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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산책] 아픔은 사랑을 여는 문이 될 수 있어요

중앙일보 2015.04.17 00:11 종합 32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혜 민
스님
지난 일요일, 인사동 ‘마음치유학교’에서 귀한 분들을 맞았다. 사랑하는 자녀나 배우자, 부모님 등 나의 소중한 가족을 먼저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고 그 충격으로 오랜 시간 고통받는 분들과 함께 치유의 시간을 가졌다. 『멈추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사람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면서 지난 3년 동안 마음이 외롭고 힘든 많은 독자분을 만나게 되었다. 그 과정 속에서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는 한 명의 종교인으로서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 보탬이 되는 역할을 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늘 함께했다. 특히 세월호의 아픔을 겪으면서 그 고민은 더욱 깊어만 갔다.  



 물론 학계에 남아 미국에서 교수로 사는 것도 의미가 있고, 문을 걸어 닫고 깊은 산속에서 수행에만 전념하는 것도 승려로서 중요한 일이다. 하지만 지금 나에게 주어진 여건과 책임, 기대 등을 숙고해보면 오직 학문이나 수행만 하기에는 너무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많은 고민 끝에 부족하지만 서울 시내에 마음치유학교를 열고, 뜻을 같이하는 전문 상담가분들과 함께 종교와 상관없이 보통사람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치유하자는 마음을 먹게 되었다. 



 드디어 작지만 마음의 품은 넉넉한 학교의 문이 열렸다. 그리고 처음으로 방문하신 분들이 바로 사별의 충격으로 아파하시는 분들이었다. 아무런 죄 없는 생때 같은 내 자식을 어느 날 사고로 갑자기 보내야만 했다면 얼마나 기막히고 가슴이 미어질까… 생각만 해도 눈물이 흘렀다. 가족과 사별하신 분들께 어떤 위로와 도움을 드릴 수 있을지 100% 자신할 순 없었지만 그래도 그분들 한 분 한 분께 정성을 다하는 마음으로 임한다면, 그래서 그분들이 어디에서도 쉽게 꺼내지 못했던 가슴속 이야기를 털어놓을 수만 있어도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참담한 통계 뒤에는 심리적 상처를 남들과 쉽게 나누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아파하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미국의 경우 사별과 같이 힘든 일을 겪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서로를 위로해주고 용기를 주는 자조(自助) 그룹들이 많이 존재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유사한 프로그램이 존재하지만 아직 활성화되지 못한 부분도 있고 사람들에게 익숙하지 않아 큰일을 당해도 개인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우리 속담에서도 기쁨은 나누면 두 배가 되고 아픔은 나누면 절반으로 줄어든다고 하지 않았던가.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마음을 나누다 보면, 같은 아픔의 경험이 없는 사람들과 이야기했을 때와는 달리 서로의 심정을 너무도 잘 이해하기에 충분히 애도하는 마음을 이끌어낼 수 있게 된다. 또한 나만 이렇게 힘든 일이 있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나보다 더 기막힌 사연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도 있다는 사실에 놀라게 된다. 



 우선 오신 분들 한 분 한 분을 사연과 성별, 나이가 비슷한 분들끼리 짝을 지었다. 그러고는 먼저 서로에게 친숙해지는 시간을 가진 후, 저세상으로 떠나보낸 가족에게 아직 내가 다 하지 못했던 이야기를 나누도록 했다. 그러자 삽시간에 방 전체가 울음바다가 되었다. 사연 하나하나가 가슴이 미어질 듯 슬퍼서 참석자들뿐만 아니라 함께 듣고 있던 나와 심리상담가 모두 눈물이 고였다. 이처럼 세상은 사랑으로만 서로서로 연결돼 있는 것이 아니고 아픔과 아픔으로도 연결돼 우리가 원래 둘이 아니었다는 진리를 몸소 깨닫게 한다. 



 그 다음으로는 돌아가신 가족이 나에게 어떤 말을 할까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진 후, 먼저 간 가족의 입장에서 살아 있는 나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를 해보았다. 이 과정을 통해 먼저 간 가족은 내가 오랫동안 불행해 하면서 살아가기를 원하지 않는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눈을 감고 먼저 간 가족이 지금도 내 곁에 살아 있다는 상상의 시간을 가졌다. 시간이 조금씩 흘러 아이가 점점 성장해 대학생이 되고 결혼과 승진을 하고 아이를 낳고 하나둘 흰머리가 나면서 늙어가는 모습을 마음속으로 그려보았다. 그런 후 아이가 노인이 되어 결국 병을 얻어 죽는 모습까지 그려봄으로써 마음으로 그 아이를 좀 더 편안하게 떠나보냈다. 



 우리는 뜻하지 않는 큰 시련을 겪게 되면 긴 꿈에서 깨어난 듯 다른 사람의 고통도 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한다. 어찌 보면 시련은 다른 사람들을 향한 사랑과 삶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위해 찾아온 전령사 같기도 하다. 내일 토요일은 장애가 있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님을 모시고 “나 자신도 돌봐요”라는 위로와 치유의 시간을 갖는다. 오시는 분 한 분 한 분께 정성을 다하고 싶다.



혜민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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