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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켓&마케팅] 많이 팔렸습니다 … 우리 제품을 싫어해주신 덕분에

중앙선데이 2015.04.12 01:46 422호 20면 지면보기
1 미국 크래프트사는 소비자들을 상대로 샐러드 드레싱 제품 미러클휩을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 투표를 실시해 우호적 소비자들의 충성도를 높이고 있다. 2 지난해 칸 국제광고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마마이트(잼)를 방치해두지 마세요’의 한 장면. 마마이트 구조대원이 찬장 속에 방치된 마마이트를 구해내고 있다. 3 구조된 마마이트는 새 가족에게 ‘입양’돼 사랑받는다. 4 날씬한 여성용 옷만 판매하는 아베크롬비앤피치를 비판하기 위해 뚱뚱한 모델을 기용해 만든 패러디 광고.
주민 신고를 받고 출동한 구조대가 급히 가정집 안으로 들어선다. 구조대원이 부엌 찬장 속 깊숙이 다른 소스들 뒤로 밀려나 있는 작은 갈색 단지를 조심스럽게 꺼낸다. “이렇게 작고 가여운 아이는 처음 봤어요.” 신참 구조대원은 울먹이며 단지를 케이지에 넣는다. 죄책감으로 고개를 푹 숙인 가족들을 뒤로 한 채, 대원들은 비장한 얼굴로 다음 희생자를 구하러 간다.

⑫ 미움 받을 용기

이들은 구해낸 갈색 병은 방치된 ‘마마이트(이스트로 만든 잼의 일종)’다. 마마이트 구조대(Marmite Rescue Team)가 구조한 병들은 ‘마마이트 보호소’로 보내져 입양을 기다린다. 새로운 가족을 만난 마마이트는 어두운 찬장 속이 아닌 밝은 식탁 위에서 사랑을 듬뿍 받으며 새 삶을 시작한다.

2014년 칸 국제광고제 황금사자상을 수상한 광고 ‘마마이트를 방치해두지 마세요(End Marmite Neglect)’의 내용이다. 영국 유니레버의 마마이트는 갈색의 진득거리는 이스트 추출액이다. 토스트에 발라먹는 용도로 주로 사용된다. 1902년 출시된 이 제품은 우중충한 색과 독특한 향, 짠 맛 때문에 먹기 어려워 ‘도전적인 음식’으로 취급받는다. 방치된 마마이트를 구조해내고 입양까지 시킬 정도로 좋아하는 마니아층이 있는가 하면, 극단적으로 싫어하는 소비자도 많다. 팝스타 마돈나는 “마마이트를 먹어야 하는 상황이 최악의 악몽”이라고 공공연하게 말한다. 그녀는 사랑하는 딸을 위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지만, 마마이트 샌드위치를 제발 한입만 먹어보라는 부탁은 끝내 들어줄 수 없었다고 한다.

마마이트 페이스북에 소개된 마마이트 활용 요리.
반감고객 공격에 열성고객 사랑 깊어져
지난 20여 년간 마마이트는 ‘좋아하거나 싫어하거나(Love it or Hate it)’이란 브랜드 슬로건을 사용해왔다. 제품을 거부하는 고객 층이 있다는 점을 과감하게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홈페이지와 블로그에서도 마마이트를 사랑하는 소비자에게는 ‘마마이트로 샌드위치를 천국과 같이 만드는 방법’을, 싫어하는 소비자에게는 ‘샌드위치를 망치는 방식’을 알려준다. 또 고객들이 마마이트 케이크, 파스타, 비비큐 등 직접 개발한 다양한 요리법과 음식 사진들을 자유롭게 제시하도록 해 보는 재미를 더한다.

영국에 유니레버의 마마이트가 있다면, 미국에는 크래프트의 미러클휩(Miracle Whip)이 있다. 미라클휩은 흰 색의 걸쭉한 샐러드 드레싱으로 마요네즈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훨씬 달고 시큼한 냄새가 강하다. 2011년 크래프트는 미러클휩의 젊은 이미지를 강화하기 위해 과감한 결단을 내렸다. 독특한 맛과 향을 좋아하는 열성고객과 역겨워하는 혐오고객을 정면으로 대립시킨 ‘양극화 마케팅’을 시도하기로 한 것이다.

미러클휩은 페이스북을 방문한 고객에게 ‘우리는 모두를 위한 제품이 아닙니다. 당신은 우리 편인가요?(We’re not for everyone. Are you Miracle Whip?)’라고 질문하며 찬반 투표를 실시했다. 톱스타들은 물론 제임스 카빌 같은 유명 정치인이 참여했고, 고객들 사이에서는 뜨거운 설전도 벌어졌다. 한 열성고객이 “내 인생 최고의 샐러드는 할머니가 만들어주신 미러클휩 감자 샐러드였다”고 말하면 혐오고객은 “뭐라고? 그걸 먹느니 차라리 신발을 빨아 먹겠어”라고 맞받는 식이다.

미러클휩과 마마이트가 혐오고객을 숨기거나 외면하기보다 오히려 주인공으로 만드는 양극화 전략을 채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먼저 편 가르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심리, 즉 집단 극화(group polarization) 경향을 활용한 것이다. 집단 극화란 처음에는 개인들의 생각이나 선호도에 큰 차이가 없어도 대립구도가 설정되면 의견이 극명하게 갈라지게 되는 현상을 말한다. 토론이 진행될수록 참여자들은 각 집단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해 과장된 의견과 감정을 표현하기도 하고, 다른 사람들의 찬성 또는 반대 발언을 접하면서 자신의 선택을 더 옹호하거나 상대편을 더 싫어하게 된다. 또 본능적인 집단 소속감이 발휘되어 자신이 택한 집단에 더 강한 소속감을 느끼고 적대 집단은 더 멀리 하려고 한다. 미러클휩과 마마이트는 ‘Love-Hate’의 대립 속에서 반감고객의 공격을 이용해 열성고객의 사랑을 더욱 깊어지도록 한 것이다.

이같은 전략은 빠른 입소문을 촉발해 브랜드 정체성을 확고하게 굳히고 우호적 고객을 확충하는 데 효과적이다. 유명인까지 가세한 고객들의 개인 스토리는 입소문으로 확산되기에 최적의 주제다. 마마이트의 경우 1990년대 첫 캠페인으로 20만 명의 팬층을 확보했는데, 이들은 브랜드 홈페이지가 만들어지기 훨씬 전부터 자체적으로 마마이트 블로그를 만들어 활동하기 시작했다. 현재 공식적으로 인증된 마마이트 러버(lover)는 50만 명, 헤이터(hater)는 18만 명 정도라고 한다.

크래프트는 미러클휩 블로그를 통해 ‘먹어보지도 않고 싫어하지 말라’며 아직 제품을 경험하지 않은 소비자들에게 쿠폰과 무료 샘플을 보내준다. 주변에서 접한 악평만 듣고 혐오 편에 서지 말라는 뜻이다. 2011년 2월부터 1년간 실시한 투표 기간 동안 6만여명의 소비자가 ‘좋아요(Love)’를 선택한 데 반해 ‘싫어요(Hate)’로 응답한 소비자는 4000여명에 그쳤고 블로그 포스팅은 6배 이상, 매출은 14% 증가했다. 크래프트의 브랜드 매니저 루펄 파텔은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 제품을 혐오하는 고객도 있지만 든든한 지원군이 더 많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한국 맥주, 평균 입맛 쫓다 실패
기업에게도 자사 브랜드나 제품을 선호하지 않거나 비난하는 고객을 수용하는 ‘미움 받을 용기’가 필요하다. 제품이 전달하는 가치와 브랜드 정체성에 대한 확신이 있다면 모두에게 사랑받는 브랜드가 되기 위해 애쓰기보다 때로는 원칙을 고수하고 불만을 무시하는 용기를 발휘해야 한다.

맥도날드는 정크푸드라는 비난을 피하기 위해 1991년 일반 햄버거보다 지방 성분을 91% 줄인 맥린 딜럭스(McLean Deluxe)를 출시하며 대대적인 마케팅을 벌였으나 시장의 반응은 싸늘했다. 저렴한 가격으로 한 끼 식사를 맛있게 빨리 해결할 수 있는 실용성, 푸짐한 햄버거와 감자튀김을 배불리 먹고 나서 느낄 수 있는 행복감이라는 패스트푸드의 핵심 가치를 놓친 결과였다.

고집 세기로는 구글이 빠지지 않는다. 주기적인 설문조사를 통해 고객들이 페이지당 더 많은 수의 검색 결과를 원한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여전히 10개의 결과만 보여준다. 더 많은 검색 결과는 로딩을 느리게 하고 궁극적으로 고객 체험의 질을 떨어뜨릴 것임을 알기 때문이다.

모든 사람이 좋아하는 상품을 추구하다 보면 어느새 개성 없는 그저 그런 제품이 되어버리기 쉽다. 40년 전통을 자랑하는 미국의 하드코어 아웃도어 전문업체 EMS(Eastern Mountain Sports)는 야외 스포츠를 즐기는 전문가용 상품을 취급했다. 그런데 매장을 방문하는 고객 개개인의 요구와 불만사항에 맞춰 일반인용 도구와 의류 등 제품 라인을 추가적으로 확장한 결과 ‘등산용 로프를 파는 갭(GAP)’으로 불리는 몰개성적인 브랜드가 되고 말았다.

특히 니즈(Needs)가 세분화되는 성숙시장에서 평균적인 제품을 지향한다면 결국 누구도 만족시키지 못하게 된다. 한국 맥주가 ‘싱겁다’ ‘따분하다’는 악평을 받게 된 데에는 한국인의 평균적인 입맛에 맞춰 무난한 맛을 추구해 온 탓도 있다. 취향이 다양해지고 분위기와 맛을 즐기는 문화가 확산되는 시장에서는 시원하고 잘 넘어가는 평범한 맛으로 대응하기보다 독특한 향, 특색 있는 맛으로 개성이 강한 세분 시장을 개척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비난 피하려다 개성 잃어선 안돼
고객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되 그들의 요구를 따르는 것이 독이 될지 득이 될지를 판단하는 지혜를 갖춰야 한다. 최근 아이폰은 작은 화면에 대한 고집을 버린 후 잃었던 팬들을 되찾고 있다. 그렇지만 폐쇄적인 운영 방식은 고수한다. 마마이트는 역겨움을 호소하는 고객들의 요구에도 1902년부터 사용해 온 레시피를 일절 변경하지 않는다. 대신 비타민 B가 풍부한 건강식이라는 가치를 강조한다.

뚱뚱한 여성 고객은 상대하지 않겠다는 방침으로 물의를 일으킨 아베크롬비앤피치의 전 CEO 마이크 제프리스.
물론 도리에 맞지 않는 고집은 금물이다. 미국의 캐주얼 패션 브랜드 아베크롬비앤피치는 뚱뚱한 고객은 상대하지 않겠다며 XL 이상 사이즈의 여성 의류는 판매하지 않았다. 매장 직원도 외모가 뛰어난 백인만 고용하는 원칙에 집착했다. 그러다 결국 패러디, 불매운동의 대상이 되었다. 판매 실적까지 부진해지자 궤변을 일삼던 CEO 마이크 제프리스는 2014년 말 사퇴하고 말았다. 가치 있는 원칙을 고수하는 것과 삐뚤어진 우월감은 구별되어야 한다.

불만과 반감을 지닌 고객과의 명확한 선 긋기로 열성 팬을 확보한 미러클휩과 마마이트의 전략을 모두가 다 따를 수는 없을 테다. 분명한 것은 브랜드나 제품을 반대하는 고객의 존재를 두려워하고 외면하기보다 정면으로 마주 봐야한다는 것이다. 복잡하고 까다로운 시장일수록 대중의 인기를 얻으려는 욕심을 버리고 원칙을 벗어난 요구에는 ‘No’라고 대답하는 용기와 배짱이 필요하다.



최순화 소비자학을 공부했다. 미국 일리노이주립대에서 석사 학위를, 퍼듀대에서 박사 학위를 받은 뒤 삼성경제연구소에서 근무했다. 현재 국내외 소비시장 트렌드 분석, 브랜드 관리 전략 등을 연구하고 있다. 저서로 『반감고객들』(2014), 『I Love 브랜드』(공저, 2010)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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