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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컨트롤 타워 없이 R&D 혁신 어렵다

중앙일보 2015.04.17 00:05 종합 35면 지면보기
김선영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우리나라 연구개발(R&D) 투자의 낮은 생산성을 질타하는 목소리가 연일 나오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지난 10년간 120조원이나 되는 정부 예산을 R&D에 투자했지만 세계적 수준의 성과는 고사하고 국내에서조차 시장이나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결과물들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R&D 투자 효율성을 올리는 일은 우리나라가 4만 달러 시대로 가는 데 가장 중요한 국가 어젠다 중 하나다. 현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각종 개선방안을 모색하는 한편 연구자들에게는 사업화 실적을 내라고 독려하고 있다. 뭔가 바뀔 것 같은 분위기인데 과거 사례를 보면 “이번엔 뭘까” 하는 자조적 걱정이 앞선다.



 R&D에 투입되는 정부 예산이 제대로 사용돼 의미 있는 성과를 내려면 국가 차원에서 거시적인 청사진이 있어야 하고, 분야에 따라 맞춤형 집행계획이 있어야 한다. 대부분의 첨단 기술과 제품은 여러 분야 간의 협업이 중요하고 개발시간이 상당히 걸리기 때문에 사업들 간의 연계성과 정책의 일관성이 R&D의 성패를 가늠한다. 이를 위해서는 범정부 차원에서 R&D 사업에 대한 기획과 조정이 가능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에는 과학기술이라는 배의 선장, 즉 컨트롤 타워 기능이 사실상 없다. 올해 19조원에 달하는 정부의 R&D 예산은 미래창조과학부 6조5000억원, 산업통상자원부 3조4000억원, 보건복지부 5000억원 등을 비롯해 33개 부처 및 위원회에서 관장하고 있다. 각 부처에서 개별적으로 올라오는 예산 요구를 기획재정부가 검토해 정하고 국회에서 심사받는 과정을 거친다. 상당수 사업이 기술은 물론 내용 면에서도 여러 장르를 포괄하는 ‘크로스오버’ 성격을 갖고 있으나 부처 간 협의는 거의 없다.



 현 정부가 많은 관심을 갖고 있는 신약 개발을 예로 들어 보자. 연매출 1조원 이상의 소위 ‘글로벌 블록버스터 신약’을 개발하려면 과학기술을 지원하는 미래부, 병원 등 의료정책을 관장하는 복지부, 생산기술 등 산업 관련은 산업부, 임상시험을 규제하는 식품의약품안전처, 천연물의약인 경우에는 농림축산식품부와 교토의정서 주무부서인 환경부 등의 공동 노력이 필요하다. 연구에서 임상시험을 거쳐 시장 진입에 이르는 모든 과정을 감안해 기획하고 과제를 선정·관리해야 성공 가능성을 키울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모든 경우 부처별로 사업을 기획하고 있고, 설혹 다부처 사업이라도 예산이 확정되면 상호 ‘밥통’을 침범하지 않는다는 묵시적 합의가 있어 협업이나 조정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부처 간 소통을 원활하게 하기 위해 참여정부 시절에는 ‘과학기술혁신본부’, 이명박(MB) 정부에서는 ‘국가과학기술위원회’가 있었고 지금은 미래부 내 ‘국가과학기술심의회’로 이어졌으나 정권이 바뀔 때마다 조직과 권한이 변하는 데다 예산조정권도 미약해 제구실을 못했다.



 컨트롤 타워는 범부처 조정 능력이 있어야만 한다. 우리나라 정부 구조에서는 국무총리실이나 청와대밖에는 이를 할 수 있는 데가 없다. 컨트롤 타워가 옥상옥이나 허수아비 조직이 되지 않으려면 국가의 전체 R&D 예산을 확보하고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을 가져야만 한다. 미국에서는 백악관에 과학기술정책실(OSTP)이 있어서 예산실과 협의하며 이와 유사한 역할을 하면서 국가과학기술위원회(NSTC)나 과학기술대통령자문회의(PCAST)를 관장한다. 상식적으로는 과학기술 주무부서인 미래부가 이 역할을 하면 될 것 같지만 예산 확보와 조정 권한이 없는 상황에서 미래부는 그저 한 개 부처이지 국가의 과학기술을 총괄하는 곳이 아니다.



 이 조직이 방대할 필요는 없다. 국가 차원에서 청사진을 만들고 부처에서 올라오는 사업계획들을 취합·조정하고 각 부처에서 이를 제대로 집행하는지를 모니터링하면 된다. 지금까지 이런 조직을 만들 때 정부가 흔히 쓰는 기법은 교수 등 민간 전문가들로 임시위원회를 구성하고 부처에서 파견 나온 공무원들로 사무국을 만드는 것이었다. 결국 사무국 직원들로 운영될 이런 조직은 성공 가능성이 거의 없다.



 우리나라는 지금 과학기술이 21세기 국가 발전의 동력으로 역할을 할 것인가, 아니면 전문가들의 현학적인 도구로 남아 있을 것인가의 갈림길에 놓여 있다. 다국적 제약기업 노바티스사는 지난해 10조원을 R&D에 투자했다. 20조원이 안 되는 정부 R&D 예산으로 나라를 발전시키려면 고도의 전략을 구사하고 유연성을 가진 브레인 조직이 필요하다. 제도의 문제점으로 인한 국고 손실은 극소수 부정으로 낭비되는 돈보다 그 규모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대한민국 R&D 사업에서 문제의 핵심은 범정부 조정 기능의 결여다. 이에 대한 근본적 해결 없이는 그 어떠한 혁신안도 미봉책이 될 것이다. 정부가 과거의 틀에서 벗어나 과감하게 혁신의 길을 택하기를 바란다.





김선영 서울대학교 생명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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