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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역사] 험난했던 태권우먼의 길, 국기원에 여자화장실도 없었지

중앙일보 2015.04.15 00:02 강남통신 10면 지면보기
김영숙 사범은 현재 미국 LA에서 도장을 운영하며 태권도를 지도하고 있다.

‘태권도 대모’ 공인 9단 김영숙 사범

우리나라 국기인 태권도. 요즘이야 도복을 입고 뛰어다니는 여자 아이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지만 1970년대 태권도는 남성의 전유물이었다. 그런 태권도 역사 속에 빼놓지 않고 등장하는 여성이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LA의 ‘월드태권도’ 김영숙(68, 공인 9단) 사범이다. 1957년 유난히 큰 눈을 가진 열 살 소녀가 오빠의 태권도장을 찾은 그 순간, 한국 여성 태권도의 역사가 시작됐다. 태권도의 대모라고 불리는 그녀를 수화기 너머 미국에서 만나봤다.

대한뉴스 단골 태권도 시범자

“막내야, 오빠 데려와라.”

 김영숙 사범의 어머니는 4남 3녀, 7남매 중 3명의 아들을 6·25전쟁 때 잃었다. 유일하게 남은 아들은 그야말로 금이고 옥이었다. 김 사범과 여섯 살 터울인 오빠 김영삼씨다. 김씨는 89년 태권도 국가대표 감독으로 김 사범이 태권도의 길을 걷게 한 결정적인 인물이다.

 “오빠가 사범이었기 때문에 도장에 놀러갈 일이 많았죠. 열 살 때였는데 태권도가 너무 배우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나도 배우겠다 했더니 오빠는 물론 온 가족이 일언지하에 ‘안 돼’라고 했어요. 50~60년대만 해도 ‘어디 여자가 운동을 하냐, 어디 여자가 바지를 입냐’ 그럴 때였으니까요.”

 오빠를 졸랐지만 그럴수록 반대가 심해졌다. 오빠는 자신의 친구들에게까지 동생에게 절대 태권도를 가르쳐주지 말라고 신신당부했다. “말리면 더 불붙는다고 하잖아요. 못 하게 하니까 더 하고 싶은 거죠. 그래서 오빠가 도장에 없는 시간에만 몰래 태권도를 배웠어요.”

 처음에는 다른 사범들도 오빠 눈치가 보인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때 엄마가 입던 상복까지 뜯어서 도복으로 만들어 입고 나타난 김 사범을 거절할 수 없었다. “저러다 말겠지. 몇 번 울어보면 안 한다고 할거야. 계집애가 무슨 태권도야”라던 남자들도 점점 악바리 소녀에게 혀를 내두르기 시작했다. 격파 30회를 시키면 300회를 꼬박 채워야 집엘 갔다. 손에는 멍 자국과 타박상이 가시는 날이 없었다. 격파 연습을 하며 양손이 부러진 적도 부지기수였다. 태권도를 하는 여자가 없었기 때문에 대련은 늘 키가 한 뼘이나 더 큰 남자들과 해야 했다. 그러다보니 대련 중에 코뼈가 부러지는 일도 많았다. 그래도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집안 식구들이 그의 태권도를 알게 된 것은 그로부터 4년 후, 승급심사를 받기 위해 심사대에 올랐을 때다. 오빠가 심사위원장이었는데 도복 차림의 여동생 모습에 입을 떡 벌렸다. “4단 심사 때였는데 900명이 2단 심사를 보면 절반이 떨어졌어요 또 그 인원이 3단, 4단 심사를 거치면서 다시 절반 이상이 떨어져 나갔구요. 그런데 한 번도 떨어지지 않고 4단까지 한 번에 합격했어요. 그때부터 가족들은 물론, 함께 대련하던 남자 동기들도 인정하기 시작했죠.”

 그때부터 그는 태권도 대중화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가 됐다. 원로 태권도인들은 그를 통해 여성 태권도인을 육성하려고 했다. 태권도 시범이 있을 때면 어김없이 불려갔다. 수십 명의 남자 유단자들 사이에 항상 그가 있었다.

 “60~70년대엔 극장에서 대한뉴스를 상영하면서 태권도 시범 영상을 틀었어요. 그 영상을 위해 남자 유단자 20명과 함께 경복궁에서 태권도 시범을 촬영했죠. 남자들은 각자 자신 있는 자세 하나씩만 촬영했는데 저는 여자라서 겨루기, 호신술, 품새 등 태권도의 모든 걸 다 촬영해야 했죠. 게다가 모든 자세를 남자들보다 더 완벽하게 해야 했어요.”


50년대엔 여자가 무슨 태권도냐 핀잔만 들었어요
엄마 상복 뜯어서 도복 지어 입고 가족 몰래 4단
여성전용도장, 여성국제심판 등 하는 것마다 최초


 
75년 김운용 초대 국기원장이 김 사범에게 선수권 대회 여자부 최고상을 주고 있다.


여대·여군에 태권도 뿌리내리다

김 사범이 시범을 보이거나 대회에 참가하면 언제나 시선이 모아졌다. 김 사범의 품새 하나하나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럴 때면 더 많은 여성들이 함께 태권도를 배우며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70년 여성 전용 태권도장을 이화여대 앞에 개관했어요. 여자들이 마음 편히 태권도를 했으면 좋겠다 생각하고 모집을 했죠. 그런데 먹고 살기 바쁜 시대에 누가 왔겠어요. 게다가 ‘있는 집’에서는 딸이 태권도 한다면 반기지를 않았고요.”

 호신술을 배우려 도장 문을 두드리는 아이들은 많았다. 하지만 수입은 별로 없었다. 절반 이상이 부모 몰래 오는 여자아이들이었기 때문이다. 수업료는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받았다. 그러면서 세계문학 전집을 사서 도장에 비치하고 한 달에 한 권씩 아이들에게 읽혔다. 태권도를 배우며 지식 함양까지 할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가 있어요. 부모 없이 가사 도우미를 하던 아이였는데 태권도를 꼭 해야겠다며 찾아왔어요. 여자 운전사가 되고 싶은데 강도를 만나게 되면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하니까 태권도를 배웠으면 좋겠다는 거에요. 그래서 도장 청소 시키면서 무료로 가르쳤죠.”

 이웃에 사는 여자 아이도 무료로 가르쳤는데 그 아이의 엄마로부터 “왜 남의 딸에게 바람을 넣냐”고 타박을 받았다. 그럴 때마다 “여군에 가서 군인이 되면 돈을 벌 수 있고 그 돈으로 대학도 갈 수 있다”고 설득했다. 그 말대로 그 아이는 정말 여군에 갔다.

 74년에는 이화여대 태권도부를 창설했다. 70년대 이화여대라면 여성의 덕목을 기르는 게 가장 중요한 학교였다. 김 사범은 ‘한국의 여성 리더들이 태권도를 배운다면 더 많은 여성 태권도 리더들이 양성될 수 있겠다’고 생각해 이화여대의 문을 두드리고 또 두드렸다. 그때마다 ‘이화여대생의 발차기가 될 법한 소리냐’는 싸늘한 반응만 돌아왔다. 김 사범의 끈질긴 설득은 우연한 곳에서 빛을 발했다. 당시 이화여대 체육대학장이던 한성일 교수가 유럽 학회에 갔다가 “한국은 모르지만 태권도는 안다. 당신네 나라는 태권도가 최고일 텐데 이화여대에서는 태권도를 얼마나 하느냐”는 질문을 받았던 것이다. 그 길로 한 교수는 김 사범을 불러 태권도부(동아리)를 창설했다. 처음엔 법대· 간호대·미술대의 체육 시간에 태권도와 체조를 접목한 태권 에어로빅을 선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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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많은 이들이 태권도 사랑한다면 못할 일 없죠"
미니스커트 입고 여군 가르치고 태권 체조 고안
미국선 여성 대표팀 코치...퍼스트레이디 태권도 별명



 “아무리 수업이라 해도 재밌고 배우고 싶어야죠. 단순히 태권도만으로는 학생들에게 관심을 끌기 어렵다 생각해서 몸매도 가꾸면서 우리 태권도도 이해할 수 있도록 쉽고 재밌게 만들었어요.”

 태권 에어로빅, 태권 체조는 그녀가 72년 여군 교관이던 시절 고안한 것이다. 당시만 해도 태권도라고 하면 남자들의 운동이란 이미지가 강했다. 그는 멋스러운 여자들이 하는 운동, 선진화된 운동이라는 이미지를 주고 싶어서 일부러 스마일 로고가 박힌 니트에 짧은 미니스커트와 하이힐을 신고 첫 수업에 임했다. 미니스커트 차림의 여자가 연병장 집합을 외치자 여군들은 코웃음만 쳤다. 중대장이 마이크를 잡고 “태권도 시간이다”라고 외쳤지만 아무도 오지 않아 강제로 데려다 앉혔다.

 “뾰로통한 여군들을 상대로 마이크도 없이 ‘내가 태권도 사범이다. 여러분도 여자고 나도 여자다. 미용체조부터 가르칠 것이다’라고 말했더니. 환호성이 나왔어요. 그때부터 열심히 배우기 시작하더라고요. 여성들을 위해 부드럽고 쉬운 동작 위주로 구성하긴 했어도 태권도의 기본 품새는 충실히 만들었죠. 나중에는 경계근무 중에도 어떻게든 수업을 들으려고 했을 정도였어요.”

 79년까지 그는 정난여상 태권도부를 만들었고, 미8군과 마포전투경찰을 지도했으며, 미국·칠레·중국 등 8개 국가 대사관 파견 직원과 자녀에게 태권도를 가르쳤다. “외국인들에게 태권도를 가르치는 걸 주변 사람들이 그러다 외국인과 결혼하겠다며 걱정들을 했어요. 그만큼 보수적인 시대였죠.”


여성들만의 국제 태권도대회 개최
 
99년 1월 열린 미국 LA 태권도 월드컵에서 주심을 보고 있는 김영숙 사범.
79년 결혼과 동시에 미국으로 건너갔다. 한국에서 오랫동안 지도자 생활을 했던 그가 가만히 있으려니 몸이 근질거렸다. 게다가 만나는 외국인들이 태권도라는 소리만 나오면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걸 보면서 태권도를 전파하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졌다.

 “82년도에 둘째를 임신 중이었는데 도저히 집에 있을 수가 없었어요. 때마침 제3회 팬암 태권도대회에 미국 여성 대표팀 코치로 참가하게 됐어요. 혹시 대회에 지장을 줄까 임신 사실을 감추고 선수들을 보살폈죠.”

 그때 배 속에 있던 둘째 딸 소피아는 UC버클리 태권도팀 사범 겸 IOC 통역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미셸과 소피아 두 딸 모두 공인 6단이다.

 “아이들은 태권도에 미쳐 사는 엄마를 보면서 태권도라면 진저리가 난다고 했었죠. 하지만 철 들면서는 태권도의 정신에 매료돼 지금은 인생의 동반자가 됐어요.”
 
2000년 5월 미국 잡지에 ‘퍼스트 레이디 태권도’로 등장한 김사범 .
 
2006년 국제심판 교육에 참가한 당시 레바논 대통령 딸이자 레바논 내무성 장관의 부인인 커렌 엘머와 김영숙 사범.
 이후 미국태권도연맹 여성분과 위원장, 세계태권도연맹 여성분과위원으로 활동하며 여성 최초로 89년 2급 국제심판과 98년 1급 국제심판 자격증을 취득했다. 그의 태권도 인생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2000년에는 세계 최초로 국제 여성 오픈 태권도대회를 개최했다.

 “여자 혼자 세계적인 대회를 준비하는 건 쉽지 않았어요. 많은 태권도인들이 도움을 주셨지만, 안 좋게 보는 사람들도 있었고요. 그래도 성공적으로 대회를 마쳤어요. 금전적으로 빚은 좀 졌지만요. 그 빚을 다 갚고 난 2005년에는 다시 LA 시장배 쟁탈 국제태권도대회 및 코리안페스티벌을 주최했어요. 되돌아보면 어떻게 이런 일들을 다 해냈나 스스로가 대견하기도 해요.”

 요즘도 그는 태권도 사범으로, 국제심판으로, 여성 태권도 대모로 쉼 없이 활동 중이다.

 “큰일을 치르면서 빚을 많이 졌고 힘들기도 했지만 후회는 안 합니다. 태권도를 제대로 알릴 수 있었고 더 많은 이들이 우리 태권도를 사랑하게 된다면 그것만큼 값진 일은 없을 테니까요.”


국기원 회장실, 화장실로 착각한 사연
 
지난 3월 연세대 스포츠 레저학과에서 리더십과 태권도에 대한 특강을 한 후 학생들과 찍은 사진.

그가 들려준 에피소드 한 토막. 72년 국기원이 처음 생겼을 땐 여자 화장실이 닫혀있었다. 여성 태권도인이 없었기때문에 공간이 있었어도 활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루는 태권도 지도자 교육이 있어 참석했는데 100명의 교육생 중 여자로는 김 사범이 유일했다.

 “남자 교육생들이 볼일을 보고 있는데 여자인 제가 화장실에 들어갈 수가 없잖아요. 국기원 안에선 사흘이나 화장실을 못 갔어요. 나중에는 정말 숨도 못 쉬겠더라고요. 그때 여자 분이 1층에서 문을 열고 나오는 걸 보고 화장실이구나 싶어서 달려가 문을 열었죠.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분들이 앉아계시더군요. 김운용 총재, 홍종수 관장, 이종우 관장이 깜짝 놀란 표정을 지으셨죠. 알고 보니 화장실이 아니라 회장실이었던 거죠. 황당해 하는 그분들께 ‘여자 화장실이 필요합니다’라고 외쳤죠. 그길로 여자 화장실이 생겼어요.”

 여성용 도복, 화장실도 없던 시절의 일이다. 현재와 같은 여성 태권도인 200여 명(한국여성태권도연맹 가입 회원수) 시대를 당시엔 꿈도 꿀 수 없었다.

 미국인들은 김 사범을 ‘할머니 마스터’ ‘퍼스트 레이디 태권도’라고 부른다. 영부인에게 붙이는 칭호인 퍼스트 레이디를 김 사범에게 붙이는 건 태권도 대모에 대한 예우다. 2014년 4월부터 현재까지의 활동만 꼽아도 LA올림픽경찰서 태권도 지도, FBI 태권도 교육, 캘리포니아주 초·중·고교 태권도 지도 등 셀 수 없이 많다.

 “장·노년층을 위한 실버 태권도 확산을 위한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100세 시대 더 건강하고 즐겁게 살 수 있어야죠. 태권도가 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여성 태권도인에게 모범이 되고 희망이 될 수 있도록 남은 생을 아낌없이 바칠 생각입니다.”

글=김소엽 기자 kim.soyub@joongang.co.kr
사진=김경록 기자 kimkr8486@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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