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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turday] 3개월 시한부 할머니 "집에 있으니 맘 편해 … 참 고마운 일"

중앙일보 2015.04.11 00:41 종합 12면 지면보기
‘559개의 병상에서 사람들이 죽어간다. 마치 공장과 같다. 이렇게 대량생산되다 보니 개인의 죽음 하나하나가 무신경하게 치러진다.’


가정 호스피스 진료 동행기
전담 의사·간호사가 24시간 대기
음악·미술치료, 아로마 마사지까지
말기암 80대 “잠 못 잔다” 하소연하자
꼼꼼히 체크한 뒤 다른 진통제 처방
사회복지사나 자원봉사자도 동행
진료 끝나면 기도·대화로 위로해줘

 오스트리아의 작가 라이너 마리아 릴케(1875∼1926)는 소설 『말테의 수기』에서 20세기 초 대도시의 세태를 꼬집었다. 100년이 지난 지금, 한국인의 마지막 순간은 릴케가 측은하게 여겼던 그 모습 그대로다. 24시간 환하게 불 켜진 병원 중환자실에서 목에 호흡을 위한 관이 꽂힌 채 인공호흡을 당하면서 링거로 영양제와 항생제를 맞으며 생을 마감한다.



 20년 전만 해도 중병을 앓는 환자도 살던 집에서 인생을 정리하다 가족에게 둘러싸여 편안하게 눈을 감는 경우가 많았다. 1995년 통계를 보면 가정 사망자(16만 명)가 병원 사망자(5만5000명)보다 훨씬 많았다. 의료 보급 확대로 병원 사망이 대세가 됐지만 여전히 집에서 마지막 순간을 보내고 싶어하는 환자도 많다. 이런 이들을 위한 가정 호스피스 제도가 있다. 아직은 말기 암 환자에게만 제한적으로 제공되는 의료 서비스다. 8~9일 서울 서초구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완화의료센터와 서울 금천구 전진상의원 두 곳의 가정 호스피스 진료에 동행해 그 현장을 지면에 옮겼다.



서울성모병원 김인경 간호사가 김모 할머니를 진찰 중이다. 유방암 말기인 할머니는 집에서 호스피스 진료를 받고 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0년 전엔 가정 사망이 병원 사망의 3배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아파트. 전진상의원 가정호스피스팀인 의사 박상미(33·가정의학과 전문의)씨, 간호사 강귀엽(48)씨, 사회복지사 최혜영(57)씨가 들어섰다. 불룩한 왕진가방이 세 개나 들렸다. 자궁암 말기 환자인 60대 이모씨가 이들을 반갑게 맞았다. “어머니, 잘 계셨어요? 얼굴에 혈색도 돌고 더 예뻐지셨네.” 강 간호사가 살갑게 묻자 이씨는 “지난주에 약 바꿔주신 뒤로 식욕이 조금 돌아와서 밥을 몇 술이라도 챙겨 먹어요”라고 대답했다.



 지난 2월부터 가정 호스피스 진료를 받고 있는 이씨는 종합병원에서 “3개월 정도 남았다”는 말을 들었다. 이씨는 병원에 가고 싶지 않았다. 40대 딸, 20대 외손자와 함께 사는데 뇌성마비로 몸이 불편한 손자가 눈에 밟혀서다. “요즘 어떠세요. 불편한 데 있으세요?” 의사의 물음에 이씨가 “괜찮아요”라며 얼버무리자 곁에 앉아 있던 외손자가 끼어들었다. “할머니가 며칠째 잠을 잘 못 자요. 새벽에 계속 토하고 ‘아이고, 아이고’하며 앓기도 했어요.” 의사 박씨는 거실에 깔린 요 위에 이씨를 눕히고 몸 이곳저곳을 살폈다. 복수가 차오르지는 않는지 배 둘레를 재고, 청진기로 꼼꼼히 진찰했다. 박씨는 “어머니, 몸이 이상하거나 진통제를 먹고도 아프면 밤이든 낮이든 전화하세요. 참으시면 안 돼요”라고 당부했다. 강 간호사는 혈압을 재고 들고 온 차트에 숫자를 적어 넣었다. 그 사이 사회복지사 최씨는 이씨의 외손자와 대화를 이어갔다. 건강 상태와 최근 일상까지 꼼꼼히 물었다. 환자뿐 아니라 가족의 정신·신체 건강까지 돌보는 걸 원칙으로 한다. “집에 있을 수 있어서 마음이 편해. 내가 병원에 가면 저거(외손자)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지. 정말 고마운 일이야.” 이씨가 힘겹게 웃으며 말했다.



 전진상의원팀은 금천구 중심의 주변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가정호스피스 진료를 하고 있다. 올해로 18년째다. 한 달 평균 5명을 돌본다. 차트와 수액, 주사약, 욕창 치료기구, 대·소변 못 보는 경우 빼주는 기구, 혈당·혈압 검사 기구 등을 가득 담은 가방들을 챙겨 경차를 타고 동네를 누빈다. 음악치료, 미술치료, 아로마오일 마사지 등도 한다. 의원 내엔 보통의 가정집처럼 꾸며진 입원형 호스피스 병상도 10개 운영하고 있다. 환자들은 가정 호스피스와 의원 내 호스피스를 오갈 수 있다. 24시간 호스피스 전담 의사와 간호사가 대기 중이다. 사회복지사 최씨는 “적어도 2~3개월 시간은 남아 있어야 인생에 대한 미련을 정리하고 가족 간에 맺힌 응어리도 풀 수 있는데 연명치료에 매달리다 너무 늦게 오는 분이 많다”고 말했다.



놀이공원 소풍, 바다 여행 … ‘소원 프로그램’도



 서울성모병원 가정호스피스팀과는 서울 용산구 후암동의 한 집을 방문했다. 이경식(71·종양내과) 명예교수가 왕진에 나섰고, 간호사 김인경(38)씨와 자원봉사자 2명이 동행했다. 80대 유방암 말기 환자인 김모씨는 가정호스피스 케어를 받은 지 4개월이 넘었다. 60대 아들이 이 교수를 보자마자 하소연했다. “어머니가 많이 어지러워하고 잠을 통 못 잡니다. 요 며칠은 거의 걷지 못해서 기어 다니십니다.” 이 교수는 환자를 눕히고 윗옷을 걷어 올려 상태를 확인했다. 오른쪽 가슴엔 검붉은 종양이 피부 위로 드러나 있었다. 몸에 욕창이 생기지 않았는지 살폈다. “여기 어때요? 아파요?” 이 교수가 묻자 김씨는 오른쪽 등을 짚으며 “꼭 담 걸린 것처럼 쑤시고 아프다”고 대답했다. 이 교수는 청진기로 가슴과 등을 짚고 눈에 불빛을 비춰 상태를 관찰하며 “진통제를 바꿔봐야겠네요”라고 말했다. 일주일에 두 번 간호사가 환자를 찾아 영양상태를 확인하고 영양제 링거를 놔준다. 호스피스 팀은 주1회 방문한다. 간호사 김씨는 혈압을 재고 채혈을 했다.



 “아드님, 병원에서 받은 약을 다 꺼내보세요.” 이 교수가 김씨가 먹는 10여 가지의 약을 살펴본 뒤 주의사항을 일러줬다. “어지러울 때는 이 빨간 캡슐 약은 드시지 마세요. 흰 알약은 식욕 돋우는 약이에요. 식욕이 좀 돌아왔죠?”



 의료진의 진료가 끝나자 자원봉사자들이 김씨 곁에 앉았다. “부처님 믿으시죠? 찬불가 불러드리려고 준비해 왔어요.” 그러자 김씨가 “지금은 아무것도 안 믿어요. 그저 기도나 한번 해주세요” 하고 청했다. 이 교수까지 네 사람이 김씨 손을 잡고 동그랗게 앉아 가톨릭 기도문을 외우기 시작했다. “이제와 저희 죽을 때에 저희 죄인을 위하여 빌어주소서.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마무리는 성가였다. “평화, 평화를 주옵소서. 그 영원한 참 평화를 우리에게 주옵소서.” 김씨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서울성모병원은 1987년 호스피스완화의료센터를 만들었다. 입원형 호스피스 병상은 23개 운영한다. 가정호스피스는 2009년 시작했다. 서울 전 지역이 대상이고, 한 달 평균 30명의 환자를 돌본다. 환자의 마지막 소원을 가능한 한 이뤄주는 ‘소원 프로그램’이 특색이다. 앰뷸런스를 동원해 의료진과 함께 서울대공원에 소풍을 가기도 하고 동해로 바다를 보러 가기도 한다. 결혼식과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이경식 교수는 “임종 전에 마지막을 집에서 편안하게 보내며 가족·친구 등과 맺힌 것을 풀고 삶을 정리하는 게 일반 병원에 입원해서는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나라도 영국처럼 가정호스피스가 활성화되면 가정 임종이 늘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글=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 BOX] 가정 호스피스 진료비 1회 5만원 … 7월부터 건보 시범적용



호스피스는 현대 의학으로 가능한 치료를 모두 시행해도 회복 가능성이 없는 말기 환자가 편안하게 생을 마치도록 돕는 의학적·정서적·종교적인 보살핌이다.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호스피스 완화의료 전문기관은 전국 56곳, 병상 수는 939개다. 호스피스 전담 의사·간호사뿐 아니라 사회복지사·성직자·약사·자원봉사자 등이 한 팀을 이뤄 환자를 돌본다. 환자에겐 최대한 통증을 덜어줄 수 있도록 적절한 진통제를 처방하고, 성직자와의 만남을 통해 정서적인 격려를 한다.



 호스피스의 대상은 여생이 수개월(보통 3개월)로 진단되는 환자다. 해외에선 루게릭병·크론병 등 모든 종류의 난치병 환자를 돌보지만 국내에선 말기 암 환자로 대상을 제한하고 있다.



 대상을 모든 말기 환자로 확대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새누리당 김세연 의원은 이달 중에 ‘호스피스 완화의료에 관한 법률안’을 낼 계획이다. 이 법안은 호스피스 선진국인 영국처럼 권역별 호스피스센터를 두고, 이용을 원할 경우엔 사전의료계획서에 인공호흡기·심폐소생술 등 연명 의료를 이용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명시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오는 7월부터는 말기 암 환자가 호스피스 병동을 이용할 때 건강보험 혜택을 받게 된다. 가정 호스피스도 건강보험이 시범 적용된다. 현재 가정 호스피스는 서울성모병원과 전진상의원 등 일부는 무료(약·주사제 등은 제외)로 진료를 제공하고 있고, 나머지는 1회에 진료비로 5만원 정도를 받는다. 호스피스 병동 이용은 건보 시범 적용 기관에서는 5인실 기준으로 1일에 1만5000원을, 나머지는 5만원가량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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