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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을 바꾼 전략] 물길 뚫기 전 물 흐름 살피듯 … 정치는 수읽기의 예술

중앙선데이 2015.04.12 02:50 422호 28면 지면보기
[중앙포토]
브라질 아마존의 나비 날갯짓이 미국 텍사스에 토네이도를 발생시킨다는 나비효과(카오스이론)는 작은 차이가 증폭되어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다준다는 걸 의미한다. 과연 조그마한 변화 하나가 세상을 뒤집을 수 있을까.

<15> 예측 조사의 위력

나비 날갯짓 하나로 토네이도를 만들기는 쉽지 않다. 오히려 토네이도가 불기 직전에 나비 날갯짓이라는 퍼포먼스를 보여주면서 토네이도를 나비 날갯짓으로 만들었다고 눈속임하는 것이 더 쉽다. 즉 세상을 의도대로 변화시키는 것보다 세상의 변화를 읽어 이용하는 것이 더 용이하다.

경제가 장기 침체에 막 들어섰을 때 침체의 부작용을 최소화한 경제책임자보다는, 어떤 정책을 실시했더라도 경제는 호전될 수밖에 없었던 시기의 경제책임자가 대중에게 더 나은 평가를 받는다. 또 대통령에 당선될 가능성이 전혀 없던 정치지도자를 박빙으로 아깝게 패배하게 만든 참모의 능력도 높게 평가되지 않는다. 대신 실제 승리에는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았더라도 결국 당선한 정치지도자에 미리 줄선 참모가 더 능력자로 평가받는다. 바람이나 물길의 흐름을 인지하는 것 또한 전략이다.

정확한 표본 추출이 표본 크기보다 중요
흐름을 추정하는 방법은 시뮬레이션, 시나리오, 게이밍, 역술 등 다양하다. 선거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추정방법은 부분을 갖고 전체를 추정하는 표본조사방법이다. 전체 모집단의 비율은 무작위로 추출된 n 크기의 표본에서 조사된 비율 P로 추정하되 다음과 같은 95% 신뢰도의 오차범위를 갖는다.

P±1/√n

예컨대 무작위로 추출된 100명의 표본에서 대통령 지지도가 50%라고 하면, 95% 신뢰도에서 국민 전체의 대통령 지지도는 50% ±10%포인트, 즉 국민 전체의 대통령 지지도가 40~60%일 가능성은 95%라는 것이다. 만일 3000명의 표본이라면 95% 신뢰도의 오차범위는 2%포인트에 불과하다. 물론 통계학이나 조사방법 문헌에서 소개하는 공식은 좀 더 복잡하지만 그 또한 몇 가지 가정이 전제된 조건하에서의 오차범위일 뿐이다. 편의상 ±1/√n 을 95% 신뢰도의 오차범위로 계산해도 무방하다.

표본이 작아도 정확하게 추출하기만 하면 수천만명 혹은 수억명 전체의 평균값을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표본조사방법을 신뢰하지 않는 사람이 의외로 많다. 1992년 미국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여론조사에서 빌 클린턴 후보에게 뒤진 조지 부시 대통령은 유세에서 “여러분 가운데 여론조사 받은 사람이 있느냐”며 여론조사결과를 믿지 못하겠다는 발언을 했다. 국내에서도 종종 젊은 연령층이 있는지를 묻고는 없으면 아예 조사를 하지 않은 전화를 받은 노년층은 “무슨 여론조사가 젊은 층만 찾느냐”며 여론조사결과를 믿지 않기도 한다.

선거 관련 여론조사에서 가장 정확하다고 평가되는 것은 출구조사다. 투표 기권자까지 포함할 수밖에 없는 사전조사와 달리, 출구조사는 투표소에서 투표를 마치고 나오는 사람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실제 선거결과에 근접한 결과를 보여줄 수 있다. 부재자 및 사전 투표자의 선택이 투표소 투표자의 선택과 다르지 않고 또 출구조사 마감 전후의 선택이 서로 다르지 않다면, 출구조사 표본은 전체 투표자를 잘 대표할 것이다. 출구조사에서는 자신이 누구에게 투표했는지 알려주기 싫은 사람도 응답내용을 보여주지 않고 바로 수거함에 넣기 때문에 솔직한 응답에 대한 부담감도 덜 하다. 출구조사를 제대로 수행한다면 실제 선거결과와 아주 미미한 오차만을 보여줄 것이다.

2000년 4월 13일 국회의원선거 출구조사 모습. 당시 선거법은 투표소 300m 밖에서만 조사를 허용했고, 출구조사는 어느 정당이 최다 의석을 차지할지도 맞추지 못했다.
신뢰도 높은 예측은 선거 결과에도 영향
지금으로부터 꼭 15년 전인 2000년 4월 13일 대한민국에서 첫 출구조사가 실시됐다. 물론 1996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투표소 500m 밖에서는 출구조사를 실시할 수 있었으나 500m 기준 때문에 출구조사가 제대로 실시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2000년 선거법 개정으로 투표소 300m 밖에서 조사를 할 수 있게 되면서 방송3사의 첫 출구조사가 이뤄졌다. 그러나 최다의석 정당을 잘못 예측하는 등 30여개 선거구에서 당선자를 잘못 예측했다.

2004년에 개정된 선거법은 투표소 100m 밖 조사를 허용했다. 2004년과 2008년 국회의원 선거의 출구조사는 제1당 의석수를 약 20석 틀리게 예측했다. 투표소 50m 밖 조사가 허용된 2012년 국회의원 선거에서도 출구조사는 20개 가까운 선거구의 당선자를 잘못 예측했다.

200명 넘는 당선자를 예측해야 하는 국회의원 선거와 달리 당선자 1명만을 예측하는 대통령 선거나 16~17인을 예측하는 광역단체장 선거에서의 출구조사는 틀린 예측이 적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당선자를 맞췄다 하더라도 실제 득표율이 예측 득표율과 큰 차이를 보인 경우는 허다하다. 투표소 공간의 특수성 때문에 법적으로 허용된 거리보다 더 가까이에서 조사한 곳도 있고, 또 예측이 틀렸을 때 받을 비난을 피하기 위해 예산에 책정된 표본보다 더 작은 표본으로 일부러 오차범위를 늘린 조사도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출구조사의 성적표는 초라하다.

무엇보다 출구조사의 가장 큰 문제점은 너무 늦게 예측한다는 점이다. 마라톤 경기에서 종착점을 몇 미터 앞에 두고 우승자와 우승기록을 예측하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출구조사 결과를 실제 정치에 활용할 길은 별로 없고, 주로 방송용으로 쓰인다. 남보다 조금이라도 빨리 보도하는 게 일종의 특종으로 여겨지기에 출구조사는 2000년 4월 이래 매 선거마다 시행되고 있다. 같은 이유로 개표방송에서도 방송국들은 실제 개표보다 더 진전된 개표 상황을 보도한다. 개표율 높은 방송으로 채널을 돌리는 시청자를 잡기 위해서다. 이렇게 방송국 간 경쟁으로 각 후보의 득표수를 지나치게 올려 방송하다가 이미 방송된 중간득표보다 최종득표가 적을까봐 노심초사하기도 한다.

출구조사든 사전조사든 표본이 모집단을 잘 대표하도록 추출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무작위 추출이 어렵다면 조사내용과 관계있는 응답자 배경(연령·지역 등)의 각 비율을 모집단대로 할당하여 표본을 추출할 수 있다. 추출된 표본이 모두 솔직하게 대답하면 조사결과는 정확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많은 무응답자가 발생하기 때문에 이를 처리하는 방법이 정확한 예측조사의 노하우 가운데 하나다. 응답자 다수가 편향된 답변을 할 땐 과거 사례 분석을 통해 보정할 수 있다.

예측 자체가 실제 결과에 영향을 줄 때도 있다. 정확한 예측은 예측의 효과까지 감안한 예측이다. 예측에 대한 신뢰가 높거나 부동(浮動)표가 많을 때 그리고 정당보다 인물 위주의 선거, 다자구도, 예비선거, 작은 선거 등에서 선거예측의 영향력이 크다.

대선에 나섰던 문재인과 안철수는 2012년 11월 야권 단일화 협상을 벌였지만 룰에 대한 의견차만 확인한 끝에 결국 안철수가 사퇴했다. 그리고 13일만인 12월 6일 두 사람은 전격적으로 회동해 대선 유세에 힘을 합치기로 합의했다. [중앙포토]
국민만족 정책 위해 필요한 여론조사
여론조사가 한국 선거에 깊숙이 개입하게 된 계기는 2002년 노무현-정몽준 대통령 후보 단일화였다. 이회창 후보 지지자를 제외한 응답자에게 “한나라당 이회창후보와 경쟁할 후보로 노무현 후보와 정몽준 후보 중 누구를 지지하느냐”고 물은 후 그 조사결과에 따라 노후보로 단일화했다. 만약 질문이 달랐다면 정후보로 단일화가 됐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2012년 야권후보 단일화 협상에서 문재인 후보측은 새누리당 지지자를 제외한 응답자에게 “박근혜 후보와 경쟁할 후보로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 중 누가 적합하다고 보느냐”를 물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안철수 후보측은 전체 유권자에게 “박근혜 후보와 문재인 후보가 맞불을 경우 누구를 지지하느냐, 또 박근혜 후보와 안철수 후보가 맞붙을 경우 누구를 지지하느냐”를 묻자고 주장했다. 결국 양측의 이견으로 단일화 여론조사는 실시되지 못했다.

야권후보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여당 지지자가 여당 후보에게 약한 야당 후보를 전략적으로 선택하는 이른바 역선택 문제는 어떤 방식에서도 발생한다. 다만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다. 여당 지지자는 전체 국민을 포함한 조사뿐 아니라 여당 지지자를 제외한 조사에서도 여당 지지자가 아니라면서 참여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야당 지지자도 여당 후보 선출에 전략적으로 관여할 수 있다.

여론조사는 이제 선거뿐 아니라 정당의 공천과정에도 활용되고 있다. 그러다보니 공천후보 결정을 위한 여론조사에 부정적으로 개입하려는 시도도 있다. 예컨대 어떤 선거구에 1만개의 유선 전화선이 있고 그 가운데 1000개를 확보한다면 상대 후보보다 10%포인트 앞서서 경쟁하는 것이다. 물론 이는 업무방해죄가 적용될 수 있는 위법 행위다. 왜곡되지 않은 정확한 여론조사는 국민의 마음을 드러낸다. 유권자 마음 읽기는 정치인의 득표 증대뿐 아니라 국민을 만족시키는 정책 실현에도 필수적이다.

4·29 재보선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도 딱 1년 남았다. 정확한 여론조사로 정치인들은 유권자의 큰 흐름을 제대로 읽고 행동하여 정치적 이득을 얻고 동시에 유권자의 만족도도 증대되기를 기대해본다.



김재한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미국 로체스터대 정치학 박사. 2009년 미국 후버연구소 National Fellow, 2010년 교육부 국가석학으로 선정됐다. 정치 현상의 수리적 분석에 능하다. 저서로는 『동서양의 신뢰』 『DMZ 평화답사』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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