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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나면 손 꼭 붙잡아줄게"…세월호 준영 아버지의 소망

중앙일보 2015.04.06 22:07
지난 5일 오후 6시30분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 낮 동안 오락가락한 비에 바닥은 젖고 기온은 싸늘했다. 광장은 '세월호 인양', '시행령 폐기' 가 적힌 노란 플래카드를 든 사람들로 가득했고 촛불을 든 이도 간간이 보였다. 세종대왕 동상이 있는 쪽에서는 누군가 마이크를 들고 구호를 외쳤다. 어른 키만한 스피커에서는 “진실을 제대로 규명하라”는 소리가 크게 울려 퍼졌다.

세월호 유가족들이 세월호특별법 시행령안 폐기와 세월호 인양 결정을 촉구하는 1박2일 간의 도보행진을 마치고 이곳에 모여 연 문화제가 끝나가고 있었다.



쩌렁한 소리가 울리는 스피커 뒤 한켠에는 삭발머리를 한 중장년 너덧 명이 옹기종기 모여 서 있었다. 반투명한 흰색 비닐 우비 차림의 이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이었다.

 

전날 경기 안산 화랑유원지 정부합동분향소에서 출발해 31시간 동안 걷고 다시 두 시간여의 문화제를 치른 후였다. 얼굴은 피로가 역력했고 두

셋 씩 모여 이야기를 주고받는 목소리는 나지막했다.



영정사진을 양팔에 끌어안고 혼자 서 있는 한 중키의 중년 남성에게 우비 차림의 다른 남성이 이렇게 말하고는 자리를 떴다. “허리 관리 잘 하시고요, 디스크 조심하셔야죠.”



액자 안에는 안경을 쓴 젖살이 통통한 소년의 모습이 있다. 세월호 희생자인 단원고 2학년 5반 고 오준영(당시 17세) 군의 얼굴이다. 영정을 들고 있는 삭발머리, 까무잡잡한 얼굴의 남성은 오군의 아버지 오홍진(54)씨다.





다가가 인터뷰를 청하자 그는 담담히 응했다. “아직 바다에 있는 아이들, 인양해야죠.” 그는 목소리를 높이거나 분노를 표출하지 않았다. 차분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돈 있어도 애들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돈 보다 애를 데리고 와야 하지 않겠어요?”



세월호 유가족들은 세월호특별법 시행령 폐기를 주장한다. 오씨는 시행령에 반대하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정부 부처들이 조사 대상이잖아요. 그런데 파견하는 조사인원 중에 그 부처의 중요 보직자들이 많아요. 어떻게 진상 규명이 되겠어요? 조사위원회랍시고, 사무실 하나 만들어서 화초에 물 줘가며 조사하겠다는 거죠.”



“그저, 왜 살지 못했는지, 살 수도 있었는데 왜 애들을 구조하지 않았는지, 이유는 알자는 것인데….”라며 말을 흐리던 그는 집회에 참여한 이들을 바라보며 엷은 미소를 띠었다. “그래도, 오늘도 보면 국민들께서 동참을 해주시고, 나와 같이 아이들의 죽음을 함께 아파해주셔서 참 감사해요. 참 살기 힘든 세상이지만… 그래도 아직.”



그는 팽목항에서 지내는 동안 잠을 제대로 못 자고, 상경해서는 국회에서 한두 달 동안 차가운 바닥에서 잤더니 허리 디스크가 생겼다고 했다. 그는 “수술해서 나사못을 박은 지 한 달 됐다”면서도 “이런 건 힘들지 않다”고 했다.



“부모는 아이들이 간 마지막 길처럼은 힘들지 않아요. 우리는 아프면 치유 받을 수 있지만, 아이들은 치유될 수가 없어요. 돌아올 수도 없고요.”



그의 이번 집회에 혼자 참석했다. 아내는 기숙사학교에서 지내다 주말에 집에 오는 둘째 딸을 돌봐야 해 안산에 있다고 한다.



“부모가 돼서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어요? 아이들의 억울함을 풀어주기 위해 진실을 알리고, 이후에도 이런 참사가 없게끔 하고 싶어요.”



아들을 잃은 아버지의 표정은 끝까지 차분했다. 그는 잠시 말을 멈춘 뒤 이렇게 말했다. “사후세계가 어떨지는 몰라도, 만나게 되면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고 싶어요.”



김하온 기자 kim.ha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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