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인력·장비·훈련 업그레이드 … ‘조직 해체’ 충격에 사기 저조

중앙선데이 2015.04.12 00:27 422호 6면 지면보기
지난 10일 인천 영종도 앞바다에서 실시된 여객선 구조 훈련. 세월호 희생 학생들과 비슷한 나이의 인천 해사고 학생들이 갑판에 나와 구조를 기다리고 있다. 김춘식 기자
주황색 구명조끼를 입고 갑판에 나와 구조를 기다리는 고등학생 130명을 보니 세월호 참사 그날이 떠올랐다. 학생들이 탄 여객선 세종호에 불이 난 것을 상정해 연막탄이 연신 피어올랐다. 최대 200명이 탈 수 있는 공기부양정과 구조대원들을 태운 고속단정 6척이 ‘사고 현장’에 급파됐다. 인천항에서 시속 80㎞로 달려 영종도 앞바다에 도착하는 데 채 10분도 걸리지 않았다. 구조대원들은 신속하게 세종호에 승선해 학생들을 대피시켰다. 물론 선장도 퇴선 명령을 내렸다. 30여 분 만에 모든 학생이 구조됐다.

해양경찰 해체 그 이후

인천 해양경비안전서(옛 해양경찰서)는 지난 10일 제1회 국민안전의 날(4월 16일 세월호 참사 날)을 앞두고 인천 해사고등학교 학생 130명과 함께 인명구조 훈련을 했다. 해사고는 선장·기관장 등 해양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마이스터 고등학교다. 훈련은 시나리오대로 진행돼 세월호 참사와 단순 비교는 어려웠다. 세월호 이후 수십 번의 훈련이 몸에 밴 듯 우왕좌왕하는 구조대원은 찾아볼 수 없었다. 여객선 승조원과 학생들도 실제 상황처럼 긴장된 모습이었다. “세월호 같은 사건이 다시 일어난다면 제대로 대처할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홍익태 해양경비안전본부장(옛 해양경찰청장)은 “그렇다”고 예상된 답을 했다.

참사 이후 경찰 업무보다 안전에 중점
세월호 참사에 대한 부실 대응의 책임을 물어 지난해 해경이 해체됐다. 하지만 실제로 바뀐 건 별로 없다. 해양수산부 소속이던 해경은 국민안전처 소속 해양경비안전본부로 정부조직법상 직제와 이름이 바뀌었을 뿐이다. 약칭은 계속 해경이다. ‘해양경찰’이라는 로고도 그대로 쓴다. 중국 어선의 불법 조업을 단속할 때 필요해서란다.

세월호 참사 이후 해경은 ‘경찰’보다 ‘안전’에 중심을 두고 있다. 792명이던 수사·정보 인력은 283명으로 확 줄었다. 상당수가 육상 경찰로 옮겼고 남은 인력은 함정 등 일선 현장에 배치했다. 함정 구조인력 107명, 122구조대 78명 등 구조 분야에 모두 602명의 인력도 보강했다. 배의 위치를 확인하고 이동을 지시하는 해상교통관제센터(VTS)도 모두 해경 소관으로 일원화했다. 예전엔 항만 VTS 15곳은 해수부, 연안 VTS 3곳은 해경 소관으로 나눠져 있었다.

이 밖에 중앙해양특수구조단을 신설하고 21인승 대형 헬기도 구비했다. 세월호 참사 때는 자체 헬기가 없어 사고 현장에 도착하는 데 5시간이나 걸렸다. 노후 단정도 지속적으로 교체해 나가고 있다. 적어도 외형상으로는 인력·장비·훈련 측면에서 부족했던 점을 거의 다 개선한 상태다.

세월호 침몰사고를 신고한 학생에게 “경도와 위도를 대라”고 했던 관제사도, 현장에 도착해 어쩔 줄 모르는 구조대원도 이젠 없다. 지난 10일 찾은 인천 VTS에서는 인천 인근 해역을 지나는 모든 배의 이름만 대면 즉시 위치를 알 수 있었다.

군산대 노호래(해양경찰학) 교수는 “장비 보강도 중요하지만 전국에 해양경비안전서가 17개에 불과하다”며 “파출소 개념의 광역 안전센터 수를 늘려 사고 현장 접근성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해경안전서 한 곳이 담당하는 수역이 너무 넓으니 사이사이에 안전센터를 만들어 단거리에서 출동하도록 해야 한다는 말이다. 노 교수는 또 “현재 해경의 무게중심이 안전에 쏠려 있는데 해양 테러라도 발생하면 왜 치안업무는 소홀히 했느냐는 비판이 나올 것”이라며 “해경은 안전·치안·경비·방제 등 다양한 업무 영역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문제는 전문성이다. 해경 경무관급 이상 간부 10여 명 가운데 1000t급 이상 경비함 함장을 지낸 사람은 1~2명에 불과하다. 세월호 참사 당시 김석균 해경청장은 행정고시 출신이었다. 해경 관계자는 “해경 내 전문성 있는 인력들이란 선박 관련 기술직들인데, 이들은 행정 경력이 전무하고 관심도 적어 지휘부 전문성 개선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차선책으로 해경은 순환보직 때 해상근무를 우선하도록 하고 현장 순환근무 기간도 2~4년으로 늘리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민간 전문 구조인력의 관리 시스템도 여전히 구축되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 당시 해경은 민간 잠수사에 대한 정보 부족으로 민간 구조인력을 효율적으로 투입하는 데 실패했다. 구난업체 언딘에 대한 특혜 의혹도 불거졌다. 해경은 민간 잠수사와 구조장비 현황을 데이터베이스화하려 하고 있지만 잠수사의 역량을 판단할 기준이 명확하지 않은 상태다.

인천해경 122구조대 소속 박인호 경사가 선박 구조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대원들에 “내 가족처럼 구한다” 의식 강조
전문가들은 해양안전 수준을 높게 유지하려면 견제기구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공주대 정상만(건설환경학) 교수는 “여객선 안전관리를 계속 해양수산부에서 관장하는 한 관피아 문제는 또 불거질 수 있다”며 “해수부는 국토해양부나 산업통상자원부처럼 특정 산업을 진흥하는 곳인데 같은 부서에 안전관리 기능까지 맡기면 제대로 된 모니터링과 견제가 이뤄지기 어렵다”고 말했다. 면허발급, 선박 검사 등의 여객선 안전관리 업무는 세월호 이전 해수부와 해경이 나눠 맡다가 세월호 이후 해수부로 일원화됐다.

세월호 참사는 해경에겐 치욕스러운 기억이다. 일부 직원은 “당시 지휘부의 무능 때문에, 국민의 몰이해 때문에 누명을 쓴 측면도 있다”며 볼멘소리를 하기도 한다. 조직의 이름은 사라져도, 소속이 바뀌어도 일은 그대로 남아 있다. 직원들은 같은 일을 하면서도 조직 해체라는 극단적인 조치 때문에 사기가 오르지 않는다는 말을 많이 한다.

지난해 11월 부임한 홍익태 해경본부장의 말이다. “세월호의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선장의 퇴선 명령이었습니다. 침몰하는 배에서 승객을 구조하는 것은 떠 있는 배에서 구조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습니다.”

해경이란 조직을 어떻게 주물러도 일을 하는 건 결국 사람이다. 해경은 세월호 참사 당시 VTS의 근무상태가 해이했다는 지적에 따라 교대근무와 관제사 교육기간을 더 늘렸다. 실제 상황과 같은 구조 훈련도 수없이 실시하고 있다. 반복되는 훈련, 강화된 근무수칙만으로 다 되는 건 아니다. 홍익태 본부장은 “사람의 자세가 관건”이라고 말한다. “해경 직원 한 명 한 명이 조난당한 승객을 내 가족처럼 구조하겠다는 마음이 가장 중요하다고 보고 그 부분에 주력하고 있습니다.”

한편 해경은 불법 조업을 하는 중국 어선도 단속해야 하고 기름 유출 등 방제업무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중국 선원들의 횡포는 지난해 10월 해경이 쏜 총에 선원 한 명이 맞아 사망한 뒤 잦아들었다는 게 해경의 판단이다. 지난해 12월 정의화 국회의장 방중 당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이 “불법 어업 관리를 계속 강화하겠다”고 발언한 것도 한몫했다. 그래도 우리 어선이 접근하기 꺼리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부근에서 치고 빠지는 식의 불법 고기잡이는 계속되고 있다. 이와 함께 해경 해체 뒤 해양범죄 수사나 관련 정보망이 허술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천=박성우 기자 blast@joongang.co.kr

선데이 배너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