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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경제 역설한 문재인, 합의 정치 희망 보인다

중앙일보 2015.04.10 00:14 종합 34면 지면보기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9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발언의 80%를 경제에 할애한 것은 환영할 일이다. ‘경제’란 단어를 100번, ‘소득’을 56번, ‘성장’을 43번이나 거론했다. 문 대표는 “성장 없는 풍요와 경제정의를 생각할 수 없다”며 “성장에서도 유능한 진보가 되는 게 새정치연합의 목표”라고 말했다. 전날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가 한 교섭단체 대표연설을 “의미 있게 들었다”며 칭찬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합의 정치의 희망이 보인다.



 제1 야당 대표가 경제와 민생에 관심을 표명한 것은 대단히 바람직하다. 우리 야당은 지금까지 민생보다 이념을, 성장보다 분배를 앞세워왔다. 경제 전략을 물으면 “우리도 잘할 수 있다”는 말만 반복할 뿐 각론에 들어가면 맹탕이었다. 국민이 새정치연합의 수권 능력에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그런 점에서 문 대표의 연설은 의미가 상당하다. 유 원내대표는 그제 연설에서 근혜노믹스를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약자를 배려하는 경제로의 일대 개혁을 요구했다. 거꾸로 문 대표는 성장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신경제로의 대전환을 주장했다. 당파를 초월해 경계를 허물고 상대방 입장에 접근한 여야의 이런 움직임이 경제위기를 푸는 열쇠가 돼 민생에 희망을 주기를 기대한다.



 문 대표의 연설만으로 새정치연합이 환골탈태했다고 확신하긴 어렵다. 연설 내용 중에는 대기업을 악, 중소기업과 영세업자를 선으로 보는 이분법적 시각이나 구체성이 결여된 성장전략 등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대목도 많다. 새정치연합이 2007년 이래 총선과 대선에서 연패할 때마다 당 안팎에선 “경제·민생 정당 아니면 희망이 없다”는 주장들이 쏟아졌다. 지도부가 바뀔 때마다 이런 요구를 받아들여 개혁을 선언했지만 실천으로 옮기는 데 실패했다. 번번이 당내 강경파의 반대에 막혔기 때문이다. 특히 야당 안에서 강경론을 이끌어온 핵심이 문 대표의 직계인 친노 세력이다.



 이런 문 대표가 안보·경제정당을 역설하고 교섭단체 연설에서도 경제에 올인한 건 강경파의 반발을 무릅쓰고 중도노선을 걷는 것 외엔 집권의 길이 없다고 보고 결단을 내렸기 때문일 것이다. 이제 문 대표는 그런 의지를 실천으로 입증할 일만 남았다. 무엇보다 하루 80억원씩 국민의 혈세를 삼키는 공무원연금 개혁안을 처리하는 용단을 내려야 한다. 또 의료보험 개혁과 복지 조정, 성장산업 육성 등 경제 현안을 놓고 매일같이 여당과 마주앉아 해법을 끌어내야 한다. 내년 4월 총선까지 1년 동안 문 대표가 이번 연설에서 약속한 내용을 어떻게 이행할지가 새정치연합의 수권 능력을 입증할 가늠자가 될 것이다.



 문 대표는 연설에서 김대중 전 대통령을 다섯 번이나 언급했다. 김 전 대통령은 집권 중 반발을 감수하면서 일본 문화를 개방하고 박정희 기념관 건립을 주도했다. 나라의 지도자는 국익을 위해서라면 자신의 정체성과 지지기반마저 부정하는 행동도 얼마든지 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문 대표가 진심으로 김 전 대통령의 정신을 계승하겠다면 이 점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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