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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최악의 세 단어 '연말정산 소급 적용'

중앙일보 2015.04.15 00:05 종합 28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김회룡]


김종윤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
납세자들이 흔히 말하는 ‘13월의 보너스’는 잘못된 용어다. 매년 연말정산을 한 뒤 돌려받는 세금을 샐러리맨들은 그렇게 불렀다. 반대로 세금을 토해내면 ‘세금 폭탄’이라고 분개했다. 연말정산은 연간 낸 세금에서 소득을 올리기 위해 들어간 각종 비용 등을 정산한 뒤 최종 세액을 확정하는 절차다. 쉽게 말하면 납세자가 원래 내야 할 세금보다 더 많이 냈으면 그 차액을 돌려받고, 적게 냈으면 차액을 메우는 걸 말한다.



 13월의 보너스를 받았다면 샐러리맨들이 기분 좋아하는 건 이해가 간다. 생각지도 못한 공돈이 생겼으니 싫어할 이유가 없다. 이건 착각이다. 세금을 환급받은 납세자는 사실상 손해를 본 것과 마찬가지다. 기본적으로 매월 세금을 많이 낸 뒤 다음 해에 초과분을 돌려받은 것이기 때문에 이 기간만큼 이자 손실을 본 셈이다. 거꾸로 세금을 토해냈다고 해서 울분을 터뜨릴 일도 아니다. 손해 본 게 아니라 원래 덜 낸 걸 냈을 뿐이다.



 이쯤 되면 연말정산의 본질이 이해됐을 게다. 연말정산 결과를 놓고 ‘보너스’니 ‘세금 폭탄’이니 왈가왈부하는 것은 애초부터 난센스였다. 연말정산 결과는 특별히 누구에게는 보너스가 되고, 누구에게는 폭탄이 되는 게 아니다. 막판에 세금을 뭉텅이로 돌려받거나, 토해 내면서 희비가 엇갈리지만 본질은 득(得)도 없고, 실(失)도 없는 절차다.



 올 초 우리 사회를 혼란 속으로 몰고 갔던 연말정산 파동은 한 편의 코미디였다. 이번 파동의 계기는 소득세법을 고쳐 정산 방식을 소득공제에서 세액공제로 바꾼 것이었다. 이 방식은 문제가 없었다. 소득공제가 세액공제로 전환되면 고소득층은 세금을 좀 더 부담하고, 저소득층은 덜 내게 된다. 소득 분배 차원에서는 합리적인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해서 정부가 더 걷을 수 있는 세금은 대략 1조원 정도였다. 정부는 늘어난 세수를 복지 분야 등에 쓸 생각이었다.



 하지만 꼬였다. 정부는 이런 취지를 납세자들에게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 무능·무책임했다. 납세자와 소통하려는 노력은 없었다. 소란은 그래서 시작됐다. 더 큰 문제는 이후부터였다. 일부 반대 블록의 강력한 선전전에 밀린 정부는 연말정산 보완 대책을 들고 나왔다. 그 카드라는 게 황당하게도 ‘소급 적용’이었다. 현 연말정산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짚고 보완하는 고민은 안 보였다. 중장기 나라 살림을 고려한 장기적인 그림도 보이지 않았다. 당장 불만만 잠재우면 된다는 미봉책만 남발했다.



 이미 낸 세금을 반발 목소리가 크다고 법을 바꿔 돌려주는 건 조세 체제의 근간을 흔드는 짓이다. 떼를 쓰면 세금을 돌려주는데 앞으로 누군들 가만있겠나. 사람이 살면서 피할 수 없는 게 세금이다. 그래서 국민의 의무 중 하나가 납세의 의무인 것이다.



 한 나라의 조세 정책은 바람에 떠밀려 이리저리 흔들리는 갈대와 같아서는 안 된다. 조세 정책의 원칙은 분명해야 한다. 그 원칙이 훼손되면 나라가 흔들리고, 정권은 무너질 수 있다. 198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후보는 조지 H W 부시였다. 그는 선거전 초반에는 민주당 마이클 듀커키스 후보에게 밀렸다. 부시는 회심의 카드로 여섯 단어를 앞세워 분위기를 뒤집었다. ‘나를 믿으세요. 새로운 세금은 없습니다(Read my lips:No new taxes)’. 감세를 앞세운 부시는 당당히 백악관에 입성했다.



 문제는 4년 뒤에 터졌다. 90년대 초 경기 불황과 정부 의무지출 증가로 미국의 재정적자는 심각해졌다. 의회를 장악한 민주당은 증세를 도입하지 않는 한 정부 지출 축소에 동의하지 않겠다고 공세를 폈다. 부시는 타협했다. 소득 상위계층의 세금 부담을 10% 늘렸다. 술·담배·자동차·요트 등에 대한 특별소비세도 올렸다. 부시에 대한 믿음은 바닥에 떨어졌다. 92년 선거에서 클린턴에게 진 건 당연했다. 부시를 당선시켰던 조세 공약이 다음 선거 때는 대통령의 ‘최악의 여섯 단어’로 꼽혔다.



 지난 3년간 한국의 예산 대비 세수 부족액은 22조2000억원에 달한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올해도 세금이 3조4000억원 덜 걷힐 것으로 보고 있다. 올해 복지예산(보건·복지·고용) 규모만 115조7000억원에 달한다. 들어오는 돈은 부족한데 쓸 곳만 많아지면 나라 곳간은 거덜 날 게 뻔하다. 경기를 살려 세수를 늘리는 게 최상의 해법이지만 이미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덫에 갇힌 게 아니냐는 우려가 큰 현실이다. 그러면 납세자에게 곳간 사정을 설명하고 해법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연말정산 후폭풍으로 앞으로 납세자를 설득하기는 더 힘들어졌다. 이미 행정자치부가 추진해 왔던 주민세·자동차세 등 지방세 인상 카드도 슬그머니 접은 상태다.



 그렇다고 빚을 내 버틸 수도 없지 않은가. 이건 후손들의 신용카드를 긁어 쓰는 파렴치한 짓과 같다. 더구나 빚을 영원히 낼 수도 없는 법이다. 빚이 쌓이면 나라 살림이 파탄 나는 건 시간문제다. 무너진 조세 원칙,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연말정산 소급 적용’은 조세 정책 최악의 세 단어로 기록될 것이다.



김종윤 중앙SUNDAY 경제산업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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