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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으로] 2차 대전의 한 풍경, 심심해서 산으로 탈출한 포로들

중앙일보 2015.04.11 00:14 종합 19면 지면보기
미친포로원정대

펠리체 베누치 지음

윤석영 옮김, 박하

424쪽, 1만2500원




어느 날 갑자기 수용소에 갇혔다. 포로가 1만 명인데 할 일이 없다. 고양이가 쥐를 가지고 노는 장면을 300명이 몰려들어 구경한다. 무료하다. 포로생활의 끝은 기약할 수 없다. 그래서 저자는 수용소를 탈출해서 5200m 높이의 케냐산을 등정하고 다시 돌아오기로 한다.



 미친 소리 같지만 실화다. 이탈리아인인 저자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에티오피아에 있는 이탈리아 식민지청 공무원으로 근무하다 포로가 됐다. 갇힌 곳은 케냐 나이로비 전쟁 포로수용소. 끝도 없이 무료한 나날을 보내다 보니 어디선가 들려오는 망치소리조차 부럽다. “스스로 할 일을 찾아나섰고, 끝내고자 하는 일이 있었기에 그 사람에게는 미래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목표를 세웠으니 마침표를 찍기 위해 행동해야 한다. 열악한 수용소에서 수제로 등산장비를 제작한다. 1월에 얼음산을 올라야 하니 아이젠은 필수다. 뒷동산 가는데도 고어텍스 차림으로 가는 요즘과 비교하면 눈물겹다. 함께할 동료도 찾아 나섰다. 조건은 하나. 탈출해서 산을 오르고 다시 돌아오는 데 동의하는 ‘나 같은 미친놈들’이어야 한다. 저자, 의사, 의사의 친한 친구로 꾸려진 원정팀이 꾸려진다.



 이후 보름이 넘는 이들의 모험기가 펼쳐진다. 수용소를 벗어나 사람을 피해 다니다, 본격적으로 산에 오르니 동물의 왕국이 펼쳐진다. 표범·코뿔소·코끼리 앞에서 이들은 미약한 인간에 불과하다. 식량도 부족하다. 비스킷 한 조각을 쪼개 나눈 뒤 30분간 긁어먹으면 천국의 맛을 느끼게 된다. 결국 최고봉인 바티안 등정에는 실패하지만, 레나나 봉우리에 올라 깃발을 꽂는다. 이후 돌아가기 위해 서두른다. 쌍안경으로 본 수용소는 더 이상 지긋지긋한 곳이 아니라, 음식을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식당이었다. 이들은 태연히 돌아왔고, 수용소장은 이들의 스포츠정신을 기려 7일간 감방형을 살게 했다.



 저자는 1946년께 본국으로 귀환하자마자 책을 썼다. 47년에 출판된 이 책은 전 세계에서 반세기 넘게 산악 논픽션 고전으로 사랑받고 있다. 저자는 이후 외교관이 되어 세계를 누비며 많은 산을 오른다. 그는 일생동안 도전하고 극복하며 증명해냈다. 미친 도전이 아니라 미친 성장을 했음을.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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