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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모의 자연사 이야기] 3억 8000만년 전 물고기, 번식 위해 사랑을 나누다

중앙선데이 2015.04.12 02:21 422호 25면 지면보기
1 수컷 판피어류의 상상도. 판피어류는 한 쌍의 생식기를 갖춘 최초의 생명체다. 2 판피어류 모형을 들고 있는 존 롱 박사. 그는 최초의 수컷 생식기를 발견한 고생물학자다.
현재 지구에 살고 있는 생명을 모두 합치면 2000만~4500만 종(種) 쯤 된다. 비록 이 가운데 99%는 등뼈가 없는 곤충과 기타 무척추동물과 미생물이다. 하지만 지금 내가 떠올릴 수 있는 생물의 이름을 생각한다면 실로 다양한 생명이 살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어쩌다 이렇게 다양한 생명이 나타나게 됐을까? 불과 100만 년 전만 해도 2만 명에 불과했던 인류의 수는 현재 71억 명으로 늘어났다. 호모 사피엔스란 한 개의 종만 남은 인류는 어떻게 전 지구를 차지하게 됐을까? 그 답은 바로 생식(生殖)에 있다. 그렇다면 우리 인류의 생식 방법은 언제 시작됐을까? 이 질문은 정자를 여성의 난자까지 전달하는 장치인 남성 생식기, 즉 페니스의 진화에 닿아 있다.

<25> 짝짓기의 진화

난소 있는 척추 위쪽에서 발견된 치어
미국의 고생물학자이자 『내 안의 물고기』의 저자인 닐 슈빈(Neil Schubin)을 비롯한 대부분의 진화학자들은 인체의 기본 설계도가 3억 6000만 년 전 데본기의 물고기에서 이미 만들어졌다고 여긴다. 당시 물고기에서 두개골, 단단한 등뼈, 앞다리와 뒷다리를 발달시킨 동물이 생겨났다. 이들은 손가락·발가락마저 발달시킨 후 육지로 올라와 네발동물이 됐다. 이 네발동물이 양서류·파충류·조류와 포유류의 조상이다. 그렇다면 페니스도 물고기에서 오지 않았을까? 생물학자들이 말하는 페니스란 ‘수컷 포유류의 생식기’지만 여기서는 수컷이 암컷에게 전달하기 위해 사용하는 구조체를 통틀어 말하기로 하자.

호주 플린더스 대학 존 롱 교수. 고고 화석 산출지에서발굴 작업을 하고 있다.
생물학자인 존 롱(John Long)은 1983년 호주 멜버른에서 고생물학 박사과정을 밟으면서 판피(板皮)어류를 연구했다. 판피어류는 말 그대로 목과 몸통이 단단한 골판(骨板)으로 덮여 있는 물고기다. 지금은 그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이 별로 없지만 자그마치 7000만 년 동안이나 지구를 지배했던 척추동물이다. 물고기는 무악어류→판피어류→연골어류→경골어류 순(順)으로 진화했다. 롱 박사는 오스트로필로레피스(Ausrophyllolepis) 속(屬)의 판피어류 화석을 관찰하다가 “배지느러미가 혹시 생식기가 아닐까”란 막연한 생각을 했다.

20여 년이 지난 2007년 롱 박사는 서(西)호주 박물관 큐레이터를 거쳐 멜버른 박물관의 과학부장으로 일하고 있었다. 그는 거의 완벽한 틱토돈티드(Ptyctodontid) 화석을 확보했다. 당시 전 세계적으로 알려진 틱토돈티드는 10개 미만인데다가 두개골에서 꼬리뼈까지 완벽하게 뼈가 보존된 것은 없었다. 롱 박사는 이 개체의 종(種) 이름을 타이헤르토두스(teichertodus)로 정했다. 그는 마지막 꼬리뼈를 처리하는 도중 표본의 몸통뼈 바로 뒤에 아주 작은 치어(稚魚) 화석 같은 뼛조각들이 얼기설기 얽혀 있는 것을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골판과 턱의 구조가 틱토돈티드 그룹에 속하는 것으로 보였다. 그렇다면 타이헤르토두스가 죽기 직전에 잡아먹은 치어가 소화되지 않은 채로 남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게 상식이다.

그런데 그에게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는 소리쳤다. “이건 잡아먹힌 새끼 물고기가 아니야. 어미 물고기 뱃속에서 자라고 있던 배아(embryo)야. 척추동물 화석에서 발견된 세계 최고(最古)의 배아란 말이지.”

그는 난소가 있는 척추 위쪽에서 치어가 발견됐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만일 그것이 먹이였다면 위장관이 있는 하복부에 있어야 정상이다. 게다가 먹이였다면 치어의 뼈가 부서지거나 부식돼 있어야 했지만 그런 흔적이 전혀 없었다. 연구팀은 전자현미경을 동원해 화석을 추출하는 동안 떨어져나간 부스러기들을 조사했다. 1주일 후 배아를 둘러싼 ‘노끈 모양의 구조체’를 발견했다. 탯줄이 분명했다.

“와우! 그런데 물고기 배아가 어떻게 어미 물고기의 뱃속에 있지?”

판피어류 화석. 판피어류의 ‘기각’은 유연했다. 발기도 가능했다. 최초의 페니스인 셈이다.
1960년 틱토돈티드에서 기각 발견
암컷이 물속에 알을 낳으면 수컷이 다가와 그 위에 정자를 분사한다. 수정란에서 깨어난 치어들이 다시 어미의 뱃속으로 들어가선 탯줄로 어미와 연결돼 영양을 공급받는다? 이건 말도 안 되지 않는다! 그들도 섹스를 해야만 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뱃속에서 배아가 자랄 리가 없다. 그렇다면 틱토돈티드에게 페니스가 있었다는 말이 된다.

현생 생물의 행태는 고(古)생물의 생활양식을 이해하는 기준이다. 흔히 ‘박치기 공룡’이라고 하는 파키케팔로사우루스가 박치기를 한 이유는 요즘 살고 있는 산양 수컷이 박치기를 하는 이유와 같을 것이다. 바로 암컷을 차지하기 위한 박치기다. 틱토돈티드의 페니스를 찾으려면 삽입기관이 있는 현생 물고기를 살펴봐야 한다.

난태생(卵胎生)으로 새끼를 낳는 상어와 가오리의 양쪽 배지느러미 뒤엔 ‘기각’이라고 하는 기다란 기관이 매달려 있다. 예전엔 짝짓기 할 때 암컷을 꼭 붙드는 보조기관으로 여겨졌지만 암컷의 몸 속 깊숙이 들어가는 페니스란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상어의 기각은 인간의 페니스와 같은 방식으로 작동한다. 평소엔 고무처럼 물렁하지만 그 속에 혈액이 충만하면 단단하게 발기한다. 물속에서 사랑을 나누다보면 삽입된 기각이 빠져나올 수 있다. 이것을 막기 위해 기각의 끝부분엔 갈고리나 가시가 달려 있다.

롱 박사팀은 틱토돈티드의 기각과 관련된 선행(先行) 연구들을 검색했다. 틱토돈티드에서 기각이 발견된 것은 이미 1960년의 일이다. 스웨덴 자연사박물관에서 일하던 노르웨이 고생물학자 토르 외르빅(Tor Ørvig)이 배지느러미 위로 튀어나온 기각을 확인했다. 7년 후 영국의 로저 마일스(Roger Miles)는 스코틀랜드의 3억 9000만 년 전 지층에서 나온 틱토돈티드에서 갈고리와 가시로 둘러싸인 ‘곤봉 모양의 뼈’까지 발견했다. 틱토돈티드의 기각은 오늘날의 상어처럼 체내 수정을 하는 데 쓰인 게 분명하다. 그런데 1977년 마일스는 기각의 외부는 단단한 뼈로 둘러싸여 있고 내부엔 연골로 된 관이 있다고 밝혔다.

롱 박사는 혼란에 빠졌다. 아무리 생각해도 뼈로 에워싸여 있는 단단한 기각으론, 틱토돈티드 수컷이 암컷을 끌어당기고 기각을 암컷 생식기에 넣는 동작과 자세를 취하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체내 수정을 하려면 ‘유연하고 발기가 되는 페니스’가 필수적이었다. 그는 전 세계 자연사박물관의 모든 틱토돈티드 기각을 조사했다. 알고 보니 틱토톤티드 기각 가운데 뼈로 둘러싸인 부위는 일부에 불과했다. 그렇다면 틱토돈티드 기각은 발기한 뒤 이완될 수 있다. 3억 8000만 년 된 물고기에서 최초의 페니스를 발견한 것이다.

2007년 틱토돈티드 타이헤르토두스(Ptyctodontid teichertodus) 화석에 대한 논문을 준비하던 롱 박사의 머릿속에 화석 하나가 번쩍 떠올랐다. 1983년 박사과정 시절에 발견했던 그 화석 말이다. 그는 사진 폴더 함을 뒤져 화석을 찾은 후 비늘 부분을 자세히 관찰했다. 여태 비늘이라고 생각했던 부분이 알고 보니 배아의 뼈였다. 뼈 옆으론 탯줄이 어렴풋이 보였다. 이미 24년 전에 획기적인 발견을 했던 것이다. 롱 박사팀은 24년 전 발견 내용까지 합해 권위 있는 과학 학술지인 『네이처』에 논문을 발표했다. 그리고 운 좋게도 마침 개보수를 끝낸 영국 왕립연구소의 개관 기념식에서 이 발견을 발표할 기회를 맞았다. 기념식엔 저명한 동물학자 데이비드 애튼버러(David Frederick Attenborough)가 참석했다. 그는 1979년 TV 다큐멘터리 시리즈 ‘지구 생명(Life on Earth)’을 통해 호주 서부의 고고(Gogo) 유적지를 세상에 알린 인물이다. 롱 박사는 애튼버러에 대한 존경심의 표현으로 첫 번째 페니스의 주인공 물고기 이름을 타이헤르토두스에서 ‘마테르피스키스 아텐보로이’(Materpiscis attenboroughi)로 바꿨다. ‘애튼버러의 어머니’란 뜻이다. 하지만 여전히 틱토돈티드의 일종으로 분류된다.

정상 체위는 일찌감치 바다에서 시작
해부학적 증거가 나왔으면 이제 상상을 해야 한다. 물론 막연한 상상이 아니라 현생 생물의 행태를 바탕으로 하는 합리적인 상상이다.

현생 생물 가운데 틱토돈티드의 가장 가까운 친척인 상어와 가오리는 바다의 모래 바닥에 의지해 사랑을 나눈다. 수컷 상어는 암컷에 접근해 지느러미와 꼬리를 살금살금 깨문다. 암컷의 성(性)호르몬 분비를 촉진하는 행위다. 성호르몬이 충분히 분비된 암컷은 뒤로 벌렁 누워 총배설강을 수컷에 노출시키거나 물구나무를 선다. 수컷은 가슴지느러미로 암컷을 꼭 잡고 배를 밀착시킨다. 수컷의 하복부에 혈류량이 증가하면 기각이 발기하고, 호르몬 작용으로 총배설강은 기각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이완된다. 틱토돈티드도 아마 이와 비슷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도저히 삽입이 불가능하다. 인류의 가장 일반적인 체위인 정상위는 이미 3억 8000만 년 전 바다에서 시작된 셈이다.

현재 호주 플린더스 대학 교수인 롱 박사의 연구팀은 ‘마테르피스키스 아텐보로이’ 외에 당시 물고기에서 페니스의 흔적을 다양하게 찾아냈다. 페니스를 사용한 체내 수정이 당시 물고기에겐 일반적인 생식 방식이었음을 밝혀냈다. 그런데 현생 상어나 가오리의 기각이 배지느러미의 일부분인 것과는 달리 판피어류의 기각은 지느러미와 전혀 연결돼 있지 않다. 이는 상어의 기각과 틱토돈티드의 기각이 같은 부위에서 유래한 것이 아니라 각기 따로 진화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생 어류는 대부분 페니스를 상실하고 체외 수정을 한다. 최대한 많이 번식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육상으로 진출한 동물의 페니스는 어떤 운명을 맞게 될까? 이야기는 계속된다.



이정모 연세대 생화학과와 동 대학원 졸업. 독일 본 대학교에서 공부했으나 박사는 아니다. 안양대 교양학부 교수 역임. 『달력과 권력』 『바이블 사이언스』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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