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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영웅 시리즈 <44> 세르게이 브린 구글 창업자 겸 기술담당 사장

온라인 중앙일보 2015.04.12 00:01
구글글래스를 쓴 세르게이 브린 구글 창업자 겸 기술담당 사장. 구글글래스는 안경 하나만으로 사진 촬영부터 인터넷 접속까지 가능한 웨어러블 컴퓨터로 구글 혁신의 상징이다.



구글글래스·무인자동차 사업, 과감하게 이끄는 디지털 모험가

세르게이 브린(41)은 구글 공동 설립자인 래리 페이지(41)와 줄곧 함께 거론돼 왔다. 지난해 11월 초 미국 경제잡지 포브스가 발표한 ‘2014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인물’ 순위에서 두 사람은 공동 9위를 차지했다. 구글의 지분을 나란히 16%씩 보유하고 있는 두 사람은 재산도 각각 299억 달러로 똑같다. 포브스 ‘세계의 부호’ 19위, 미국 부호 순위에서 14위를 차지했다. 브린과 페이지는 디지털 시대 전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기업인 구글을 창업하고 지금까지 실질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구글은 검색엔진 시장에서 전 세계의 65%를 차지하며, 구글의 안드로이드 운영 체제를 사용하는 모바일 기기 이용자도 10억 명이 넘는다. 구글은 세계 40개 국에서 4만 명을 고용하고 있다. 대부분 최고의 인재들이다.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에 다니던 1998년 미국 캘리포니아주 먼로 파크에 있는 친구의 주차장에서 구글을 공동 창업한 브린과 페이지는 이 회사를 지구상에서 가장 기업가치가 높으면서 가장 창의적인 인터넷 기업으로 키운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거의 쌍둥이처럼 함께 해왔지만 역할은 뚜렷하게 나뉜다. 페이지가 구글을 기업 가치가 높은 쪽으로 키우는 데 공을 세웠다면, 브린은 구글을 가장 창의성이 높은 혁신기업으로 유지시키는 데 주력해 온 것이다.



장기 전략 수립과 혁신적인 아이디어 개발에 몰두



페이지는 최근 스마트홈 서비스 업체인 네스트를 32억 달러에 인수해 사물인터넷을 비롯한 사업영역 다각화에 주력하고 있다. 구글의 미래 수익을 위한 투자다. 기술담당 사장 직함을 갖고 있는 브린은 창의적이고 혁신적이며 이 세상에 없는 것을 새롭게 내놓으려고 뛰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구글글래스와 무인자동차다. 지난해 10월 브린은 일상적인 구글 업무의 대부분을 순다르 피차이에게 넘기고 장기적인 전략 수립과 혁신적인 아이디어 개발에 몰두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구글 X’라고 불리는 비밀 조직이다. 구글의 고유 업무인 서치 엔진을 제외하고 무인자동차나 스마트 콘택트렌즈, 특수 풍력 발전기 등 모험적인 프로젝트들을 관장하는 부서다. 브린의 대표작으로 통하는 구글글래스가 바로 구글X에서 나왔다. 구글글래스는 안경 모양의 착용형 컴퓨터 단말기다. 패션과 IT기기, 인체와 단말기의 결합으로 불린다.



구글은 오래 전부터 자동차 산업에 진출, 미래형 자동차를 개발 중이다.




무인자동차는 브린의 노력으로 구글이 기술을 선점하고 있다. 2017년 상용화를 목표로 운전대·브레이크·액셀러레이터가 없는 3무(無)의 2인승 소형 무인자동차 시제품을 만들어 시험 운행 중인데 지난해 5월 처음으로 일반에 공개됐다. 지난 5년간 12만㎞ 이상 무인차를 시범 주행하는 동안 사고는 단 한 차례뿐이었다. 그것도 사람이 직접 운전해 본사 정문에 들어서다 가벼운 접촉사고를 낸 것이다. 자동차에 모바일 인터넷 기술을 접목, 원하는 목적지만 입력하면 컴퓨터가 운전을 대신하면서 최적화된 길을 알아서 찾아간다. 나아가 교통체증까지도 줄일 수 있다는 것이 IT업계의 판단이다.



브린은 2004년 ‘창업자 편지’를 투자가들에게 공표하면서 기업 철학을 밝혔다. “사업 환경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으며 이에 따른 장기 투자가 필요하다. 단기 실적을 내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고위험 고수익 프로젝트를 포기하는 일은 없도록 하겠다.” 브린은 구글글래스에 이어 다양한 웨어러블 컴퓨터에 무인자동차 등 미래형 첨단기기까지 모험 투자의 범위를 확장하고 있다. 브린의 이런 과감한 투자 덕분에 구글은 과감한 도전정신을 성장 엔진으로 삼고 있는 흔치 않은 회사로 평가된다.



옛 소련에서 태어나 공산당의 유태인 차별로 어려운 어린 시절을 보낸 브린은 지난해 2억2300만 달러를 내놓는 등 기부 활동도 열성적으로 벌이고 있다. 2008년 어머니가 파킨슨병에 걸리자 어머니가 치료 받던 메릴랜드대 병원에 거액을 기부했다. 부인 앤 보이치키는 이때부터 보건의료에 관심을 갖고 바이오 벤처 ‘23앤미’를 설립했다. 23앤미는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창업자 등과 함께 바이오 기술로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자는 ‘생명과학 돌파구 재단’을 운영 중이다. 2011년에는 자금난을 겪고 있던 인터넷 오픈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 50만 달러를 기부하기도 했다. 브린은 페이지와 더불어 기업 초기의 어려움을 잘 기억하는 창업자로 꼽힌다. 이런 브린의 주도로 구글은 과감한 도전정신, 가치를 이익과 바꾸지 않는 ‘개념 있는’ 기업으로 전 세계에서 더욱 인기를 누리고 있다.



세르게이 브린과 구글이 걸어온 길



1973년 8월 21일 옛 소련 모스크바에서 태어남. 유대계 부모인 미하일과 에우게니아는 모두 모스크바 대학 졸업. 아버지 미하일은 소련 공산당의 유태인 차별로 물리학을 포기하고 수학자가 됨.

1979년 미국으로 이민. 아버지는 메릴랜드 수학과 교수, 어머니는 나사 고다드 우주 비행 센터의 연구원이었던 과학 엘리트였음. 브린은 델피·메릴랜드의 페인트 몬테소리 학교에 다니며 집에서도 아버지로부터 수학을 배우면서 러시아어를 잊지 않음. 이후 메릴랜드주 그린벨트의 일리노어 루스벨트 고등학교 입학.

1990년 어릴 때부터 부모로부터 소련에서 겪은 고초에 대해 듣고 자란 브린은 17세 때 영재학교 학생들과 함께 태어난 나라인 옛 소련에 교환학생으로 갔다가 공산체제의 실상을 보고 독재 체제에 환멸을 느낌. 이는 구글이 중국의 검열에 대응하는 과정에 영향, 이익을 위해 자유를 제한하는 체제에 순응하기보다 철수를 선택.

1990년 메릴랜드대 컴퓨터 과학&수학과에 입학.

1993년 수석 졸업 후 미국국립과학재단 연구 장학생으로 스탠퍼드대 대학원에서 컴퓨터과학 전공. 수리해석용 소프트웨어 개발자인 볼프람연구소에서 인턴 활동.

1998년 스탠퍼드대 박사과정 중 미국 캘리포니아주 먼로 파크에 있는 친구의 주차장에서 페이지와 함께 구글 공동 창업.

2004년 G메일 서비스 개시. 디지털 지도회사인 키홀 인수.

2005년 구글어스와 구글맵을 선보임. 모바일 소프트웨어 업체인 안드로이드를 5000만 달러에 인수.

2006년 16억5000달러에 유튜브를 사들임.

2008년 오픈 소스 브라우저인 크롬 출시

2010년 스마트폰인 넥서스원 출시. 스마트홈 서비스 업체인 네스트 인수.

2011년 자금난을 겪고 있던 인터넷 오픈백과사전 위키피디아에 50만 달러 기부. 영국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는 브린을 “지식은 언제나 무지보다 항상 더 좋다고 믿는 사람. 디지털 시대의 계몽가”라 설명. 브린의 비공식적인 삶의 모토는 “악해지지 말자”.

2014년 5월 무인자동차 일반 공개. 9월 사용자의 검색 요청에 더 잘 응답하는 새 검색 알고리즘인 ‘허밍버드(hummingbird, 벌새)’ 공개. 구글을 처음 시작했던 ‘구글 차고(Google Garage)’에서 발표.





구글, 혁신의 역사



구글을 주도하는 브린(오른쪽)과 페이지(가운데), 에릭 슈미트.




구글은 2004년 G메일 서비스를 선보이면서 e메일 분야에 뛰어 들었다. 2004년에는 디지털 지도회사인 키홀을 인수해 이듬해 구글어스와 구글맵을 선보였다. 구글어스와 구글맵은 인류가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었다. 지구를 하나로 이어줬으며 전 세계 어디를 가나 편안하고 안전하게 정보를 얻어가며 여행이 가능해졌다. 거대한 지구가 PC에 이어 모바일의 세계로 들어온 것이다. 이들로 인해 지구는 그만큼 작아졌다. 어쩌면 인류가 지금껏 살아온 방식 자체를 바꾸게 될지도 모르는 혁신적인 서비스다.



일찌감치 모바일의 중요성을 깨달은 구글은 2005년 모바일 소프트웨어 업체인 안드로이드를 5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안드로이드는 현재 삼성 모바일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안드로이드의 성공에는 구글의 전략이 주요했다. 삼성전자와 HTC 등 단말기 제조업체에 스마트폰 운영체제(OS)인 안드로이드를 로열티 없이 제공한 것이다. 이로써 초기 애플에 밀렸던 모바일 시장에서 삼성전자와 함께 역전을 이뤘다. 과감한 전략이 극적인 성공으로 이어진 것이다.



2006년에는 영상 콘텐트의 중요성을 인식해 16억5000달러를 들여 유튜브를 사들였다. 현재 사용자 10억 명, 월 시청시간 600억 시간에 이르는 거대한 공룡 IT기업이 된 유튜브는 지구촌의 새로운 문화를 주도하고 있다. 초단위로 진화하고 있는 유튜브가 앞으로 무엇을 우리 앞에 내놓을지 아무도 모르는 상황이다. 유튜브는 현재 브린의 처형인 수전 보이치키가 대표를 맡고 있다.



또한 구글은 2008년 오픈 소스 브라우저인 크롬을 내놨으며 2010년에는 스마트폰 넥서스원을 내놓으면서 모바일 기기 사업에도 뛰어들었다. 스마트홈 서비스 업체인 네스트를 인수해 사물인터넷 사업에도 힘쓰고 있다.



이런 과감하고 혁신적인 투자가 구글의 성장 발판이 됐다. 1998년 창업 이후 구글이 인수한 기업만 164개에 이른다. 이를 통해 구글은 거대한 아이디어의 결합체에 추진력을 모은 엔진결합체와 시장 개척력까지 갖춘 IT산업계의 수퍼 히어로로 떠올랐다. 새롭고 완성되지 않은 성장유망산업에 일종의 벤처 투자를 해서 시장 자체를 개척하고 키운 것이다. 그런 다음 특유의 창의적 아이디어와 열정, 패기로 해당 업종 자체를 키워서 산업을 일궜다. 그것이 바로 구글의 성장전략이다.



정지원 자유기고가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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