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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n Sunday] 바닥으로의 경쟁

중앙선데이 2015.04.12 03:16 422호 31면 지면보기
골목길 두 설렁탕 가게가 경쟁을 벌인다. 한 쪽이 값을 7000원으로 1000원 낮추자 손님이 몰린다. 수입이 거의 0이 된 건너편 가게, 질세라 6000원으로 낮춘다. 파리만 날리게 된 이쪽 가게, 다시 5000원으로 내린다…. 가만 있으면 망하지만 값을 내리면 손님이 북적이니 경쟁은 되풀이된다. 경제학자들은 이같은 현상을 ‘바닥으로의 경쟁(Race to the Bottom)’으로 설명한다.

실제론 골목상권에서도 흔치 않은 ‘바닥으로의 경쟁’이 글로벌 시장에서는 상시적으로 일어난다. 신사협정도 상도의도 없다 보니 더 큰 규모로 더 집요하게 벌어진다. 미국과 유럽에 이어 일본까지 뛰어든 양적완화(QE)도 따지고 보면 자국 화폐 가격 낮추기 경쟁이다. 돈을 찍어내 화폐 값인 환율을 낮추고, 그 효과로 수출품의 가격 경쟁력을 높이고 자국 내 일자리를 보호하겠다는 게 양적완화의 본질이다.

법인세 인하 경쟁도 마찬가지다. 기업이 번 돈에 세금을 적게 물리는 것은 세율이 더 높은 나라에 있는 기업에게 이사 오라는 신호다. 최근 한국은행이 동참한 글로벌 금리 인하 경쟁은 또 어떤가. 서로 자국 통화가치를 떨어뜨려 수출 시장에서 내몰리지 않겠다는 몸부림이다. 유럽에서는 은행에 보관한 돈에 이자는커녕 오히려 보관료를 받는 ‘마이너스 금리’까지 등장했으니 경쟁이 바닥을 거쳐 지하로 뚫고 내려간 셈이다.

수입(收入)을 늘리려 시작한 바닥으로의 경쟁은 결국 수입 총액을 낮춘다. 골목안 두 설렁탕 가게가 그때 그때 수입을 극대화하기 위해 선택한 행동이 결과적으로는 총수입이 줄어드는 결과를 낳는다는 얘기다. 개별 주체가 어느 시점에 각자 최적이라고 판단한 행동이 길게 보면 최선의 행동이 아닐 수 있는 것이다. 이게 글로벌 자본주의의 현실이다.

한국노총이 지난 8일 노사정대타협 결렬을 선언했다. 노동시장 이중구조 개선과 청년실업 해소를 위해 지혜를 모으고자 만든 자리였다. 노동시장 개혁은 우리 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을 유지하면서도, 노동계층 간 임금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반드시 풀어야 할 숙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34개 회원국 가운데 실업자 상승률로 따져 4위다. 기업은 기업대로 고민이다. 대기업 정규직과 같이 ‘좋은 일자리’는 과도하게 보호받아 근로자들의 상향 이동의 장애물로 지목된다. 인력 수요에 따라 그때그때 유연하게 사람을 늘리고 줄일 수가 없는 현실은 기업에게 부담이 되고, 그 폐해는 청년층의 취업난에도 반영된다. 경제활력이 떨어진 데엔 노동시장의 경직성도 한 몫 한다.

그런 면에서 노사정 협상 테이블이 깨진 것은 아쉬운 일이다. 글로벌 시장 상황과 노동시장 문제의 심각성을 감안한다면 쉽게 깰 수는 없는 자리였다. 온 동네 설렁탕 집들이 서로 값을 내리고 있는데, 우리끼리 서로 네 탓 하며 날을 지새려는가.


박태희 경제부문 기자 adonis55@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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