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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야의 길!] 망설일 때 꼭 해야 할 것, 여행·산책·배우기

중앙일보 2015.04.18 00:05 종합 29면 지면보기
한비야
국제구호전문가
공부가 제일 쉽다고 누가 말했던가? 이번 학기부터 박사과정을 시작한 내게는 참으로 죽을 맛이다. 정보수집력, 기억력, 집중력이 떨어져서 그런 건 물론 사회생활과 취미생활을 최소화하고 자는 시간을 최대로 줄여도 공부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해서 더욱 그렇다. 이 때문에 학기 초부터 읽어야 할 자료와 제출해야 할 과제가 밀리고 쌓여 매일 동동거리고 마음 졸이며 살고 있다.



 어제도 수업 발표 준비로 밤을 꼬박 새웠더니 아침 등굣길에 골이 띵하고 토할 것만 같았다. 내 입에서 한탄의 소리가 저절로 터져 나왔다.



 ‘아, 내가 무슨 영화를 보겠다고 이러고 있나? 공부 괜히 시작했나 봐.’



 이런 생각이 스치자 내 안의 내가 기다렸다는 듯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힘들면 그만둬. 누가 시켰어?’ 이 말에 화들짝 놀라서 대답했다.



 ‘누가 시켰대? 말이 그렇다는 거지. 힘들다는 말도 못하느냐고?’



 씩씩거리며 봄꽃 활짝 핀 교정을 지나 교실로 가다 또 혼잣말이 나왔다.



 ‘아니야. 박사과정 시작한 건 참 잘했어. 힘들지만 재미있잖아? 역시 공부는 할까 말까 할 때 눈 딱 감고 하는 거야.’



 이렇게 누구나 살면서 크고 작은 ‘할까 말까의 순간’을 맞게 된다. 그럴 때 여러분은 어떻게 하는가? 나는 그동안 망설이고 선택했던 경험을 바탕으로 몇 가지 원칙을 만들었다. 할까 말까 할 때 절대로 하지 않는 것과 반드시 해야 하는 기준을 정해두니 선택이 훨씬 쉬워졌다.



 그중 오늘은 할까 말까 할 때 절대 하지 않는 것 세 가지와 꼭 해야 할 것 두 가지만 말해보겠다. 첫째는 물건은 살까 말까 할 때 사지 않는다. 둘째는 여행이나 출장이나 야영 짐을 쌀 때 가방에 넣을까 말까 하는 물건은 넣지 않는다. 이런 것들은 있으면 편하긴 하지만 없어도 크게 지장 없는 물건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직업 특성상 자주 현장에 가야 하는데 여행가방에 넣고 싶은 걸 다 넣어 비행기를 타고 트럭을 타고 배를 타고 심지어는 낙타 등까지 타고 사막 깊숙한 구호현장에 간다고 생각해보라. 끔찍하지 않은가? 또한 무릎이 아프도록 무거운 짐을 이고 지고 산에 올라 야영하고 돌아와 배낭을 풀 때 한 번도 쓰지 않은 물건이 보이면 그게 얼마나 꼴 보기 싫겠는가?



 셋째는 밤 10시 넘어 먹을까 말까 할 때는 먹지 않는다. 나도 알고 있다. 야참의 유혹이 얼마나 달콤한가. 특히 늦은 저녁 먹는 양념치킨이나 한밤중에 끓여 먹는 라면의 그 맛은 한국 사람들만이 누릴 수 있는 호사이자 특권이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참아야 한다. 다음날 거울에 비칠 퉁퉁 부은 얼굴과 늘어날 뱃살을 생각하면서.



 반대로 할까 말까 망설일 때 꼭 하는 것은 여행과 산책이다. 1박2일 이상의 국내외 여행은 물론 30분짜리 동네 산책까지 모두 그렇다. 갈까 말까 망설이는 그 시간에 동네나 교정을 한 바퀴 돌고 오면 단박에 몸과 마음이 상쾌해진다. 아무튼 일상생활 중에 잠시라도 자연과 함께 있을 수 있는 기회, 걸을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무조건 꽉 잡아야 한다.



 할까 말까 할 때 반드시 해야 하는 게 또 있다. 무엇인가를 배우는 거다. 대학 공부나 석·박사 학위만이 아니라 취미로 배우는 악기나 운동, 외국어도 마찬가지다. 일단 시작해보라. 힘들지만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른다. 어제까지 몰랐던 걸 오늘 알게 되는 놀라움, 어제까지 안 되던 걸 오늘 할 수 있다는 기쁨, 뭔가 날마다 조금씩 늘고 있다는 신기함을 하나씩 혹은 한꺼번에 맛볼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이 나이에 배워서 어디에 쓰겠느냐는 사람도 많다. 그중에는 내 또래도 많다. 안타깝다. 이 나이라니 도대체 무슨 나이를 말하는 건가? 지금 중국어를 배워서 전문 통역가가 되긴 어렵겠지만 배우고 싶었던 언어를 배우는 그 과정 자체는 충분히 즐길 수 있다. 하다가 중단하면? 그래도 손해날 것 하나도 없다. 한 만큼 이익이니까.



 우리 성당, 팔순 할머니는 작년에 한글학교에 최고령자로 입학하셨다. 어려운 시절에 태어나 평생 ‘까막눈’으로 사셨는데 어느 날 까막눈으로 죽을 수는 없다고 결심하셨단다. 한글 배우는 내내 길거리 간판을 보거나 성경을 읽을 수 있는 게 너무나 신기하고, 망설이고만 있었던 지난 세월이 후회스럽기 짝이 없었단다. 요즘은 신약성서를 노트에 베껴 쓰면서 예쁜 글씨 연습을 한다는 할머니가 이런 말을 하셨다.



 “다들 이 나이에 무슨 한글 공부냐지만 이 나이에 배워도 앞으로 10년은 써먹을 수 있으니 이게 남는 장사지.”



 멋지지 않은가? 고개가 끄덕여지지 않는가? 할머니 말대로라면 50대 후반에 박사과정 하겠다고 나선 나는 대박 나는 장사를 하고 있는 거다. 지금 이 순간, 뭔가를 배울까 말까 망설이는 분들은 두 눈을 질끈 감고 용기 내어 딱 한 발짝만 내디뎌 보시길 바란다. 내가 그 1g의 용기, 기꺼이 보태드리겠다. 공부하느라 고군분투하는 내게도 1g의 작은 용기를 보태주시길. 우리 서로, 무조건 파이팅!



한비야 국제구호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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