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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와 컬렉터 위한 아지트 만들었어요 부담 없이 와보세요

중앙선데이 2015.04.11 16:03 422호 24면 지면보기
7일 오후 서울 신문로 2가에 있는 3층짜리 양옥집 문이 활짝 열렸다. 성곡미술관과 바로 이웃한 이 집의 새 이름은 ‘서울예술재단 PLUS’. 살짝 언덕진 진입로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잘 가꿔진 초록색 정원과 아담한 미니 풀장이 눈에 쏙 들어온다.

서울예술재단 세운 표미선 전 화랑협회장

화이트큐브처럼 하얗게 칠해진 집 안으로 들어가니 커다란 파일북을 껴안은 젊은이들이 로비를 가득 메우고 있다. 이날 열린 ‘포트폴리오 박람회’에 참가한 젊은 작가들이다.

서류철을 들고 의자 사이를 돌아다니며 번호표를 확인한 관계자가 심사위원들 앞으로 작가들을 차례로 데려다 앉혔다. 가져온 USB를 심사위원 노트북에 꽂거나 파일북을 펼쳐보이며 자신의 작품을 설명하는 작가들의 표정이 그렇게 진지할 수가 없다.

“아침 7시부터 작가들이 줄을 서 있더라고요. 현장에서 접수하고 오전 11시부터 오후 5시까지 심사위원들과 면담을 하는 일정인데, 지원자가 생각보다 많이 와서 저도 심사위원들도 정신이 없네요.”
15·16대 한국화랑협회장(2009~2014)을 역임하고 이제 새로운 직함을 갖게 된 표미선(66) 재단법인 서울예술재단 이사장은 밀어닥친 ‘집들이 손님들’이 반갑기만 하다. 그가 재단을 만들기로 마음먹은 것은 우리 미술시장에 뭔가 새로운 시도가 필요함을 절실하게 느끼면서다.

7일 문을 연 서울 신문로 ‘서울예술재단 PLUS’로 포트폴리오를 들고 찾은 작가들(아래 왼쪽사진)과 재단 창단기념 퍼포먼스를 벌이는 행위예술가들.
“34년간 화랑(표갤러리)을 해오면서 젊은 작가들과도 참 많이 만났어요. 그런데 작업을 많이 못하더라고요. 왜 그런가 보니 작품을 보여줄 공간도 없고 봐주는 사람도 없으니까 의욕이 점점 떨어지는 거예요. 이들이 열심히 작품 활동을 하게 하는 방법은 없을까. 이들과 컬렉터를 자연스럽게 연결할 방법은 없을까. 기회가 생길 때마다 제가 생각한 초안을 설명했지만 아무도 나서지 않더라고요.”

화랑협회장 이후의 삶을 생각하던 지난해 어느 날 새벽, 그는 벼락처럼 “그럼 니가 해”라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처음에는 “왜 제가 해야 돼요? 저보다 더 능력 많은 분들이 해야하는 거 아닌가요?”라고 반문했다. 하지만 ‘일단 나부터라도 시작해볼까. 작가와 컬렉터를 연결하는 일은 내가 제일 잘하는 거 아닌가’라고 마음을 먹는 순간,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풀리기 시작했다고 들려주었다.

“김&장에서는 무료로 법률자문을 해주시겠다고 했고, 흥국생명에서는 보험분야에서 도움을 주시겠다고 하셨어요. 이 집도 신한은행을 통해 알게 된 어떤 분이 흔쾌히 빌려주셨죠. 돈도 별로 없어서 걱정했는데, 때마침 단색화 열풍이 불어닥치면서 수장고에 오랫동안 있던 옛날 작품을 여럿 팔 수 있었어요.”

그가 재단을 만들면서 10억 원을 내놓을 수 있었던 이유다. 그는 이 공간을 “작가와 평론가와 큐레이터와 컬렉터의 아지트”라고 설명했다. 젊은 작가들이 재기 넘치는 작품을 걸어놓으면 평론가들이 와서 보고 글을 쓰고, 큐레이터들이 전시 기획을 꾸며볼 수도 있다. 컬렉터들은 작가들과 이야기도 나누면서 마음에 드는 작품을 빌리거나 살 수 있다. 그리고 매달 최저 1만 원의 회비를 내면 누구나 컬렉터가 될 수 있다.

“많지 않은 돈으로 온 국민이 예술 후원자가 되는 기쁨을 드린다는 컨셉트는 문화유산국민신탁의 회원제에서 벤치마킹했는데 벌써 문의가 많이 들어오고 있어요.”

이날 심사는 김노암 아트스페이스 휴 디렉터·박수진 독립 큐레이터·변종필 양주시립장욱진미술관 관장·유진상 계원예술대 교수·이준희 월간미술 편집장·최승현 국립현대미술관 고양창작스튜디오 매니저 ·홍경한 경향아티클 편집장(가나다순)이 맡았다. 이날 밤 9시 40분까지 면담을 거쳐 최종적으로 172명이 접수했다.

평면(구상·비구상)과 입체(구상·비구상)로 부문을 나눠 분야별 5명씩 총 20명의 우수상 수상자를 13일 선정한다. 21일부터 5월 31일까지 1인당 2점씩 작품을 여기서 전시하는데, 이중 부문별 최우수상 2명을 5월 30일 선정해 각각 1000만 원의 상금 및 국내외 전시 기회를 부여한다.

재단의 1호 발기인으로서 이날 행사에 참석한 정병국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국회의원)은 이렇게 덕담을 건넸다. “일단 ‘그림을 가져봤다’는 경험을 갖는 것이 중요하거든요. 그렇게 그림에 정이 들면 그 다음엔 사게 되고, 작가에 관심도 갖게 되고, 예술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게 되죠. 그런 의미에서 이번 행사와 이 공간이 어려운 미술 시장에 활력이 되고 미술 대중화에 큰 역할을 할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표 이사장은 “작가들을 실질적으로 지원하고 창작 의욕을 고취할 수 있는 방법을 계속 찾고 있다”며 “벌써 해외에서도 문의가 오고 있는 만큼 박람회 개최 횟수를 늘리는 것도 검토하는 등 이런 열기를 붐업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글 정형모 기자, 사진 서울예술재단, 최시내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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