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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텔링] 봄이는 내 친딸인데 … 법으로 아빠 인정받는 데 15개월

중앙일보 2015.04.06 00:38 종합 14면 지면보기
이곳에 오기까지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 했는지 너는 알까. 너는 겨우 만 두 살도 되지 않은 아기일뿐인데…. 네가 알 수 있을까. 아빠가 너의 아빠로 인정받기 위해 견뎌야 했던 고통의 시간들을.


생후 열흘 만에 떠난 동거녀
출생신고 하러 간 구청에선
“낳은 엄마가 와야 접수 가능”
주민등록 없어 병원비도 눈덩이
택배기사 하며 법원에 청구
DNA로 친자 증명 … 법 고쳤으면
등본에 딸 이름 오른 날 ‘눈물’

 예쁜 딸 봄이(가명)야…. 이곳 서울 노량진의 허름한 고시원 방이 너와 나의 안식처야. 6.61㎡(약 2평)가 채 되지 않는 월세 20만원짜리 방. 이 누추한 곳에서 너를 먹이고 재우며 하루하루를 살아내고 있지. 좀 불편하긴 해도 아빠는 요즘 더없이 행복하단다. 봄이가 내 딸이라는 출생신고를 드디어 할 수 있게 됐으니까.



지난 3일 저녁 서울 노량진동의 한 고시원. 퇴근한 김모씨가 자신이 생활하는 방 앞에서 딸 봄이를 안고 스마트폰으로 동요를 들려주고 있다. [김상선 기자]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봄이야….



네겐 엄마가 없어. 아니, 엄마가 사라졌다고 얘기해야 옳겠구나. 네 엄마는 너를 낳고 열흘 만에 집을 나가 행방불명이 됐거든. 그때가 2013년 7월이었으니 벌써 2년이 다 돼가는구나.



 아빠처럼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홀로 키우는 사람을 미혼부(未婚父)라고 부른단다. 아빠도 미혼부가 되기 전엔 몰랐어. 엄마가 없이 아빠 혼자서는 아이의 출생신고를 할 수 없다는 걸 말이야.



 2013년 7월 초, 그러니까 네 엄마가 너를 버리고 집을 나가고 닷새쯤 지났을 때였어. 밤새 숨을 헐떡이기에 황급히 너를 안고 병원으로 달려갔지. 의사 선생님은 네 폐에 물이 많이 찼다고 그러셨어. 생후 한 달도 되지 않은 네가 2주 넘게 인큐베이터에서 치료받는 걸 보면서 아빠가 얼마나 많은 울음을 삼켰는지 너는 잘 모를 거야. 그렇게 치료를 마치고 네가 퇴원하던 날. 아빠는 간호사의 말을 듣고 또 한번 눈앞이 캄캄해졌단다.



 “봄이가 건강보험 가입이 안 돼 있어서 치료비가 700만원 넘게 나왔네요.”



 아빠는 풀썩 주저앉고 말았지. 아빠가 미혼부인 탓에 네 출생신고를 할 수 없어서 건강보험 혜택도 받을 수 없게 됐다는 얘기였어. 그때 아빠는 승용차와 시계 같은 돈이 될 만한 건 모두 팔아서 겨우 병원비를 치렀단다.



아빠도 3~4년 전까지는 잘나가는 회사원이었어. 보험회사 다닐 땐 연봉 7000만원 넘게 받은 적도 있었으니까. 결혼도 했었지. 그런데 사기를 당하고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결국 이혼하고 말았어. 위자료까지 주고 나니 남은 돈이 겨우 16만원이더라.



 아빠는 그 돈으로 넥타이 장사를 시작했어. 주말엔 대형 박람회 안내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거기서 네 엄마를 만났단다. 네 엄마도 아빠처럼 이혼을 경험한 여자였어. 우리는 서로 마음이 맞아 동거를 시작했고 봄이도 그렇게 생겨나게 된 거야.



 봄이야….



아빠는 단칸방에서 동거하면서도 봄이가 생겼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미래를 가꿔보려고 했어. 그런데 네 엄마가 그렇게 너를 버리고 나가버린 뒤 모든 게 엉망이 되고 말았지. 그때 봄이 출생신고라도 곧바로 할 수 있었다면 좀 덜 힘들었을 텐데….



 봄이야, 네가 퇴원한 다음 날이었어. 출생신고를 하러 관할 구청으로 갔는데 구청 공무원이 몹시 귀찮다는 표정으로 이렇게 말하는 거야.



 “미혼부는 출생신고를 할 수 없습니다. 엄마가 와야 합니다.”



 그 공무원이 서류뭉치를 뒤적이더니 손가락으로 한 군데를 짚으며 덧붙이더구나.



 “여기 보이시죠? 가족관계등록법 46조 2항 ‘혼인 외 출생자의 신고는 모(母)가 해야 한다.’”



 아빠는 곧장 변호사 사무실을 찾아갔어. 미혼부가 출생신고를 하려면 가정법원에 가족관계등록부 창설 청구를 해야 하는데 최소 500만원이 들어간다고 하더구나. 아빠는 낙담한 채 돌아와 변호사 비용과 생활비를 마련할 궁리를 하기 시작했어. 택배 기사, 음식점 종업원 등 일자리를 찾아다녔지만 가는 곳마다 거절당했지. 아이를 데리고 일하러 오겠다는 남자를 받아주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어. 출생신고가 안 된 너에겐 주민등록번호가 없으니 어린이집에 보낼 수도 없었고.



 부끄러운 이야기 하나 들려줄까. 일자리를 못 구해 여러 지인에게 손 벌리며 지낼 때였어. 어느 날 분유가 떨어진 거야. 아빠는 무작정 대형마트로 갔어. 분유를 훔칠 생각이었지. 하지만 부끄러운 아빠가 될 수 없다는 생각에 그만뒀어. 대신 대형마트 앞 도로변에 앉아 ‘아이 분유가 떨어졌습니다. 도와주세요’라고 적은 종이를 들고 구걸을 했지. 어렵게 4만원을 얻어 분유와 기저귀를 사서 돌아오는데 어찌나 서럽던지….



 지난해 3월 답답한 마음에 법률구조공단 서울중앙지부를 찾아갔어. 거기 구조2팀 김윤회 계장님이 “가능성이 있으니 법원을 상대로 청구를 해보자”고 하시더구나.



 절차는 무척 복잡했어. 서울가정법원에 성본(姓本)의 창설허가 심판청구부터 했지. 아빠가 너의 특별대리인이 되려면 DNA 검사 결과가 필요했고, 이전에 봄이가 가족관계 등록이 된 적 없다는 가족관계등록부부존재증명서도 받아야 했어. 지루한 과정을 거쳐 DNA 결과가 친자로 나오고 법률구조공단 도움으로 다른 증명서도 별문제 없이 받을 수 있었어. 법원 심사가 시작되고 6개월쯤 지났을까. 드디어 노량진2동 주민센터에서 연락이 왔어. 서울가정법원에서 가족관계등록부 창설 허가 결정을 했다는 소식. 주민등록등본에 아빠와 봄이 이름이 나란히 적혀 있는 걸 보고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고 말았어.



 봄이야, 요즘 아침마다 너를 어린이집에 데려다주는 길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어. 고작 월급 120만원짜리지만 부동산중개소 보조 일도 시작했어. 1년3개월간 출생신고도 못한 채 불안하게 살던 때와 비교하면 이런 행복이 믿기지 않을 정도야.



 하지만 봄이야, 우리나라엔 아빠 같은 미혼부가 해마다 늘고 있대. 통계청 인구주택총조사에 따르면 2010년 전국의 미혼부는 1만8118명으로 현재는 2만 명이 넘을 것으로 추산된다는 거야. 수많은 미혼부가 아이의 출생신고를 하지 못해 고통받고 있는 걸 생각하면 아빠 마음이 아프단다. 아빠와 봄이는 운 좋게 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았지만 DNA 검사를 하고 복잡한 법적 절차를 진행하려면 1년 가까이 걸리니 어떤 미혼부가 섣불리 법원에 청구를 할 수 있겠니.



 전문가들 사이엔 미혼부가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법을 고쳐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아지고 있대. 과거엔 DNA 검사라는 게 없었지만 요즘은 DNA 검사로 얼마든지 친아빠라는 걸 증명할 수 있으니까. 법 지식이 없는 이 아빠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아.



 아이에겐 아빠도 엄마와 똑같이 소중한 존재 아닐까. 미혼모가 아이의 출생신고를 할 수 있다면 미혼부도 출생신고를 할 수 있도록 하는 게 합리적이지 않을까.



 저기, 아장아장 어린이집을 걸어 나오는 네가 보이는구나. 다른 미혼부의 아들·딸들도 우리 봄이처럼 당당하게 출생신고 하고 어린이집 다닐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어. 그렇지? 봄이야.



글=박진호 기자 park.jinho@joongang.co.kr

사진=김상선 기자



※이 기사는 미혼부 김모(38)씨의 실제 사례를 토대로 재구성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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