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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아야, 엄마로 살게 해줘 고마웠다”

중앙선데이 2015.04.12 00:36 422호 8면 지면보기
집 안엔 온통 지아의 흔적이다. 참고서가 꽂혀 있는 책상 위에 딸기 한 접시와 우유 한 컵이 놓여 있다. 이렇게 때때로 지아 엄마는 지아의 식사·간식도 챙겨준다. 김춘식 기자
“다음 생엔 엄마가 내 딸로 태어나길 바라. 내가 받은 사랑 꼭 갚을 수 있게.”

지영희씨가 딸 지아에게 보내는 『사월의 편지』

“어디 몸 아프지 말고 평생 죽지 말구 살아! 엄마 없인 아무것도 못하는 나 두고 일찍 가면 안 돼~ 사랑해♡”

엄마더러 일찍 가지 말라던 딸이 엄마를 남겨두고 떠났다. 지영희(49·사진)씨는 세월호 침몰로 희생된 단원고 학생 정지아양의 엄마다. 친구같이 사이 좋았던 모녀는 늘 편지를 주고받았다. 일찍 출근하는 엄마가 편지를 써 놓고 나가면 지아는 엄마가 잠든 밤 답장을 남겨두곤 했다. 소설도 쓰고 시도 짓던 글재주 좋은 지아는 10대의 발랄한 농담과 내밀한 고민, 엄마를 향한 사랑을 손 글씨로 꾹꾹 담아 썼다. 지아가 떠나고 난 뒤 어느 날, 엄마는 서랍 속에서 딸이 편지를 모아둔 것을 발견했다. 딸 없는 세상에서 엄마는 그 편지를 읽고 또 읽는다. 지난 2월 말 출간된 『사월의 편지』는 엄마가 지아에게 해주는 선물이다. 오고 간 편지와 지아의 시·소설을 엮었다.

얼마 전 안산에 있는 지아네 집을 찾았다. 지아의 사진을 프린트 한 소파 쿠션, 벽에 걸린 지아의 초상, 참고서가 그대로 꽂혀 있는 책상까지 집안 곳곳에 지아의 흔적이 가득하다. 지아의 침대 위 커다란 베개엔 지아의 얼굴이 십자수 놓여 있다. 매일 밤 끌어안고 자던 영정 사진을 대신하기 위해 6개월 걸려 완성했다고 했다.

“살던 집 계약이 끝나서 이사를 했는데 그대로 온 거예요. 방을 없앤 분도 있고 아예 안산을 떠난 분도 있는데, 저는 쪽지 하나 안 버리고 갖고 왔어요. 죽을 때까지 저렇게 놓을 거예요. 저는 지아가 있다고 믿어요. 자기 방에서 공부하고 있고, 학교 가고…. 안 없애고 싶어요.”

지영희씨는 지아가 네 살 무렵 이혼했다. 지아가 일곱 살, 재혼할 때까지 모녀는 서로를 기대고 의지했다. 아빠의 빈자리를 채워주려 엄마는 사랑을 쏟았다. 새 아빠에게 마음을 열지 못하던 지아는 사춘기를 맞으면서 방황했다. 친구를 왕따시키고, 왕따를 당하기도 하는 사고뭉치였다. 엄마는 그런 딸에게 편지를 썼다.

“위로받고 싶은 너에게 잔소리만 해대서 미안해. 뭐라 위로해줘야 할지 사실 잘 모르겠어. 널 안고 사랑한다는 말밖에는… 너에게 기둥이 되고 보금자리가 되어줄게.”

어린 지아와 엄마가 함께 찍은 사진을 진도 팽목항에서 자원봉사자가 그림으로 그려줬다.
“지아가 올바른 길로 가는 데 엄마가 다리가 돼서 도와줄게. 태풍과 비바람이 몰아치면 엄마가 방어막이 되어줄게.”

방황의 시기가 지나자 지아는 달라졌다. 데면데면하던 아빠에게 “가끔은 엄마랑 영화도 보러 가고, 데이트도 해”라며 다가갔다. 엄마와도 단짝처럼 붙어 다녔다.

“지아랑 함께한 추억이 너무 많아요. 동네분들이 많이 부러워했어요. 어떻게 하면 딸하고 매일 팔짱 끼고 다닐 수 있느냐고.”

엄마의 다이어리는 지아와 함께한 것들로 빼곡하다. 영화 ‘캡틴 아메리카’를 마지막으로 본 것이며, 강화도 보문사로 마지막 여행을 갔던 것이며…. “이걸 보면서 지아랑 뭐를 했나 생각한다”는 엄마의 다이어리는 4월 15일 ‘지아 수학여행’을 마지막으로 멈췄다.

지아는 사고 9일째인 24일 바다에서 나왔다. 아이들이 한꺼번에 많이 나온 날이라고 했다.

“일주일 동안은 살아 있을 거라고 믿었어요. 누가 뭐라고 해도 믿었어요. 그래서 처음엔 지아 이름이 불릴까 봐 너무 무서웠어요. 누구 이름이 새벽에 불리면 엄마들이 막 우는 거예요. 자기 자식이 아니라서 우는 건지, 자기 자식이라 우는 건지 몰라도 막 울어요. 일주일이 지나니까 지아 이름이 안 나오면 불안해지기 시작했어요.”

잠을 자는 듯 “정말 깨끗했다”고 했다. 엄마가 사준 나이키 운동복을 입고 수학여행 전 친구들에게 생일선물로 받은 손목시계를 차고 있었다. 엄마의 시간은 그날에서 정지해 버렸는데, 지아와 함께 9일 동안 물속에 있던 시계는 지금도 가고 있다.

2학년 2반 지아네 반에선 36명 중 35명이 세월호를 탔다. 그중 10명만 구조됐다. 허다윤양은 아직 실종 상태다. 지아 엄마를 비롯한 2반 엄마들은 1인 시위 중인 다윤이 부모를 번갈아 찾는다고 했다.

“똑같이 자식을 잃었지만 저희는 만져 보고, 안아 보고 했잖아요. 그러니까 뼛조각이라도 찾게 해달라고 애원을 하는 거예요, 다윤이 엄마는…. 저라면 아마 미쳤을 거예요.”

참사 당일 엄마가 진도로 내려가던 길에도 지금처럼 꽃이 활짝 펴 있었다. 지아가 젖었을 것 같아 옷을 챙겨 떠난 길이었다. 사고로 놀란 딸을 달래 금세 돌아올 줄 알았다. 계절이 한 바퀴 돌아 다시 온 봄. 가장 찬란한 4월은 가장 슬픈 달이 됐다. 지아 엄마는 떠나간 딸의 생일을 챙긴 뒤 제사를 지내야 한다.

“이렇게 날씨도 좋은데. (지아가) 있었으면 어디 가자, 어디 가자 했을 텐데…. 이렇게 화창한 것도 싫어요. 날씨가 좋아도 울어요, 우리는. 남들은 날씨가 좋다고 좋아하는데 그것도 슬픈 거죠(울음).”

15일엔 유가족대책위원회와 함께 팽목항에 간다. 배가 침몰한 곳에 헌화하고 분향소에 있는 딸 사진을 어루만져 주고 올 것이다. 그리고 엄마는 오늘도 하늘에 있는 딸에게 부치지 못할 편지를 쓴다.

“지아야, 엄마 곁에 있는 거 알아. 네가 엄마를 느끼듯이 엄마도 느껴.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이 세상에서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게 해줘서 정말 고마웠고, 사랑해.”


안산=홍주희 기자 hongh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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