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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세 춤꾼 홍신자 "파격은 없었다, 앞서 가려 했을 뿐"

중앙일보 2015.04.10 00:32 종합 25면 지면보기
9일 서울 원서동의 옛 공간사옥 지하 ‘공간소극장’ 무대에 선 전위무용가 홍신자. 1980년대 작품 ‘비’를 연습하며 자유를 갈망하는 몸짓을 보여준다. ‘자유’는 그가 추구하는 삶의 스타일이다. [김성룡 기자]


작품 ‘벽’의 한 장면. 맨발의 홍신자가 자신이 20여 년 동안 신었던 낡은 신발을 끌고 걸어간다. 신발은 스스로를 가두는 ‘벽’의 상징물이다. [김성룡 기자]
“소극장 무대에 서니 뉴욕에서 활동했던 1970년대가 떠올라 가슴이 설렙니다. 데뷔작인 ‘제례’도 73년 봄 뉴욕의 소극장에서 초연을 했지요.”

오늘 공간소극장서 ‘거울’ 공연
1973년 ‘제례’ 국내 초연 때 발칵
“진정한 전위무용 상륙” 호평했던
101세 박용구 선생을 위한 무대
죽을 때까지 창작 멈추지 않을 것



 일흔다섯 살 무용수의 눈에 들뜬 기운이 서렸다. 1세대 전위무용가 홍신자. 그는 10일 서울 원서동 옛 공간사옥 ‘아라리오 뮤지엄 인 스페이스’ 지하 1층에 있는 ‘공간소극장’에서 ‘거울(The Mirror)’ 공연을 한다. 77∼92년 운영됐던 소극장 ‘공간사랑’을 복원, 지난달 문을 연 곳이다. 9일 공간소극장에서 최종 리허설을 하고 있는 그를 만났다. ‘공간사랑’이 문을 열었던 시기에 주로 미국에 머물렀던 그는 이번에 처음으로 이곳 무대에 오른다. ‘거울’은 그의 기존 소품 4편을 모아 만들었다. 표제작 ‘거울’과 ‘웃음’은 70년대 작품이다. 여기에 80년대 작품 ‘비’와 2000년대 작품 ‘벽’을 엮었다.



 “‘거울’은 거울에 비친 모습 너머에 있는 내면을 바라보면서 ‘나는 누구인가’를 스스로 묻는 작품입니다. ‘비’는 비와 함께 노는 장면을 통해 우리도 자연이란 걸 알려주죠. ‘벽’은 스스로 만든 한계 속에서 고뇌하는 우리 모습을 보여줍니다. 피날레는 ‘웃음’이에요. 기뻐도 웃고, 슬퍼도 웃고, 가소로워도 웃고…. 작품이 말하는 웃음이 어떤 웃음인지는 제가 마지막 장면에서 힌트를 줄 거예요. 그걸 어떻게 받아들이냐는 관객들 몫이지요.”



 그의 작품 설명은 진지했다. 그는 “기왕 하는 공연, 좀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 공연을 원로 평론가 박용구(101) 선생에게 바치는 헌정 무대로 꾸린다. 박 선생은 여전히 현역으로 활동하는 음악·무용 평론가이자, 우리나라 최초의 중등 음악 교과서 집필자이며, 88서울올림픽 개·폐막식 시나리오를 쓴 작가다.



 “우리 문화계의 역사적인 거장이시죠. 누구와도 타협하지 않고 꼿꼿한 개척자로 사셨어요. 100세가 넘으셨지만 아직도 ‘꿈꾸는 청년’입니다. 지금도 만나면 50년 후를 이야기하셔요. 무한한 상상력에 감동할 수밖에 없지요.”



홍신자의 대표작 ‘섬’(1986). [사진 웃는돌 무용단]
 개인적인 인연도 깊다. 73년 가을 그의 데뷔작 ‘제례’를 명동예술극장에서 국내 초연했을 때, 국내 무용계에선 ‘무용이 어떻게 이럴 수 있냐’며 부정적으로 평가하는 여론이 들끓었다. 무용이란 예뻐야 하고 고도의 기술을 구사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팽배했던 시절이었다. 그때 박용구 선생이 나섰다. 신문과 잡지의 비평을 통해 “진정한 전위 무용이 한국에 상륙했다”고 평가했다. 선생의 권위 덕에 그의 무용에 대한 인식도 점차 호의적으로 바뀌었다.



 ‘전위’는 그때부터 그에게 줄곧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그에게 ‘전위’의 의미를 물었다.



 “‘전위’는 프랑스어 ‘아방가르드(avant-garde)’를 번역한 말입니다. ‘누구보다도 앞서 간다’ ‘다른 사람이 아직 못 해본 것을 시도한다’는 의미지요. 그런데 한국에선 뉘앙스가 좀 달라요. ‘전위’라고 하면 뭔가를 깬다는 의미로 쓰이고, 좀 과격하게 받아들이는 경향이 있죠. 전 한 번도 파격을 시도해본 적이 없어요. 다만 앞서 가려 했을 뿐입니다.”



 그는 자신의 무용 장르를 ‘댄스·시어터·메디테이션’으로 정의했다. 춤(댄스)과 극(시어터), 그리고 명상(메디테이션)의 결합이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명상의 요소가 많아진다”며 “죽을 때까지 창작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가장 최근에 발표한 신작은 지난해 12월 인도에서 초연한 ‘리베르타스(Libertas)’다.



 이번 작품의 길이는 50분 분량이다. 그의 나이를 생각하면 벅찰 법도 한 시간이다. 하지만 그는 자신만만했다. “몸을 컨트롤하는 내 나름의 에너지를 갖고 있어 괜찮다”고 했다. 그는 무용가로 데뷔한 이후 40여 년 동안 규칙적인 생활을 지키고 있다. ‘기구(instrument)’인 몸을 잘 관리하기 위해서다. 오전 6시 일어나 호흡과 스트레칭을 한 뒤 30∼40분 동안 집 주변을 산책한다. 오후 6시 이후에는 아무 것도 먹지 않고 밤 10∼11시에 잠자리에 드는 게 그의 일과다. 식사는 채소 위주로 간단히 먹는다.



 “전 어떤 종류의 폭력도 싫어합니다. 야식과 폭식은 몸에 대한 폭력이에요. 항상 몸이 좋아하는 걸 하고, 몸을 친절하게 대하려고 합니다. 몸이 좋아지면 자연히 의식도 깨어납니다. 감성이 발달해 더 많이 보고 느낄 수 있어요. 삶을 더 행복하고 평화롭게 만드는 길이지요.”



글=이지영 기자 jylee@joongang.co.kr

사진=김성룡 기자



◆홍신자=1940년생 . 63년 숙명여대 영문과를 졸업한 뒤 66년 도미, 73년 뉴욕댄스시어터 워크숍에서 ‘제례’ 안무가 및 무용수로 데뷔했다. 76∼79년엔 인도에 체류하며 철학자 오쇼 라즈니쉬(1931∼90)의 영향을 받았다. 82년 미국 유니온 인스티튜트에서 무용학 박사학위를 받았고, 93년 영구 귀국했다. 김수근문화상 공연예술상(96년), 우경문화예술상(97년) 등 수상. 남편은 한국학의 권위자인 독일 학자 베르너 사세(74)다. 2010년 결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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