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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미·중 '샌드위치' 딜레마에서 벗어나려면

중앙일보 2015.04.06 00:05 종합 31면 지면보기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과
때 아닌 샌드위치 논쟁이 한창이다. 중국 주도의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가입 문제나 미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도입 건을 둘러싸고 우리 정부가 미국과 중국 눈치를 보다 모두 실기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이 제기되면서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서 ‘눈치 보기 외교’가 아니라고 선을 그었고 윤병세 외교부 장관도 우리가 주도권을 갖고 국익에 맞는 선택을 했다고 강조했지만 세간의 반응은 냉담해 보인다.



 정부의 행보를 보는 시각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하나는 중국 편승론이다. 미국과 중국 사이의 세력전이는 이제 기정사실이므로 ‘기울어가는 미국’에 연연하기보다는 ‘떠오르는 중국’과 협력해 나가는 게 옳다는 시각이다. 경제는 물론 북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국가가 중국이기 때문에 한·미 동맹이라는 과거의 관성에 굳이 얽매이지 말고 중국과의 전략적 협력 동반자 관계를 전향적으로 심화시켜 나가자는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미국의 반대에도 AIIB 가입 결정을 내리고 사드 배치 건에 대해서도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않은 한국 정부의 행보는 아주 바람직한 셈이다.



 반대 시각도 만만치 않다. 세력전이는 요원한 일이며 미국이 다시 세계질서를 주도할 것이라는 이른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 III’ 학파가 대표적이다. 제2차 세계대전 직후와 1990년대 초 냉전 해체 직후 두 차례에 걸쳐 패권적 주도권으로 새로운 세계질서를 주조했듯, 비록 지난 수년간 어려움을 겪기는 했지만 21세기 초·중반의 세계질서 역시 미국이 만들어나갈 것이라는 견해다.



 이들은 특히 2008년 리먼 사태 이후 침체됐던 미국 경제가 되살아나는 데다 세일가스 혁명으로 미국이 에너지 강국으로 부상하고 있다는 최근 현실에 주목한다. 더욱이 미국은 첨단기술 분야에서 압도적 지위를 확보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저출산·고령화 사회라는 선진국 공통의 덫으로부터도 자유롭다. 국방 분야 역시 예산 삭감으로 어려움을 겪긴 했지만 기반전력 자체가 견고할 뿐 아니라 경기회복에 따라 세수가 늘어 국방비 역시 회복될 것이라는 점도 근거로 꼽힌다.



 반면 중국의 ‘8% 성장’ 신화는 이미 깨졌고 그 자리는 저성장·고실업을 특징으로 하는 ‘뉴 노멀’ 경제가 대신 들어섰다고 이들은 말한다. 고질적인 양극화, 환경 문제, 부정부패, 분리주의 운동, 법치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등 중국이야말로 국내의 다양한 도전에 직면해 있다는 것이다. 중국 정부가 국방비를 연평균 두 자리 퍼센티지로 늘려왔지만 아직도 미국의 4분의 1밖에 안 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동맹의 수도 비교가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경거망동하게 중국 편승론 같은 잘못된 선택을 하지 말라는 게 이들의 경고다.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安美經中)’이라는 이중 플레이가 현실적으로 어려운 시점에 우리는 이 둘 중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조셉 나이 하버드대 교수가 최근 출간한 『미국의 세기는 끝났는가?』는 중요한 단서를 담고 있다. 나이 교수는 41년 이후 지금까지 ‘미국의 세기’는 지속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중국·일본·인도·유럽을 포함해 어느 누구도 향후 수십 년간 미국을 능가할 수 없으리라는 것이다. 이는 군사력과 경제력은 물론 소프트파워 역시 마찬가지지만 결코 패권적 우위는 아니라고 그는 말한다. 미국은 그간 세계 수준의 세력균형과 공공재를 창출하는 과정에서 중심적 역할을 수행했지만 세계질서를 좌지우지하는 ‘팍스 아메리카나’의 위상을 누린 적은 없었다는 견해다. 심지어 세계경제의 50%를 차지했던 50년대에도 반쪽 헤게모니만을 누렸을 뿐이라는 것이다.



 나이 교수는 또한 21세기 들어 미국의 영향력 행사에는 기본적 한계가 있다고 판단한다. 중국을 포함한 여러 나라들의 국력이 크게 신장했을 뿐 아니라 국제사회의 작동원리가 복잡다단해지고 있기 때문이다. 정파성에 휘둘리는 워싱턴 국내 정치의 난맥상 역시 미국의 국력 전환(power conversion) 능력을 현저히 저해하고 있다고 그는 우려한다. 안과 밖의 여러 한계를 따져보면 미국 홀로 국제 현안들을 좌우할 수는 없으리라는 것이다. 다른 나라들과 함께 지혜를 모아 가며 지구촌의 주요 문제를 공동으로 해결해 나가야 한다는 결론이다.



 나이 교수가 주는 교훈은 명료하다. 중국 편승을 논하기에는 미국의 국력이 아직 건재하고, 거꾸로 미국이라는 바구니에 모든 것을 담기에는 그들의 스마트 파워에 한계가 있다. 결국 우리의 길을 가야 한다. 국익과 보편적 이익의 조화 속에서 ‘의연하게’ 미·중 양국과의 관계를 설정하고 이들과 더불어 문제 해결의 창의적 지혜를 주도적으로 찾아야 할 것이다.



문정인 연세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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