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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득의 행복어사전] 꽃들이 썩는 줄도 모르고

중앙일보 2015.04.11 14:19
사람에 따라서는 격려와 칭찬이 오히려 독이 되고 야단과 질책이 약이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나는 그렇지 못하다. 사람이 심지가 무르고 대가 약해 누가 다그치거나 비판을 하면 금세 주눅이 들고 얼어버려 그나마 얼마 있지도 않은 능력도 제대로 발휘를 못하고 만다. 나는 칭찬에 약하다. 누가 빈말로라도 칭찬을 해주면 나도 모르게 꼬리뼈가 움찔움찔 흔들리는 것을 참을 수 없을 지경이다.



자라면서 나는 칭찬을 거의 받지 못했다. 그건 내 부모님이나 주위 사람들이 특별히 칭찬에 인색해서가 아니라 내가 칭찬 받을 만한 점을 하나도 갖고 있지 않는 특별한 아이였기 때문이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식으로 말하면 “겸손한 사람이군요” 하면서 칭찬을 들을까 해서 하는 수작이다.



나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아니었다. 정직하게 말한다면 공부를 못하는 학생이었다. 공부는 따분하고 지루하고 재미없었다. 나는 그저 장난치고 놀 궁리만 했다. 수업시간 내내 창 밖의 먼산을 보거나 그것도 지루하면 선생님 얼굴에 난 점을 하나 둘 세거나 선생님의 말버릇을 속으로 흉내 내곤 했다. 당연히 성적이 나빴다.



처음에는 수업시간 선생님 질문에 답을 못하거나 틀린 답을 하면 부끄러웠다. 친구들이 웃으면 창피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모든 것은 익숙해지고 당연해진다. 선생님의 눈빛도 친구들의 웃음도. 내면화되는 것이다. 나는 수업시간에 딴짓을 하는 게 자연스러웠다. 공부는 나와는 전혀 무관한 다른 세상의 일이었다. 낮은 점수도 부끄럽거나 창피하지 않았다. 나는 그런 학생이었다.



중학교 때 교생 실습 나온 국어 선생님으로부터 칭찬을 받은 적이 있다. 선생님은 첫날 출석부를 보고 학생 한 명 한 명의 이름을 불렀다. 대답하는 학생의 눈을 들여다보며 한 명씩 인사를 건넸다. 내 차례가 되어 선생님이 내 이름을 불렀다. “상득이는 국어를 잘할 것처럼 생겼구나.”



내 성적을 아는 친구 녀석들이 여기저기서 쿡쿡 웃었다. 부끄럽고 창피했다. 장차 훌륭한 교육자가 되기 위해 실습을 나온 교생이었으니 아마 누구에게나 한마디씩 좋은 말을 건넸으리라. 내게 해준 말도 딱 그 정도의 무게였을 텐데 나는 그만 선생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어버렸다. 국어를 열심히 예습했다. 수업시간에는 선생님 말씀을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고 집중했다. 굳이 노력하지 않아도 어쩐 일이지 저절로 몰두하게 되었다. 선생님 질문에 맞는 답을 할 때도 있었다. 그러면 친구들은 놀리느라 오오 하며 감탄하는 시늉을 했지만 선생님은 역시 내 예감이 맞지 않느냐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교생 선생님의 칭찬 덕분에 국어를 잘했다. 성적도 좋아졌다. 수업시간에 선생님이 내 칭찬을 해도 아무도 웃지 않을 정도로 말이다. 일단 국어 한 과목을 잘하게 되자 자신감이 생기고 금세 공부에 탄력이 붙어 다른 과목들도 일취월장하여 전교에서 1등을 했다고 하면 좋겠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대개 국어를 잘하면 다른 과목도 잘하게 된다던데 나는 그렇지 않았다. 국어만 잘했다. 오해 없기를 바란다. 여기서 잘한다는 것은 다른 과목에 비해 비교적 그렇다는 것이지 국어를 절대적으로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칭찬이 고래를 춤추게 하는지 어떤지는 모르겠지만 공부를 좋아하지 않던 중학생이 국어를 좋아하게 만들 수 있다고 나는 믿는다. 또 나는 믿는다. 칭찬에도 한가지 부작용이 있다고.



대부분의 사람이 그렇겠지만 중학생이 되기 전에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나는 내 몸보다 큰 파란 물뿌리개를 들고 교정의 화단에 물을 주고 있었다. 어째서 초등학교 1학년생에게 그런 일이 주어졌는지 지금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나중에 자라서 글을 쓰게 된다면 소재가 궁할 때 쓰라고 화단 당번을 정해준 것일까? 마침 학교를 방문한 장학사가 어린 나를 보고 대견해하며 칭찬해주었다. “넌 참 착한 아이구나. 꽃밭에 물을 주고. 네 이름이 뭐니?” 장학사는 내 눈을 들여다보며 머리를 쓰다듬었다. 꼬리뼈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와 흔들릴 것 같았다. 나는 칭찬이란 걸 처음으로 받았던 것이다. 튀어나온 꼬리뼈를 흔들며 나는 몇 번이나 물뿌리개를 가득 채워 화단에 물을 뿌렸다. 화단이 물바다가 되는 것도 모르고. 그렇게 물을 많이 주면 꽃들이 썩는 줄도 모르고.



칭찬 : 고래를 춤추게 하고 국어를 좋아하게 만들지만 꽃밭을 썩게도 만드는 것



김상득 결혼정보회사 듀오의 기획부에 근무하며, 일상의 소소한 웃음과 느낌이 있는 글을 쓰고 싶어한다. 『아내를 탐하다』『슈슈』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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