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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획기적인 공천제도를 제안함

중앙일보 2015.04.08 00:05 종합 31면 지면보기
김 진
논설위원
올해는 해방 70주년이다. 그동안 이 나라는 각 분야에서 봉건의 구각(舊殼)을 깨고 현대 문명의 혁신을 이뤄냈다. 그런데 여전히 후진의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게 있다. 정당의 공천이다.



 부실·파행 공천에는 여야 구분이 없다. 이석기 의원은 통진당 해산으로 의원직을 잃었다. 그런데 그 전에 새누리당 의원들은 그를 국회에서 제명하려고 했다. 통진당의 비례대표 공천이 총체적인 부정이라는 이유였다. 그런 새누리당은 2008년 공천에서 이명박 세력이 박근혜 그룹을 학살했다. 이후 박근혜는 대통령을 돕지 않았고 결국 국정에 많은 피해가 발생했다. 그렇다면 이 폐해는 통진당 공천 파동보다 작은 것인가. 이석기가 제명돼야 한다면 학살 공천으로 덕을 본 새누리당 의원들도 모두 제명돼야 하지 않는가.



 춤추는 공천은 이뿐이 아니다. 최근 정당들은 여론조사라는 편법을 쓰기 시작했다. 여론조사는 원래 참고용이어야 하는데 많은 경우 아예 결정의 칼날이 돼버렸다. 4·29 재·보선 관악을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은 여론조사를 50% 활용했다. 여론조사기관 2곳을 이용했는데 차이가 15%포인트나 됐다. 아니 좁은 지역구에서 조사 결과가 어떻게 이렇게 다를 수 있는가. 그러니 친노계 정태호 후보에게 패배한 동교동계 김희철 후보가 승복하지 않는 것이다. 여론조사는 전화 응답자가 후보에 관한 정보를 제대로 갖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차라는 함정도 있다. 그런데도 정당들은 이런 코미디 같은 방법을 버젓이 쓴다.



 선진국에서는 대개 의원이나 지방자치제 후보는 당원 경선으로 선출한다. 당원이 후보를 고르고 유권자가 최종 선택하는 것이다. 그래야 정당이 정체성과 존재 가치를 지킬 수 있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이런 경선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 당원 제도가 미숙하기 때문이다. 지역구에서 당원이 1만 명이라고 해도 당비를 내는 책임당원은 수백 명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여야는 최근 완전 국민경선제(open primary)를 논의하고 있다. 이는 일반 국민이 투표로 정당 공천자를 뽑는 것이다. 그런데 이 제도도 문제가 많다. 원래 이는 일부 국가에서 대통령 후보 경선 등에 한해 제한적으로 실시하는 것이다. 의원이나 시장·군수 후보까지 국민이 고르면 정당은 무슨 필요가 있나. 국민경선제는 현실적인 제약도 크다. 만약 투표율이 10%라면 선거구별로 평균 1만7000명 정도가 참여한다. 유권자는 여야 중 한 곳을 선택하니 정당으로 보면 8500명 정도가 투표한다. 이 정도 규모라면 현역이 유리하다. 웬만한 정치 신인은 지명도와 지역 기반에서 경쟁 상대가 되지 못한다. 결국 정치권에 ‘개혁의 새 피’를 수혈하는 게 어려워진다.



 결론적으로 여론조사나 국민경선은 좋은 대안이 아니다. 그래서 내가 제안하는 개선책이 ‘배심원단 공천’ 제도다. 전국을 서울·경기·영남·호남·중부(충청·강원·제주) 등 5곳으로 나누고 지역마다 30명 정도의 배심원단을 구성한다. 정당은 정체성이 중요하므로 배심원은 그 당의 이념에 동의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정당이 전국 당원 중에서 무작위로 고르거나 일반인 중에서 공모하면 된다. 출신 지역을 마구 섞어도 좋다. 호남 출신 배심원이 영남에 가서 심사할 수도 있다.



 공정성을 위해 배심원단은 수능 출제위원처럼 관리된다. 일정 기간 합숙하며 휴대전화를 비롯한 외부 접촉은 완전히 차단된다. 물론 활동비는 충분히 지급된다. 정당은 공천 신청자 중에서 일정 자격을 갖춘 이들을 골라 지역별로 배심원단에게 보낸다. 배심원단은 작문·면접·연설 같은 시험을 실시한다. 신청자는 인생을 어떻게 살아왔고, 왜 국회의원이 되려고 하며, 의원이 되면 무슨 일을 하려는지 답해야 한다. 북한·통일·복지·노동·교육 같은 문제를 물어보면 정체성 부분도 검증이 될 것이다. 배심원은 각자 점수를 매기고 종합 점수로 지역구 후보를 정한다.



 어떤 이들은 “공천에선 당선 가능성이 제일 중요한데 이것이 제대로 걸러지겠는가”라고 따질 것이다. 하지만 이는 배심원에게 맡겨야 한다. 그들의 상식과 판단력을 믿어야 한다. 아니 배심원이 재판도 하는데 공천 심사는 왜 못하나. 배심원단 공천에는 권력자가 끼어들 수 없다. 오직 실력과 인격만이 기준이다. 신인은 희망을 갖고 도전할 수 있다. 현역은 현역대로 의정활동 경험 같은 경쟁력이 있다.



 나는 그동안 이 아이디어를 정치권의 다수 인사에게 타진했다. 단점을 지적하는 건 별로 듣지 못했다. 공천권을 포기할 수 없다는 권력자나 배심원단 앞에 서기가 두려운 사람이라면 이 제도를 반대할 것이다. 하지만 세상의 건전한 판단을 믿고 정면돌파를 하려는 개혁가들은 이를 찬성할 것이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김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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