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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습생 잡일 돕는 ‘별 셋’ 셰프 주방 최전선서 진두지휘

중앙선데이 2015.04.12 02:11 422호 24면 지면보기
일러스트=박용석
베르나르 파코(Bernard Pacaud). 올해로 31년째 미슐랭 가이드 최고 등급인 별 3개를 유지하고 있는 프랑스 파리의 최고급 클래식 레스토랑 랑브루아지(L’AMBROISIE)의 오너셰프인 그에 대한 글을 쓰기로 마음먹기까지, 사실 적잖이 망설였다. 프랑스 유학 시절 그의 주방에서 반년간 땀 흘리며 견습생활을 했던 경험 때문에 평소 그에 대해서 상당한 경외감과 존경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바로 이 점 때문에 더욱 부담스러웠던 것이다.

셰프가 쓰는 셰프이야기<2> 랑브루아지 오너셰프 베르나르 파코

미식의 나라 프랑스, 그중에서도 리옹을 요리의 수도로 부르는 이들이 적지 않던 1960년대에 그는 당시 ‘요리의 어머니’로 불리는 유제니 브라지에(Brazier) 셰프의 주방에서 경력을 쌓았다. 파코에 앞서 현재 ‘프랑스 요리계의 대부’로까지 일컬어지는 폴 보퀴즈(Paul Bocuse)도 브라지에의 주방을 거쳐갔다. 그때나 지금이나 파인 다이닝 요리업계는 남성 셰프가 주도한다는 걸 감안하면, 여성 셰프인 브라지에가 얼마나 전설적인 셰프였는지 짐작이 갈 것이다.

브라지에 아래 요리사를 거쳐 파코는 1981년 파리에 ‘랑브루아지’라는 이름의 작은 식당을 열었다. 그는 아주 단순해 보이지만 좋은 재료와 탄탄한 기본기를 바탕으로 한 음식으로 식당 오픈 이듬해에 곧바로 미슐랭가이드 별을 따 내는 성과를 올렸다. 그의 음식은 식자재가 가진 기본 맛을 중요시하는 특징이 있다. 그리고 이로부터 4년 뒤, 미슐랭 최고 등급인 3스타를 받으며 셰프로 세계적인 명성을 드날렸다. 바로 이 해에 좀더 넓은 현재의 자리로 레스토랑을 옮긴 후 지금까지 줄곧 이 자리는 물론 명성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파코가 처음 레스토랑을 열었을 당시 주방에는 그를 제외하고는 요리사가 딱 한 사람 밖에 더 없었다. 젊은 일본인 요리사였는데, 지금 일본 도쿄에서 최고의 프렌치 레스토랑으로 평가받는 코트 도르(Cote D’or)의 사이스 마사오(斉須政雄) 셰프다. 사이스의 요리를 보면 스승인 파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다. 역시 훌륭한 스승에게서 훌륭한 제자가 나오는 법인가 보다.

최근 한국 외식시장을 들여다보면 바야흐로 셰프 전성시대다. 불과 십 수년 전만해도 3D 업종으로 꼽힐 만큼 세간의 평가가 낮았지만 이젠 거꾸로 최고의 인기 직종으로 떠오르고 있다. 숱한 미디어에서 수많은 스타셰프를 매일매일 새롭게 탄생시키고 있을 정도다. 하지만 국내에서 아무리 스타셰프의 인기가 높아졌다해도 프랑스에서 미슐랭 3스타 셰프가 구축하고 있는 입지에는 아직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들은 연예계나 스포츠 월드스타 못지않은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레스토랑으로 정재계 VIP들의 방문이 쇄도하는 건 기본이고, 전 세계 미식가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는다.

한마디로 세계 미식의 도시 파리에서 미슐랭가이드의 별 3개를 받는다는 건 요리사가 누릴 수 있는 최고의 영예다. 그저 요리사 한 사람이 아니라 스스로 명사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적지 않은 미슐랭 3스타 셰프가 사실은 주방을 비우는 경우가 허다하다. VIP가 방문했을 때 잠시 테이블에 나가 인사를 할 뿐 실제 주방에는 없는 사례가 많다는 얘기다. 심지어 레시피 작업 같은 실질적인 주방 운영이 오롯이 부주방장들 몫이 되어 버리는 경우도 다반사다.

2009년 랑브루아지 견습생 시절. 파코 셰프와 함께 한 이유석 셰프.
스타 셰프의 이런 속사정을 알고 있기에 2008년 가을 그와의 첫 만남이 더욱 놀라웠는지도 모른다. 나는 견습 첫날부터 그와 온전히 일을 함께 했다. 그것도 요리가 아니라 오래된 나무상자 정리를 함께 했다. 30여 년을 미슐랭 3스타 셰프로 살아온 프랑스 요리계의 거성이 견습생과 함께 쓰레기통 앞에서 박스를 정리하다니. 놀라움은 계속 이어졌다. 나무상자를 정리한 다음에는 그가 직접 들고 온 가을에만 나오는 계절 버섯 세 박스를 두 시간 동안 함께 다듬었다. 얼마나 놀랐던지, 훗날 사람들에게 이런 식으로 설명하곤 한다. 마치 동네 공터에서 공을 차고 있는데, 어느 순간 디에고 마라도나가 옆에서 같이 공을 차고 있는 걸 알게 됐을 때의 느낌이라고 말이다.

그런데 6개월을 함께 지내다보니 이런 일은 매일 벌어지는 일상에 지나지 않았다. 그는 주방에서 손이 많이 가는 일을 직접 챙기면서 주방에서 모든 걸 진두 지휘했다. 이런 그의 모습을 보며 요리사의 한 사람으로서 존경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철갑상어캐비어소스의 농어구이와 아티초크(위). 비스크소스를 곁들인 부르따뉴산 랍스터 구이.
파코의 주방에서 일하며 놀란 게 또 있다. 바로 그의 말하는 태도다. 대개의 주방에서는 손님 주문에 최대한 빨리 움직여야 하고 실수를 줄이려다 보니 목소리가 커진다. 욕이 오갈 때도 많다. 하지만 파코의 주방에서는 소리 지르는 문화가 없었다. 설령 막내 요리사가 잘못을 했다해도 당장 그를 탓하거나 꾸짖기 보다는 최대한 빨리 도와 그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애를 썼다. 파코 셰프는 잘못에 대해 책임추궁을 하거나 화를 내는 대신 서비스가 모두 끝난 후 똑같은 실수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도록 그저 찬찬히 타일렀다. 스스로에게는 엄격하되, 동료에게는 관대하게 대한다는 게 파코 주방의 철학이었다.

어느덧 7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지만 당시 파코 셰프에게 배운 건 아직 마음속 깊이 박혀있다. 근엄하면서도 부드러운 리더십은 예나 지금이나 꼭 닮고 싶은 부분이다. 이직이 잦은 게 외식업계지만 랑브루아지에서는 직원들이 평균 10년 이상씩 일한다. 지배인과 소믈리에는 훨씬 더 오래 같이 일한, 이제는 머리가 희끗희끗한 60~70대다. 견습 생활을 하며 가끔 이들에게 20~30년 전 랑브루아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이들은 모두 파코 셰프가 직원을 가족처럼 여기며 부드러운 리더십으로 감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나를 포함해 외식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서로 믿을 수 있는 사람끼리 함께 요리하며 한가족처럼 함께 늙어간다는 게 하나의 로망이다. 그렇기에 당시 랑브루아지 직원들이 20~30년 전에도 다들 함께 찍은 사진을 우연히 봤을 때의 부러움을 아직 잊을 수 없는 건지도 모른다. 서로 경쟁하기 바쁜 세상, 자신의 일에 늘 충실하면서 주위 사람들을 소중히 아끼던 파코 셰프의 인자한 미소가 더욱 그리워지는 요즘이다.



베르나르 파코(68)
 현재 랑브루아지(미슐랭 3스타) 오너 셰프
 여성 최초로 미슐랭 3스타를 받은 유제니 브라지에 셰프의 리옹 레스토랑에서 요리사 생활 시작
 1981년 랑브루아지 오픈 후 86년 미슐랭 3스타 획득

이유석(34)
 현재 루이쌍끄 오너셰프
 2006년 을지대 조리예술학과 졸업
 2006~2009년 랑브루아지(미슐랭 3스타)를 비롯 파리 6개 레스토랑서 견습생활
 2009~2010년 스페인 바르셀로나·라만차·발렌시아서 견습생활


이유석 루이쌍끄 오너셰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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