 염려만으로 시간을 보내신 경우도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건강 프로그램을 안 보는 게 해답이 될 순 없겠죠. 그것 역시 불안에 따른 회피 행동일 뿐입니다. 건강 프로그램을 건강하게 잘 바라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생각됩니다. 요즘은 교양정보 프로그램뿐 아니라 오락 프로그램에서도 학술 논문이나 구체적인 통계를 언급하는 게 유행처럼 늘어났는데요. 지금 전달하고 있는 정보가 과학적 근거가 튼튼하다는 것을 보이기 위함이겠죠. 연구가 실린 해외학술잡지 이름과 출판 연도가 함께 소개되면 과학적 사실인가 보다 하는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정보의 홍수 속에서 중요한 신호와 불필요한 소음을 구분하는 것은 이제 중요한 일이 되었습니다. 연구 통계를 어떻게 바라보는 것이 좋을까요. 우선 통계는 예측이지 진실이 아닙니다. 그럴 가능성이 있다는 추측일 뿐이죠. 그런데 의학 연구 결과가 의학 콘텐트로 가공되는 과정에서 추측성 정보가 과장되거나 변형되는 경우가 흔합니다. 제 연구의 예를 들면 나이가 젊었을 때는 복부비만과 기억력 저하가 서로 상관 관계를 보이다가 나이가 들면 연관성이 없어지더라 하는 논문을 해외 학회지에 발표했습니다. 핵심은 나이 들어선 연관성이 없어질지도 모른다는 것이죠. 논문을 출판하는 영국 회사에서 홍보를 하고 싶다 해 그러라 했더니 그 다음 날 세계 여러 나라 언론 수십 곳에 제 연구 기사가 떴는데, 황당하게 기사 제목이 ‘비만하면 치매에 걸린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기사 보신 분들, 식사할 때마다 치매 걱정에 치매가 오지 않을까 걱정이네요.



 막연히 불안을 유발하는 과장된 정보 제공은 자제해야 합니다. 더불어 여러 의학 정보를 받아 들일 때 무조건 이 말이 100% 진실이란 식으로 믿는 것도 조심해야겠죠. 의학 연구도 연구방법론에 따라 그 가치가 천차만별로 차이가 납니다. 그리고 가장 훌륭한 연구방법론을 활용한 연구라도 진실에 근접한 것이지 완벽한 것은 아닙니다. 시간이 지나면 결과가 반대로 뒤바뀔 수도 있습니다.



 여러 매체에서 들은 건강 정보에 대해선 좋은 정보라며 곧장 강박적으로 따라 행동하지 마시고 머리에서 한번 스캔을 쫙 하고 그 정보를 참고 하는 정도로 가볍게 사용하시면 어떨까 싶습니다.



02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현대인들



Q 그렇군요. 논문이나 통계가 인용되면 따져보지 않고 믿으려 했던 경향이 있었던 것 같네요. 그런데 가만히 보니 제 불안이 건강에만 머물러 있지 않고 미래 전반에 대해 퍼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불안감에 경제 기사나 서적을 뒤져 보다 거기에 나온 경제 예측을 과신해서 주식을 사거나 팔았다가 손해 본 경우도 많습니다. 그리고 미래가 궁금해 점 집을 찾아가기도 하고요. 미래에 대한 제 관심, 너무 지나친 걸까요.



A 시대를 막론하고 사람들은 미래를 알고 싶어합니다. 요즘같이 하루가 다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선 더 그런 것 같은에 이유가 뭘까요. 첫 번째는 파워에 대한 욕구입니다. 미래는 안다는 것은 곧 현재를 통제하는 힘을 가지는 것이죠. 두 번째는 불안입니다. 불안은 생존을 위해 작동하는 뇌의 위기관리시스템이 만드는 신호죠. 불안은 현재의 감정이고 불안해 하는 내용은 미래의 일인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미래가 걱정되어 불안한 것이죠. 마음이 불안할수록 미래에 대한 관심이 증폭됩니다. 중요한 일을 앞두고 점집을 가는 이유입니다.



 빅 데이터라는 말이 익숙해진 세상에 살고 있죠. 디지털로 전환된 수많은 데이터에서 각종 통계 자료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그 자료를 바탕으로 경제 흐름부터 선거 당선자 예상, 그리고 오늘 프로야구 경기 승패까지 미래를 예측하는 확률 정보가 세상에 가득한 상황입니다. 그 많은 정보 중 어느 것이 진짜 신호인지 아니면 불필요한 소음인지 구분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은데요.



 정보가 신호인지 소음인지 구분하지 못하는 이유 중의 하나가 사실 여부보다 내가 믿고 싶은 것을 믿으려는 경향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정치적 결정 같은 중요한 결정을 충분한 이성적 추론 없이 상당히 직관적으로 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를 ‘인지의 닫힘 현상(cognitve closure)’라고 부릅니다. 내 지역에 맞는 정치인을 뽑으려면 객관적인 그 사람의 경력과 품성을 우선 보는 것이 중요하겠죠. 우리 고장에 대한 이해는 있는지, 계획 수립과 추진력을 검증할 만한 과거 경력이 있는지, 신뢰성 있게 일관된 삶을 살았는지 등요. 그런데 이미지 정치를 욕할 수만도 없는 게 정치적 결정이 주관적인 요소에 의지해 하는 경향이 큽니다. 그냥 생긴 게 마음에 든다는 식으로요.



 그리고 미래에 대한 예측 자체가 미래를 조정하기도 합니다. 경제가 어려워진다는 예측 통계치가 심리적 위축을 주어 실제 경기를 침체시킬 수도 있습니다. 선거도 마찬가지죠. 선거에 우세하다는 통계가 그 사람에 대한 쏠림을 만들 수도 있거든요.



 미래에 대한 궁금증 자체를 나무랄 순 없겠죠. 너무나 당연한 욕구입니다. 그러나 예측은 통계 기법을 이용한 확률에 불과합니다. 확률이 높다고 그것이 꼭 일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슈퍼컴퓨터를 동원한 기상 예측도 쉽지 않은 것이 현실입니다. 참고만 할 뿐 지나치게 미래 예측 통계에 마음을 뺏길 필요는 없습니다. 마음을 빼앗겼다는 것은 내가 믿고 싶은 것을 믿고 있다는 뜻일 수 있습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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