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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병언·전두환법 … 표 얻으려 몰아갔다

중앙일보 2015.04.07 01:54 종합 1면 지면보기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침몰사고가 발생했다. 선주인 유병언씨에 대한 비난 여론이 들끓자 국회는 가칭 ‘유병언법’(범죄수익 은닉 규제 및 처벌법) 제정에 나섰다. 대형참사를 유발한 사람이 유죄 판결을 받으면 일가·측근에까지 범죄수익을 추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이다. 새누리당 김재원 의원이 지난해 5월 28일 발의했다. 하지만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소위에서 제동이 걸렸다. 제3자의 재산권을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난해 10월 21일 당시 이완구(새누리당)·박영선(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가 세월호 정국을 마무리하기 위해 법안 처리에 합의했다. 문제는 이 합의 뒤 도피 중이던 유씨가 사망한 것으로 확인됐다는 점이다. 유죄 판결문을 구하는 건 불가능해졌다. 법안은 ‘무늬만 유병언법’이 됐다. 그런데도 정서에 떠밀려 법안은 11월 7일 법사위와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심층진단 대한민국 국회의원 ② 무책임한 국민정서법
의원들, 위헌소지 알면서도
시류에 편승해 법 통과시켜
김강자법 등 위헌 심판대로

 이상민 국회 법사위원장은 6일 “아무 실효성이 없는 법안인 걸 알면서도 처리했는데 사실 국민정서를 감안한 눈속임이었다”고 실토했다.



 2013년 만들어진 가칭 ‘전두환법’(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도 마찬가지다. 전 전 대통령의 불법재산임을 알고 취득한 사람이면 ‘제3자’라도 추징을 허용하는 내용이다. 2013년 6월 25일 국회 법사위 법안소위. 법무부가 배포한 문건에 ‘전두환’이란 단어가 들어갔다.



 ▶새정치연합 박범계 의원=“잠깐만. 문건 전부 회수해요. 지금 실명(전두환)을 써놨는데 통과돼도 특정인을 겨냥한 위인설법(爲人設法)이라 다 위헌 나요.”



 ▶법무부 국민수 차관=“예, 회수하겠습니다.”



 ▶새누리당 권성동 의원=“위인설법 맞지, 뭐”



  의원들 스스로 위헌 소지가 있다고 했던 ‘전두환법’ 역시 이틀 뒤 일사천리로 국회를 통과했다. 1년6개월 뒤 드디어 탈이 났다.



올 1월 서울고법은 ‘전두환법’에 대해 “국민 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다”며 헌법재판소에 위헌심판을 제청했다. 대한변협은 입법평가서에 이 법을 “두 얼굴의 야누스법”이라고 규정했다. ‘국민정서법’이면서 ‘위헌 소지가 있는 법’이란 의미였다.



 이처럼 대한민국 국회는 유난히 국민정서에 약하다. 토론과 이성보다 감정과 표만 추구하는 정치 행태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대형 사건·사고가 나면 국회는 걸러지지 않은 여론을 반영해 국민정서법을 만든다. 이런 국민정서법에 여론은 전두환법·유병언법·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수수금지법)·최진실법(민법 개정안)·김강자법(성매매특별법) 등의 사람 이름을 붙인다.



 이런 법들은 위헌 소지가 있어도 국회가 입법을 밀어붙인다. 국민정서법을 헌법보다 우선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란 지적이 나온다. 결국 전두환법·김영란법·김강자법은 위헌심판대에 올라 있다. 한국외국어대 이정희(정치학) 교수는 “여론에 편승하는 당론정치, 전문적 심사와 토론이 생략된 입법 문화가 뒤엉킨 총합이 국민정서법”이라며 “의원들이 정서를 앞세워 위헌 소지가 있는 입법을 강행하는 건 직무유기”라고 말했다.



◆특별취재팀=강민석 부장, 강태화·현일훈·이지상·김경희·안효성 기자 ms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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