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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현의 마음과 세상] 떠나보내기의 어려움

중앙선데이 2015.04.12 01:52 422호 22면 지면보기
소설가 김훈 원작으로 임권택 감독이 연출한 영화 ‘화장’을 봤다. 영화 속 오 상무의 아내는 암이 여러 번 재발해 더 손쓸 도리가 없는 상태다. 그럼에도 그는 괴로운 내색 없이 회사 일을 하고 밤이면 병실에서 간병을 한다. 긴 시간이 지나 아내가 숨지자 오 상무는 장례를 준비하고 치른다. 마치 회사 일을 하듯이. 장례가 끝난 후 단조로운 목소리로 딸에게 “엄마 옷 중 쓸 만 한 건 기부하고, 나머지는 다 버려라”라고 말했다. 딸은“아빠, 왜 이렇게 서둘러?”라면서 서운해 하며 화를 냈다. 영화는 무표정하지만 사정없이 흔들려가는 오 상무의 내면을 쫓는다. 이런 그를 딸과 처제는 서운해 하고 비난하기도 했다. 아마도 그건 떠나보내는 그만의 과정이었을 텐데 말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상실의 과정에 대해 생각하게 됐다. 각자 나름의 방식으로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낸다. 방법이 어떻든 그 과정은 꼭 필요하다. 중요한 사람을 잃는 길은 두 가지다. 하나는 예정된 상실이다. 암에 걸려 오래지 않아 사망할 것을 알고 있는 경우다. 사람에 따라 편차는 있지만 모두 그 불가피성을 인정하고 마음의 준비를 할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다른 하나는 예상치 못한 상실이다. 사고로 급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는 경우다. 아침에 웃으면서 나간 사람이 영원히 떠나 버린다. 예정된 상실에 비해 훨씬 힘든 상황일 수밖에 없다. 마음의 준비를 할 여유도, 받아들일 준비도 돼있지 않다. 슬픈 마음조차도 들지 않고 먹먹하기만 해서 그게 더 이상하다고 말한다.

일러스트 강일구 ilgook@hanmail.net
둘 모두 애도가 필요하다. 애도란 떠난 이를 마음 안에 간직하되 현실에선 함께 하지 못하게 됐다는 것을 인정하는 과정이다. 애도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못하고, 사건만 되새기면 현재의 삶을 살 수 없다. 반복해서 “왜”를 되뇌고, 자신에게 닥친 일을 용납할 수 없다고 여기기만 한다. 그렇기에 충분히 슬퍼하고 아파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화장’에서 오 상무는 울지 못했다.

돌아보니, 지난해 4월 16일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간다며 떠난 아이들이 진도 앞바다에 빠져 가족을 떠난 지 어느새 1년이다. 일반적으로 1년이란 짧은 시간이 아니다. 정상적 과정을 거쳤다면 남은 이들은 대개 현실로 돌아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유족들은 그렇지 못하다. 여전히 광화문 앞에, 팽목항에 서 있다. 예기치 않은 상실이었다는 것을 하나의 이유로 대기엔 충분치 못하다. 상실을 받아들이는 애도의 과정을 정상적으로 치를 분위기가 만들어지지 못한 것도 큰 이유 중 하나다. 그러니 여전히 가족의 마음 안에서 애도는 현재진행형이다. “이제 그만 마음에 묻어둡시다”는 말은 옆에서 섣불리 할 말이 아니다. “우리는 옆에 있습니다. 언제든지 필요한 것이 있으면 말하세요”라고 해야 한다. 어설픈 위로나 충고, 판단적 언행은 도리어 이해받지 못했다는 상처를 줄 뿐이다.

유가족을 넘어서서 우리 사회 전체의 집단적 상실에 대한 애도를 위해 정치와 셈법을 떠나서 솔직함과 진실함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감정을 숨기고 억제하라고 강요하는 것은 나중에 더 큰 혼돈을 부를 뿐이다. 지금이라도 제대로 된 애도를 위한 사회적 움직임이 있으면 좋겠다.


하지현 건국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jhn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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