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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박근혜 대통령의 72시간

중앙일보 2015.04.13 00:05 종합 30면 지면보기
권석천
사회2부장
여자가 한을 품으면 서리가 내린다지만 남자의 복수는 더 집요했다. 전 경남기업 회장 성완종씨는 지난 9일 북한산에 오르며 메모와 통화 녹취록을 남겼다. 그의 죽음 후 우리 눈앞엔 가소로운 풍경들이 펼쳐지고 있다.



 이완구 총리는 성씨 메모에 이름이 등장하자 “성 회장의 오해 때문”이라고 해명했다. “최근 성 회장이 자신에 대한 검찰 수사와 총리 담화가 관련 있는 것 아니냐고 오해하고 있다는 주변의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총리실 입장 자료)



 이 총리가 비장한 얼굴로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건 불과 한 달 전이었다. 그는 “고질적인 적폐와 비리를 낱낱이 조사하고 무관용 원칙에 따라 근절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런데 경남기업 수사가 총리 담화와 관련 없다는 건 대체 무슨 얘기인가. 총리 자신은 그저 ‘얼굴 마담’이었음을 자인하는 것인가.



 검찰 조직도 다르지 않다. 파문이 확산되자 검찰에선 “우리는 성씨가 어떤 사람인지 잘 알지 못했다”는 말이 불거져 나왔다. 자원개발 관련 기업 중 경남기업에 특히 문제가 많다는 내사 결과에 따라 수사에 착수했을 뿐이란 얘기다. “사람이 아닌 비리만 보고 정치적 의도 없이 수사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란 설명이 덧붙여진다. 이에 대해 한 전직 검사는 이렇게 말한다.



 “성완종씨를 수사 대상으로 잡은 게 잘못이란 얘기가 아닙니다. 의혹이 있으면 당연히 수사를 해야죠. 다만 특수수사라면 대상과 범위를 면밀히 파악한 다음에 위험요소와 부작용까지 감안해서 진행했어야죠. 지금 와서 ‘우린 몰랐다’는 게 말이 됩니까. 검찰에서 자원외교와 개인 비리를 딜(deal·거래)하라고 했다는 성씨 주장은 또 뭡니까.”



 여권 내부에선 “김기춘 비서실장이 계속 청와대에 있었다면 이런 일이 터졌겠느냐”는 퇴행적 수군거림이 오가고 있다. 총리와 검찰, 여권의 행태는 한국 사회의 부박한 민낯을 다시금 드러내고 있다.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 사건 후 1년이 지나기까지 정치권력과 검찰의 작동 원리가 달라지지 않았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한 로스쿨 교수의 지적이다.



 “사회의 평형수 역할을 해야 할 검찰 수사가 청와대 하명(下命) 따라 춤을 추는데 어떻게 복원력이 생기겠습니까. 성씨 주장대로라면 대통령이 그토록 청산하자던 적폐가 주변의 ‘친박’ 인사들이었다는 거 아닙니까. ‘국가 개조’ 하겠다면서요? 대체 나아진 게 뭡니까.”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는 “나는 죄 없다”며 손을 씻었지만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고 그의 옷을 제비 뽑아 나눠가진 건 빌라도의 부하 병사들이었다. ‘대선자금 수수’ 의혹까지 제기된 마당에 박근혜 대통령이 비켜설 곳은 없다.



 대통령 책임이 가장 크다는 건 이제 정치적 수식어를 넘어 실체적 진실에 가까워지고 있다. 대선자금 의혹은 박 대통령을 지구 끝까지 따라갈 것이다. 그것은 대통령이 자초한 일이기도 하다. ‘정윤회 문건’이란 궁중 암투에 지지율이 흔들리자 ‘검찰정치’에 기대려다 스스로 그 덫에 걸리고 말았다.



 이런 상황에서 박 대통령이 16일 해외순방을 가야 하는지 의문이다. 굳이 가야 한다면 출국까지 사흘 남짓이 남아 있다. 그 시간 동안 대통령이 해야 할 일은 두 가지다. 먼저 세월호 1년을 맞아 무엇이 개선되고, 무엇이 개선되지 않았는지 고백해야 한다. 등잔 밑의 적폐를 외면하고 방치했음을 인정해야 한다.



 둘째는 직접 국민 앞에서 성완종 리스트에 대한 진상 규명 의지를 밝히는 것이다. “법과 원칙에 따라/성역 없이/엄정히/대처하라”는 ‘영혼 없는’ 간접화법에 움직일 검사들은 없다. 그들은 대변인이 전한 대통령 말보다 그 말 뒤의 의중(意中)을 저울질할 것이다. 과연 박 대통령은 진상 규명을 바라고 있을까. 대통령의 육성이 없는 한 나는 그렇지 않다는 쪽에 서겠다. 자신이 없다면 특검 수사에 맡겨야 한다.



 1년 전 대통령의 7시간 공백이 의혹과 불신을 키웠다. 앞으로 사흘, 72시간이 박 대통령에겐 마지막 골든타임이다.



권석천 사회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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