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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생각지도] 성완종이 남긴 교훈

중앙일보 2015.04.18 00:05 종합 30면 지면보기
이훈범
논설위원
무명의 시골 초선 주지사가 눈 떠보니 미국 공화당 부통령 후보가 돼 있었다. 후보 수락연설에서 세라 페일린이 자유민주주의의 힘과 가족의 가치, 미국의 미래를 외쳤을 때 사람들은 열광했다. 낙태와 동성애 반대, 총기 허용, 재정지출 축소가 소신인 것처럼 보인 젊은 여성 후보는 일약 보수의 아이콘이 됐다.



 그저 답안지를 달달 외운 빈 깡통이었음이 TV토론에서 드러났어도 인기는 식지 않았다. 자서전이 발간 일주일 만에 70만 부가 팔려나갈 정도였다. 사람들이 환호했던 건 그녀의 보수주의 가치가 아니었던 거다. 자녀 학교의 하키 시합에 가서 응원하고, 맥주팩을 들고 다니며 주말을 즐기는 평범한 미국인의 모습에 동질감을 느꼈던 거였다.



 신데렐라의 마법이 풀린 건 실력 아닌 실체가 드러난 탓이었다. 그녀는 결코 평범한 미국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공무출장에 가족들을 동반해 공금을 유용하고, 선거자금으로 럭셔리 원피스를 15만 달러어치나 샀으며, 동생의 전남편을 자르라는 지시를 거부한 경찰국장을 해임하고, 압력을 넣어 지인들을 여기저기 취직시켰다.



 알고 보니 특권층이었던 거다. 그것도 남보다 자신을 재는 잣대가 느슨한, 올드보이들보다 하나 나을 게 없는 기득권층이었던 거다. 유권자들의 실망과 함께 2008년 미 대선은 하나 마나 한 선거가 됐다.



 성과는 있었다. 미국인들이 숨겨진 진실을 알게 된 것이다. 보수와 진보로 분열돼 있는 줄만 알았던 미국이 실상은 보통 사람들과 특권층으로 나뉘어 있다는 것 말이다. 이듬해 티파티 운동이 생겨난 게 다른 이유가 아니다. 많은 미국인이 보수건 진보건 정치·경제·문화 각계에 포진한 특권 엘리트들이 자원을 독점하고 세제 지원까지 받는 데 놀라고 분노한 것이다.



 글로벌 시대에 같은 현상이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게 놀라운 일은 아니다. 이른바 ‘성완종 리스트’ 사건을 바라보면서 퍼뜩 든 생각이 그것이었다. 이 나라 역시 보수와 진보의 분열보다는 보통 사람과 특권층의 유리가 더 문제라는 사실 말이다.



 이 나라 보통 사람들은 욕지기가 끓어오르다 못해 허탈하다. 정치권 줄대기를 ‘신뢰’라고 생각했던, 그 신뢰가 ‘보험금 지급 거부’로 깨지자 배신감에 치를 떨며 목숨까지 내던져야 했던 자수성가 기업인의 흑역사(黑歷史)를 보는 마음이 불편하다. 뇌사(賂謝)를 ‘대가성 없는 후원’으로 자기요량하고 보험금 지급 요청에 ‘선 긋기’와 ‘오리발’로 대처한 특권층의 그림자가 뒤로 어른거리는 까닭이다.



 어찌 보면 지금 불판 위에 오른 특권층은 그런 후원을 빚으로 여기지 않은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 과거 그와 거래했던 특권층이 무탈한 것을 보면 말이다. 과거 정권에서 두 번이나 유죄가 확정됐다 두 번 모두 특별사면을 받은 걸 빚 갚기와 무관하달 수 없다.



 그렇다고 불판 위 특권층이 용감한 결단으로 부패의 고리를 끊은 것도 아니라는 게 슬픈 현실이다. 앞으로도 언제든 다시 비슷한 후원을 받아 성의껏 돕고 여의치 않으면 또 “우리는 남이다”는 선을 그을 게 분명한 일이다. 예상 가능한 것이기에 성완종도 스스로 정치권 갑(甲)이 되고자 그토록 무던히 애썼던 게 아닌가. 그 역시 보통 사람들은 생각도 못할 특권을 누리고 있으면서 말이다.



 실력을 쌓았는지 아니면 또 누가 써줬는지 페일린은 몇 해 전 한국에 와서 제대로 연설을 했다. “정실(情實) 자본주의(Crony Capitalism)는 부를 창출하지 못한다.” 미국 얘기였지만 정실 자본주의의 어원이 그렇듯 우리 현실에 더 잘 들어맞는다. 특권층이 승패를 결정하는 시장에서 정경유착은 사라지지 않는다. 그곳에 혁신적 기업은 설 자리가 없고 지속 가능한 성장도 따라서 어려워진다. 거기에 보통 사람을 위한 자리는 있을 리 만무하다. 차기 대통령을 넘본다는 그녀가 대오각성 보통 사람이 됐는지는 모르겠으나 말만은 귀담아 들을 만하다.



이훈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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