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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M] 들리나요, 손으로 부르는 노래. 다큐멘터리 '반짝이는 박수소리'

중앙일보 2015.04.15 00:45
‘반짝이는 박수소리’의 한 장면. 수화 내레이션은 이길보라 감독이 직접 했다. [사진 KT&G 상상마당]
두 손을 얼굴 높이에 두고 손목을 앞뒤로 팔랑팔랑 흔든다. 수화(手話)로 박수를 뜻하는 동작이다. 23일 개봉하는 다큐멘터리 ‘반짝이는 박수소리’는 고요한 박수와 함께 관객을 청각장애의 세계로 안내한다. 청각장애 부모를 둔 건청인 이길보라(25) 감독이 자신의 가족사를 담은 작품이다. 지난해 서울국제여성영화제 다큐멘터리 옥랑문화상 관객상을 받고, 장애인영화제에서 대상을 받았다. 평범하면서도 특별하고, 생소하지만 친근한 시선으로 청각장애인의 세계를 그렸다는 찬사를 받았다.

 다큐의 주인공은 청각장애인이자 이길 감독의 부모인 이상국(54)·길경희(50)씨. 중년 부부는 남부럽잖은 금슬을 자랑하며 재미나게 산다. 풀빵을 팔아 생계를 꾸려야 했지만, 두 자녀와 함께하는 삶은 밝고 유쾌하다. “어린 시절부터 부모님 이야기를 다큐 로 만들고 싶었어요. 난 늘 부모님의 세상이 반짝반짝 빛난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청각장애 부모님 이야기를 하면 당황하며 표정이 굳어지더라고요. 생각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몸으로 알았죠.” 이길 감독의 설명이다.

 실제로 생각의 차이가 컸기 때문일까. 다큐를 본 사람들은 쾌활한 가족의 모습에 적잖이 놀란다. “작품을 보고 많은 분들이 충격을 받았다고 해요. 그동안 TV 등 기존 매체에서 청각장애인을 연민의 대상으로만 그려왔기 때문이 아닐까요. 장애인만 등장하면 ‘장애가 있어 슬프지만 꿋꿋이 산다’는 식으로 그리잖아요. 이 다큐가 그 편견을 조금이라도 깼으면 합니다.”

 집안 대소사를 책임지는 모범생으로 자란 이길 감독은 고1 때 학교를 자퇴하고 1년간 인도를 여행했다. 부모님 품에서 벗어나 새로운 세상을 접해보고 싶었다고 한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와 중편 다큐 ‘로드스쿨러’(2008)를 만들었다. 길에서 배움을 찾는 학교 밖 청소년들의 이야기다. 이 다큐는 2008년 대한민국청소년미디어대전 관객상과 대전독립영화제 장려상을 받았다. 이어 2009년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에 입학한 그는 본격적으로 다큐멘터리를 배웠다. “어릴 때 주변 사람들이 동생과 제게 압박을 주는 게 부담스러웠어요. ‘너희는 착하게 자라야해’ ‘부모님을 잘 돌봐드려야 해’ 이런 말을 많이 들었죠. 그런데 바깥 세상에 나와 보니 부모님 세상이 다시 보였어요. 내 안에 ‘말의 세계’와 ‘침묵의 세계’가 공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는 데 긴 시간이 걸렸죠.”

 다큐에선 온 가족이 노래방에서 음악을 즐기는 대목이 특히 유쾌하면서도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다. 어머니가 마이크를 잡고 떠듬떠듬 노래하자 곁에서 아들이 손으로 노래를 따라 부른다. 이길 감독은 “수화가 얼마나 아름다운 언어인지 보여주고 싶었다”며 “‘말하는 사람들’과는 다른 청각장애인만의 언어와 문화를 소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현재 그는 청각장애인 문화에 대한 에세이를 쓰고 있다. 3년 전 청각장애인 문화가 발달한 미국을 탐방하며 느낀 점을 풀어낼 예정이다. 또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할아버지의 개인사를 토대로 한국 근현대사를 살피는 다큐도 촬영 중이다.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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