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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향기] 우리가 모두 효율적으로 죽게 돼 있다면

중앙일보 2015.04.11 00:05 종합 24면 지면보기
김연수
소설가
미국 UC버클리에서 작가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던 시절, 귀가하는 길이면 종종 교문 근처의 유칼립투스 숲에 들러 시간을 보내곤 했다. 1882년 운동장 트랙에 뿌린 재를 보호하기 위한 방풍림으로 조성된 작은 숲인데 지금은 세계에서 가장 키가 큰 유칼립투스 숲이 됐다. 우듬지가 어찌나 높던지 올려다보자면 고개가 한참 뒤로 젖혀졌다. 어떤 날에는 그 나무로 아이들이 찾아와 두 팔을 뻗어 둥치를 감싸기도 했다. 한 아이의 아름만으로는 부족했다.



 그 학교는 한때 학생운동이 격렬하던 곳이었다. 도서관에 딸린 카페의 이름이 ‘자유언론운동 카페’일 정도다. 하지만 그때의 일들은 이름으로만 남았을 뿐이다. 커피 한 잔을 두고 마주앉은 학생들의 고민은 우리네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비싼 학비에다 치열한 경쟁, 해결되지 않는 이성 문제…. 시대는 변했고, 학생들도 변했다. 그럼에도 학생들은 늘 고민 중이다. 그런 그들을 바라보며 유칼립투스들은 거기 그대로 서 있다. 고민하며 걷다 보면 학생들은 그 숲을 만날지도 모른다. 그때 숲은 젊은 학생들에게 무슨 말을 할까?



 숲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는 것만으로 갓 스무 해 정도를 산 학생들을 가르친다. 어떤 방풍림도 청년의 머리로 떨어지는 세월의 하얀 재를 막을 수는 없다는 것. 20대 청년은 아니지만, 나 역시 그 숲에서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 숲을 조성한 사람들은 이제 이 세상에 없다는 것. 그들이 사랑한 가족도, 증오한 적들도 마찬가지라는 것. 1882년에도 수많은 일이 일어났고, 서로가 서로를 미워하거나 한 사람만을 생각하며 살았을 테지만, 온 세상을 뒤진다고 해도 그 시절의 사람을 단 한 명도 찾을 수 없으리라는 것.



 100년 만이면 모두 세상에서 사라지니 인간은 거기서 거기다. 그들의 고민도 마찬가지. 우리의 고민은 대개 어떻게 먹고살 것인가의 범부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질문을 품고 유칼립투스 숲으로 가면 어떤 대답을 들을 수 있을까? 그러니까 앞으로 100년이면 모두 죽을 인간이라는 사실을 직시하고 이 물음을 대한다면? 숲에서 듣는 대답이란, 먹고사는 것에만 취중한 끝에 우리가 모두 죽음에 이른다면, 그건 완벽한 실패이며, 그때 그 완벽한 실패는 처음부터 예정됐다는 것.



 젊은 날, 이런 숲을 마주할 수 있는 학생들은 얼마나 행운일까. 그래서일까? UC버클리에서 나는 흔치 않은 사람들을 여럿 만났다. 취직을 거부하며 적게 벌면서 더 많은 시간을 갖는 사람도 있었고, 박사 과정까지 마친 뒤에 시인이 되기 위해 목수로 살아가는 사람도 있었다. 각자의 삶은 고민에 대한 저마다의 답안 같은 것이다. 반면에 한국에서 연수 온 국책은행의 직원도 있었다. 그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만약 어떤 마을에서 다리를 놓아달라고 매년 한 명씩 자살한다고 해도 건설 비용보다 자살자 처리 비용이 싸면 그대로 두는 게 경제적이라는 것이었다. 그 역시 하나의 답안이다.



 잊고 지냈는데, 이번에 『진격의 대학교』란 책에 이와 유사한 주제를 두고 대학생들이 총장배 토론 배틀을 벌이는 이야기가 나왔다. 심사위원인 저자에 따르면, 예선전 10라운드에서 승리한 쪽은 경제 논리를 택한 학생들이라고 한다. 강점, 약점, 기회, 위협의 약자를 뜻하는 스와트 분석으로 똘똘 뭉친 학생들을 논리적으로 극복하긴 어려운 모양이다. 나 역시 그 사람의 논리에 제대로 반박하지 못했다. 대신에 나는 거기 유칼립투스 나무들을 생각했다. 그리고 독일 영화감독 베르너 헤어조크를 생각했다.



 그는 영화평론가인 로테 아이스너가 파리에서 죽어간다는 소식을 듣고는 “우리가 로테를 죽게 내버려두어서는 안 된다”고 말하며 21일에 걸쳐 뮌헨에서 파리까지 걸어갔다. 걷는 일이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있을까? 그렇다. 바로 그 사람을 살리지는 못하겠지만, 우리의 이웃은 살릴 수 있다. 이 비경제적이고 비효율적인 행위는 적어도 사람을 죽이지는 않으니까. 그리고 그 사람은, 만약 내가 경제적이고 효율적으로 행동했다면 죽었을 수도 있는 사람이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그런 이유로 걷고 있다. 유칼립투스 나무들이 거기 그렇게 서 있는 것처럼.



김연수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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