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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우리가 세월호를 기억한다는 것

중앙일보 2015.04.15 00:05 종합 31면 지면보기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기억을 지우는 데 관심이 많은 편이다. 특별히 안 좋은 경험이 많아서라기보다 과거의 실수를 자꾸 떠올리며 ‘이불킥’ 하는 나쁜 습관 때문이다. 사랑했던 사람과의 기억을 통째로 지운다는 내용의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 열광했고, 무엇보다 ‘맨 인 블랙’에 나오는 기억 삭제 도구 뉴럴라이저가 탐났다. 하지만 최근 이론물리학자 미치오 가쿠가 쓴 『마음의 미래』라는 책을 읽다 실망했다. 책에 따르면 영화에서처럼 특정 기억을 골라 지우는 건 과학이 더 발전한다 해도 거의 불가능하다. 사람의 기억이란 하드디스크처럼 한곳에 순서대로 쌓이는 것이 아니라 감정과 관련한 기억은 편도체, 촉각과 움직임은 두정엽, 이런 식으로 조각조각 분해돼 나뉘어 저장되기 때문이란다.



 이 책에는 기억에 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다. 기억에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해마의 구조가 정확히 파악되면, 타인의 기억을 컴퓨터 프로그램 다운로드 받듯 내려받아 내 것으로 만드는 게 가능해진다. 이르면 수십 년 후에도 실현 가능한 시나리오다. 특정 시기의 기억만을 골라 지울 수는 없지만, 아픈 기억으로 인한 고통을 줄이는 방법은 지금도 계속 연구 중에 있다. 기억 형성을 돕는 아드레날린의 흡수를 방해하는 프로프라놀롤을 주입해, 기억을 억제하는 방식이다.



 논란도 이어진다. 과연 나쁜 기억은 잊어야만 하는가. 저자는 여러 연구 결과를 인용해 “좋은 기억이든, 나쁜 기억이든 기억이 존재하는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말한다. 신경과학자 캐슬린 맥더모트의 설명은 이렇다. “인간이 과거를 생생하게 기억하게 된 이유는 지난날을 되돌아보는 과정이 미래의 가능한 시나리오를 유추하는 데 매우 중요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미래를 내다보는 것은 환경에 적응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능력이다.”



 갑자기 기억 이야기를 장황하게 풀어놓은 건 물론 세월호 때문이다. 지난주 세월호 참사를 돌아보는 책이 출간됐다는 기사를 쓴 후 댓글에 놀랐다. “그놈의 세월호, 이제 잊어버려라.” “제발 이제는 끝내고 각자 할 일 해야 한다.” 맞다. 각자 할 일을 해야 한다. 단, 세월호를 기억하면서. 불과 1년 전 일어난 이 재앙이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으며, 이 비극을 넘어서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인문학자들이 함께 쓴 『팽목항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란 책을 읽다 노명우 아주대 사회학과 교수의 이 말에 밑줄을 긋는다. “왜 기억해야 하느냐고 묻는다면? 우리는 인간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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