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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능 블루칩, 모델 이현이

온라인 중앙일보 2015.04.06 00:05
[여성중앙]예능 블루칩, 이현이와 토크 살롱



JTBC ‘속사정쌀롱’에서 자연스러우면서도 털털한 모습을 선보이며 안방마님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톱 모델 이현이의 일, 결혼, 방송… 그리고 다음 스텝까지. 그녀의 인생 런웨이를 공유했다.







‘경제학을 공부해서 대기업에 취직한다.’ 이 나라 대부분의 젊은이가 세우는 지극히 평범한 목표다. 이현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하지만 어느 날 문득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깨달은 그녀는 그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자기 길을 걷기로 결심한다. 모델 이현이는 그렇게 탄생했다.



화려한 전성기를 보내고, 준수한 미모의 엘리트 사원을 만나 결혼한 후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모델 활동을 하며, 최근에는 방송으로까지 활동 반경을 넓힌 그녀를 만나기 위해 서울 성수동의 한 스튜디오를 찾았다. 이른 아침부터 계속된 화보 촬영을 마친 뒤 인터뷰를 위해 앉은 그녀에게 객쩍은 농담부터 건넨다. “이건 근친상간이야.” 그녀와 나는 지금 JTBC의 ‘속사정쌀롱’에 공동 MC로 출연 중이다.



Q : 유년 시절엔 어떤 아이였나요

엄청 소심했어요. 어쩌다가 중학교 1학년 반장 선거에 나가게 됐는데, 대학 학생회장 선거처럼 긴 연설문을 써서 엄청난 포부를 밝혔어요. 결국 반장이 됐고, 그 후 쭉 고등학교 때까지 반장만 했어요. 그 일을 계기로 성격이 바뀌어 앞에 나서는 것도 좋아하게 됐고, 친구도 많이 생겼어요. 집에서는 장녀, 학교에서는 반장이다 보니 독단적인 면도 있었죠.



예를 들면 학교 환경 미화를 할 때예요. 대부분의 교실 뒷벽 게시판은 천편일률적으로 네모난 칸에 시 한 편 있고 학습란, 취미란이 있는 정도였어요. 그런데 저는 그게 싫어서 틀 자체를 없애고 게시판을 개나리, 진달래 꽃밭으로 만들라고 했어요. 반대하는 친구도 있었을 텐데, 신경 쓰지 않고 무조건 제가 원하는 대로 했죠.



Q : 원래 키가 컸나요

키는 중학교 때부터 컸어요. 중학교 3학년 때 키가 175cm였어요. 입학할 때는 다른 아이들과 비슷했는데 3년 동안 쭉쭉 컸어요.



Q : 어린 시절부터 옷을 잘 입었나요

아뇨. 전혀요. 제가 기억하는 학창 시절의 복장은 교복과 체육복이에요. 경기도 광명시에 있는 진성고등학교에 다녔는데, 사관 학교 같은 곳이라 코트까지 학교에서 지급하는 것을 입어야 했어요. 그러니 패션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죠. 그러다 대학에 들어와 완전한 자유가 주어지니까 패션 아노미가 왔어요.



그때 사진을 보면 상의는 노란색, 바지는 초록색, 신발은 핑크색이에요. 아니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분홍색. 패션테러리스트였죠. 친구들이 ‘네가 어떻게 모델이 되었는지 모르겠다’고 할 정도로 못 입었어요. 모델 일도 실은 글로 배워 시작했어요. 실생활에서 경험하고 입어보고 찍어보며 느낌으로 배운 게 아니라, 모델들이 보는 바이블 같은 책을 읽으며 ‘어떤 옷을 입으면 어떤 포즈를 취해야 하는지’를 배운 거죠. 몸으로 체득한 게 아니라 글로 외우면서요.



Q : 어떻게 모델이 될 생각을 하게 됐나요

평생의 꿈이 대학 가는 거였는데, 막상 대학에 가고 나니 그다음이 막막한 거예요. 밴드 활동을 하는 친구가 무대에서 베이스 기타를 치는 게 멋있어서 저도 무대에 서고 싶었어요. 그런데 악기도 못 다루고, 노래도 못 하니 연극을 하려 했죠. 연극은 몸만 있으면 되겠다 싶어 연극부에 들어갔어요. 연합 동아리라서 남학생들도 있었는데, 저를 남장을 시키더라고요. 키가 워낙 커서 맞는 배역이 없는 거예요. 그래서 키가 커도 무대에 설 수 있는 방법을 찾다보니, 답은 모델이더라고요. 포털 사이트 검색 창에 모델이 되는 법을 검색한 뒤 시작하게 됐어요.



Q : 그게 몇 학년 때인가요

대학교 3학년이요. 처음에는 엄마 아빠한테 얘기도 안 했어요. 본선에 붙으면 두 달간 합숙을 하는데, 집에는 그때 얘기하고 휴학했어요. 푹 빠졌죠. 본선에 나가 협찬사에서 주는 상을 받았어요. 본선까지 올라가면 정식으로 모델 수료를 해서 모델 기수를 받아요. 사법연수원 몇 기, 이런 식으로. 그렇게 데뷔했죠. 아직도 기억이 나는 게 2005년 12월 25일, 워킹을 마치고 백스테이지로 내려왔는데 기획사 직원 분이 사인하라고 계약서를 내밀더라고요.



Q : 무대에 올라가려면 최소한 워킹 같은 것은 배워야 하지 않나요

슈퍼모델 대회의 참가자로 선발되면 다 가르쳐줘요. 뽑아서 바로 대회를 여는 게 아니라 6개월 동안 훈련시킨 후에 대회를 열거든요. 모델 학원에 다니려면 월 200~300만원씩 들어요. 한 학기 등록금인데 집에다 그거 내달라고 얘기할 수가 없죠. 데뷔하고 나서 한두 컷짜리 화보를 찍으러 다니던 어느 날, 리바이스 광고 모델을 찾는다는 공고를 보고 회사에서 저를 조선희 작가님께 보냈어요. 그때만 해도 글로 배운 포즈밖에 못했던 터라 청바지를 입고 카메라 앞에 섰는데 의욕만 넘친 거예요.



작가님 앞에서 (흉내를 내보이며) 이렇게 1980년대도 안 할 포즈들을 취했어요. 작가님이 셔터를 한 번도 안 누르셨어요. “그거 말고 할 줄 아는 게 없냐?”고 하시기에 더 과장된 포즈를 취했죠. 결국 안 되겠다며 돌려보내셨어요. 돌아오는 길에 엉엉 울면서 뭔가 잘못됐다는 것을 깨닫고, 남들이 하는 걸 보면서 따라하는 방식으로 바꿨어요. 자전거 타는 법을 몸으로 익히 듯이요.



Q : 해외에 체류하며 활동하던 시절의 이야기 좀 들려주세요

데뷔하자마자 운이 좋아 일을 많이 했어요. 한국에서 1년간 일하면서 포트폴리오가 몇 권이 쌓였어요. 그중에서 추려 미국 뉴욕에 있는 에이전시마다 뿌렸어요. 지금은 세계적으로 패션 경기가 안 좋은데, 저희 때만 해도 이 아이가 맘에 든다 싶으면 뉴욕에서 항공권은 물론 숙소 제공에 매주 용돈까지 줬어요. 거기서 요청이 와서 그다음 해에 갔어요.



저보다 앞선 시대에 혜박과 한혜진 선배가 있었어요. 그분들처럼 되고 싶어서 갔는데, 그곳 생활은 제가 꿈꾸던 것과는 180도 다르더라고요. 내 시간은 10분도 없고 아침 8시부터 밤 10시까지 캐스팅이 있는 거예요. 많을 땐 하루에 18개에서 20개까지. 덕분에 DVF나, 베이비 팻 등 굵직한 쇼들에 캐스팅이 되긴 했어요.



Q : 그다음에는 유럽으로 간 건가요

예. 순서가 뉴욕, 런던, 밀라노, 파리예요. 4대 패션 위크라고 하죠. 뉴욕이 3월 첫째 주에 시작하고, 둘째 주는 런던, 셋째 주는 밀라노, 넷째 주는 파리. 그다음 주부터는 도쿄, 서울, 브라질 등 각 도시별 패션 위크가 있어요. 4대 패션 위크를 돌고 오면 자국에서는 MBA 과정이라도 밟고 온 것처럼 대접을 받죠.



그런데 밀라노에서는 단 한 건도 캐스팅이 안 됐어요. 거기에는 전통 있는 패션 하우스들이 많은데 구찌, 프라다, 팬디 등 명품계나 패션계 거장들의 하우스에서는 신인을 잘 안 써요. 결국 힘들어하다가 파리로 넘어갔어요.



파리에서는 잘 됐어요. 샤넬, 에르메스, 장 폴 고티에, 드리스반 노튼 등이 유명하지만 프랑스는 특이하고 실험적인 옷들이 소비되는 나라인 만큼 생각보다 젊은 아티스트도 많았어요. 패션 위크를 한 번 다 돌고 나서는 혜박이나 한혜진 선배에 비하면 약소하지만 그래도 이름 있는 곳들을 거쳤다는 점에 스스로 뿌듯해했어요.



Q : 그런데 왜 한국으로 돌아왔나요

선택지가 있었어요. 아예 뉴욕에 베이스를 둔 채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계속 사느냐, 아니면 한국에 살면서 외국의 일을 병행하느냐. 저는 한국을 못 놓겠더라고요. 반면, 저랑 같은 시기에 뉴욕에 진출한 강승현은 거기에 터를 잡았어요. 그 친구는 4대 패션 위크를 돌지 않고 뉴욕에만 머물며 뉴욕 전문가가 됐죠. 뉴욕에서 촬영할 게 있다고 하면 무조건 승현이, 뉴욕에 대해 인터뷰할 게 있다 해도 무조건 승현이. 그런 존재가 된 거죠.



Q : 개인적으로 특히 기억에 남는 무대가 있었다면요

에르메스 무대요. 너무 선망하던 무대였어요. 에르메스는 사실 캐스팅 요청도 잘 안 해요. 에르메스 무대 이틀 전 장 폴 고티에 쇼에 섰는데 당시 이분은 에르메스의 수석 디자이너를 하며 본인 라벨의 쇼도 하고, 에르메스 쇼도 했어요. 장 폴 고티에 피팅을 하러 갔던 날 제가 옷을 되게 많이 입었어요.



그게 미안해서였는지, 밥 먹고 가라고 해서 그 집 식구들과 저녁을 먹었어요. 내가 장 폴 고티에의 집에서 저녁을 먹다니! 그러고 나서 며칠 후 에르메스 쇼를 하러 오라고 연락이 온 거예요. 감격했죠. 비슷한 경우가 안나수이 쇼예요. 뉴욕에서 첫 시즌에 했던 쇼인데, 처음엔 캐스팅이 안 왔어요. 그런데 갑자기 안나수이가 저를 보내달라고 에이전시에 연락을 해왔어요. 바로 다음 날이 쇼였어요.



이미 라인업이 다 끝나 나한테 입힐 옷이 더 이상 없을 텐데 그냥 보려고 불렀나보다 했죠. 그런데 어디서 원피스를 하나 가져 와서 그걸 입히더라고요. 그리고 패션쇼를 보면 ‘피날레’라고 해서 모든 모델이 한꺼번에 나올 때가 있잖아요. 바로 그 피날레에서 저보고 제일 앞에 서라고 하는 거예요. ‘왜 나를?’ 하고 놀라면서도 엄청 감격했어요.







Q : 모델 세계도 군기가 엄청 세다면서요

모델들의 위계 문화는 장윤주, 송경아 선배를 기점으로 나뉘어요. 이 언니들의 윗세대는 못된 일을 많이 시켰나 봐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쇼를 하던 시절, 폭탄 머리에 화장을 진하게 하고 있는데 밖에 나가 뭘 사오라고 시켰대요. 때리기도 하고, 벌도 세우고. 경아 언니와 윤주 언니가 그 꼴을 당하고도 대물림을 안 하셨고, 그 덕분에 많이 민주화됐죠.



그렇게 말도 안 되는 극단적인 군대 문화는 사라졌지만, 아직 일반 회사보다는 센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모델 30명이 모여 쇼를 할 때 후배들이 도시락을 전부 세팅하고, 먹고 나서 치우는 정도? 요즘은 그 마저도 잘 안 하지만요. 경기가 너무 안 좋아 돈 많이 들어가는 쇼가 사라지다보니, 아예 모일 기회도 없어 위계질서도 확인한 지 오래예요. 월드컵 때는 80명이 모여서 했는데, 요새는 많아야 8명이고 그나마도 매장에서 하는 쇼뿐이에요.



Q : 그래도 후배들을 보면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 하는 게 있겠죠

우리 때만 해도 모여서 쇼를 하면 선배들이 무서워 속옷을 잘 갖춰 입고 왔어요. 상반신 속옷은 안 입고, 팬티는 살색을 입어야 했죠. 그런데 요즘은 아이들이 땡땡이 무늬를 입고 와요. 그렇다고 혼을 내면, 제가 나쁜 선배가 되잖아요. 그래서 그런 말은 디자이너가 하게 내버려둬요. 의상에 비치면 디자이너가 알아서 얘기할 텐데 굳이 제가 지적할 필요는 없다 싶어서요.



Q : 브랜드나 컬렉션에 대한 뚜렷한 선호가 있을 것 같아요. 국내든 해외든 좋아하는 디자이너가 있다면요

프랑스 브랜드를 좋아해요. 셀린, 샤넬, 지방시, 질 샌더. 전통적인 프렌치 스타일은 장식 없이 테일러링만으로 여자의 몸을 우아하고 고급스럽게 만들거든요. 밀라노는 엄청 블링블링해서 쓸 수 있는 모든 돈과 보석을 다 갖다 붙여요.



구찌는 “퍼!” “보석!”이라고 아우성치는 듯하잖아요. 뉴욕은 온몸으로 “미국!”이라고 외치는 스타일이고, 팝과 펑크가 주류죠. 제 스타일은 프랑스 쪽 같아요. 디자이너들은 밀라노 디자이너들이 제일 못됐고요.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이지만, 인종 차별이 좀 심해요.



이탈리아어를 못 할 거라 생각해서 사람을 세워놓고 그 사람에 대한 평가를 막 하곤 하더라고요. 처음엔 몰랐는데 거기서 활동한 지가 몇 년 쯤 되니 이탈리아어를 못 해도 ‘별로다’ ‘싫다’ ‘뚱뚱하다’ 정도는 알아듣게 된 거죠.



Q : 국내 디자이너들 중에서는 누굴 좋아하나요

윤춘호씨. 신진 디자이너인데, ‘똘끼’가 있는 천재로 모든 피스를 사고 싶게 만들어요. 그리고 ‘J KOO’라고 최진우·구연주 부부. 좀 더 위의 세대 디자이너 중에서는 지춘희 선생님. 이분은 테일러링에 집중하시는 편이죠. 감히 비교를 하자면, 돌아가신 앙드레김 선생님은 밀라노 스타일이시고요. 하하.



Q : 이현이가 생각하는 2015년 패션 동향은 어떤가요

이런 질문이 제일 어려워요. 지금은 모든 게 쏟아져 나와요. ‘불경기 땐 미니스커트’ 뭐 이런 공식이 있었는데 요즘은 그런 것도 없어요. 플라워 패턴이든, 블랙 앤 화이트든, 키워드가 되는 모든 패션 아이템이 시즌에 상관없이 나오고 있어요.



이건 제 생각인데 2015년은 불경기잖아요. 혁신적 유행 대신에 기존의 트렌드를 잘 조합한 방식이 대세일 것 같아요. ‘놈코어’라고 ‘노멀’과 ‘하드코어’를 합친 말이 있어요. 제가 단정하게 올 블랙으로 입었다고 상상해보세요. 그런데 “안녕히 계세요”라고 인사하고 돌아서니 뒤가 다 시스루인 거예요. 이런 게 2015년 패션계의 화두가 아닐까 싶어요.



Q : 평상시에는 어떻게 옷을 입나요

선호하는 브랜드는 없고, 베이식한 스타일 위주로 골라요. 무채색에 장식을 최소화하고, 포인트가 되는 색이나 액세서리 하나만 쓰는 식으로.



Q : 좋아하는 소재와 색상은요

섞는 걸 좋아해요. 상하가 전부 다 블랙이면, 위는 블랙 실크 블라우스에 아래는 진을 입는다든지, 아니면 면 블라우스에 레더 팬츠를 입고 신발은 워커를 신는 식으로 질감에 차이를 두는 편이에요. 색상은 핑크를 좋아하고요. 방송에서도 많이 입었어요.



Q : 평소에도 옷을 입어보고 쇼핑하는 것을 즐기나요

무척 좋아해요. 백화점은 여자들의 병원이라고 하잖아요. 끙끙 앓다가도 백화점에만 가면 행복하고, 남편이랑 싸우고 화가 났을 때도 백화점에 가면 기분이 풀려요. 뭘 사서가 아니라 그냥 그 공간이 좋아요.



Q : 어린 시절 인형에 옷 입히는 놀이 같은 것은 안 했었나요

언젠가 “친구들이 그렇게 옷을 못 입으면서 어떻게 모델이 됐냐고 놀린다”고 했더니, 엄마가 “야, 말도 마라” 하시며 제가 유치원 들어가기 전에 찍은 사진을 한 장 보여주셨어요. 머리에 핀을 7개나 꽂고 있더라고요. 그렇게 꽂아주지 않으면 안 나갔대요. 무조건 치마에 레이스 양말에 레이스 신발. 온몸을 레이스로 치장하는 걸 좋아했대요.



Q : 어릴 때는 밀라노 스타일이었네요

하하, 그랬던 것 같아요. 투 머치 스타일.



Q : 남편의 패션 센스는 어떤가요

전형적인 한국 남자예요. 관심이 많아 멋은 부리고 싶지만 막상 어떻게 해야 할지는 잘 모르는 케이스. 패션에 일가견이 있는 남자들은 튀는 아이템 하나 없이도 매치를 잘하는데 남편 옷장에는 전부 다 튀는 아이템뿐이에요. 그것도 다 비싼 브랜드로. ‘이거 하나면 나는 패셔니스타야!’ 하는 느낌의 옷들. 그러다가 저를 만나서 많이 바뀌었어요.



Q : 결혼이 모델 커리어에 영향을 많이 미치지는 않았나요

주위에서 커리어에 지장을 줄 거라는 얘기를 많이 했는데, 크게 신경 쓰지는 않았어요. 제가 아이돌이나 여배우도 아니고, 엄청난 남성 팬덤을 가진 것도 아니니까요. 모델 팬덤은 외려 여자들이에요. 물론 일을 주는 사람, 즉 광고주의 생각은 다른 것 같지만요.



방송에 섭외할 때도 미스가 나오는 것과 미시즈가 나오는 게 다르다보니 제약이 많긴 해요. 그런데 모델 일을 좋아하긴 하지만 이게 평생직장이 될 수는 없잖아요. ‘이 순간 이 사람과 결혼하지 않으면 분명 헤어질 텐데, 이만큼 좋은 사람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어 고민을 했어요.



그리고 인생 전체를 놓고 봤을 때 더 중요한 일인 결혼을 미루기 싫었어요. 어릴 때부터 ‘난 서른에 무조건 결혼하겠다’고 생각했고, 그 시기에 마침 이 사람을 만났고, 모든 게 잘 맞았어요.



Q : 서른에 만난 남자가 그 남자가 아니었다면요

그럼 안 했을 것 같아요.



Q : 결혼 생활에 큰 의미를 두는 것 같아요. 어느 인터뷰에서 ‘결혼의 환상을 현실로 옮기는 게 너무 힘들었다’고 했어요

결혼에 대한 판타지와 함께 이상적인 신혼집에 대한 판타지를 갖고 있었는데, 막상 꾸미려다보니까 남편이랑 만날 싸우는 거예요. 저는 거실에 TV 없이 원목 소파를 두고 카페 테이블을 놓고 싶었는데, 남편은 너무 현실적이라 “카페면 괜찮은데 집에서 그런 딱딱한 의자에 앉으면 불편해서 살 수 있을 것 같냐”고 하더라고요. 지금은 그 말에 동의해요.







Q : 모델로서 본인만의 장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아줌마라는 거. ‘대놓고 나 유부녀’라고 말하고 다니는 모델은 저밖에 없죠. 전에는 패셔너블하고 소위 ‘에지 있는’ 일을 했었다면, 얼마 전부터는 세탁기 광고처럼 우아하고 지적인 이미지의 일이 많이 들어와요. 저는 그쪽이 더 맞는 것 같아요.



Q : 최근 ‘속사정쌀롱’을 함께하게 됐는데, 어떤 계기로 출연하게 됐나요

어느 날 한 잡지 창간 파티에서 남편이랑 술 먹고 노는데, 회사에서 지금 올 수 있느냐고 전화가 왔어요. JTBC ‘속사정쌀롱’에서 여자 MC를 뽑는다면서요. 가서 작가들과 한 시간을 넘게 떠들었더니, 다음 주부터 녹화에 나오라고 하더라고요. 사실 다른 사람한테 먼저 섭외가 갔는데, 그쪽에서 하기 싫다고 해서 저한테 왔다는 소문도 듣긴 했어요.



Q : 제가 듣기로는 여성이면서 독설 코드를 가져서 섭외했다던데요

아, ‘온스타일’의 MC를 몇 번 했는데, 거기서 말을 너무 직설적으로 했나 봐요. 워스트 드레서들을 독하게 평했거든요. 스타일리스트들이 저를 만나면 말조심하라고 얘기하기도 했었죠. 5~6년 전 일인데도 그때 자료 화면이 아직도 돌아다니더라고요(웃음).



Q : 방송 일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나요

패션계의 교육방송 격인 동아TV에 ‘매거진 앤 모어’라는 프로가 있었어요. 말 그대로 TV에서 잡지를 읽어주는 거예요. 크로마키 배경을 뒤로 하고 카메라 앞에서 얘기하는 건데, 대본의 토씨 하나 틀리면 안 된대요. 재미가 없어 그만뒀어요. 그러다가 ‘스타일 쇼 필’이라고 ‘온 스타일’에서 몇 시즌째 하던 방송이 있었는데, 그 프로가 MC 5명의 리얼 버라이어티 쇼로 대대적 재편성을 한다 해서 합류하게 됐어요. 그게 독설을 하게 된 방송이에요. 그 독설이 입소문이 나서 카메라 앞에서 막말 한다고 SBS ‘강심장’에서 섭외가 오기도 했죠.



Q : ‘속사정쌀롱’은 어떤가요

몇몇 프로그램에 패널로 출연하기도 했는데, 결국 안 하겠다 했어요. 제작진들이 너무 출연자들에 대한 이해가 없더라고요. ‘속사정쌀롱’에서는 방송 전에 작가와 한 시간씩 통화를 하는데 그때 저에 대해 자세히 말해야 돼요. 출연자들의 진심을 끌어내기 위해서래요. 없는 기억도 짜내야 하죠.



이전에 출연했던 프로그램에서는 너무 전형적인 것들만 시켰어요. 예를 들면 워킹하세요, 포즈하세요, 표정 지으세요 등처럼 1990년대에나 했을 법한 예능을 시키는 거예요. 또 제가 결혼한 지 2년이 넘었는데 ‘결혼하셨느냐’고 물어보기도 하고요. 게스트로 불렀으면 검색 창에 이름이라도 한 번 넣어봐야 하지 않나요?



어느 프로에서는 저한테 벌레를 갈아 만든 햄버거 패티를 먹였어요. 미래에는 환경이 오염되어서 대체 식량으로 벌레를 먹게 된다나요? 피디가 자기 동생이 수제 버거 가게를 차렸다면서 햄버거를 돌리고는 제가 먹는 모습을 몰래 카메라로 찍은 거예요. 심하게 충격을 받았어요.



Q : ‘속사정쌀롱’에서 만날 자기 레스토랑 얘기만 한다고 장동민씨한테 타박을 받고 있는데 레스토랑은 어떻게 하게 된 건가요

먹는 걸 좋아해서 남편이랑 맛집을 자주 찾아다니는데 서울 압구정 주택가에 파스타 가게가 하나 숨어 있었어요. 알고 보니 남편 친구가 하는 집인 거예요. 맛있다고 감탄만 하다가, 그쪽에서 ‘이 맛을 내는 셰프를 소개해줄 테니 2호점을 내보라’는 제안을 받았어요. 그래서 덜컥 내게 됐죠. ‘파티오 42’라고. 1호점에서 셰프, 홀 매니저, 전반적 셋업을 도와줘서 시작할 수 있었어요. 방송 덕에 매상이 오르진 않았지만 유지는 되고 있어요. 요즘 서래마을 상권이 많이 죽은 걸 감안하면 유지되는 것만으로도 고무적이라 생각해요.



Q :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나요

원래는 라면 물도 못 맞췄는데, 결혼 전에 남편이 ‘밥도 할 줄 몰라서 시집이나 가겠느냐’고 살살 긁어 대서 ‘두고 봐라’ 하는 심정으로 한식 조리사 자격증 반에 등록하고 열심히 공부했어요. 요새는 웬만한 건 다 해요. 다만 시간이 없어서 잘 안 하게 되지만요. 전에는 항상 이탈리안식으로 요리했었어요. 쉽거든요. 하면 있어 보이고. 그런데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운영하면서는 집에서 한식을 주로 하게 돼요.



Q : 둘만 함께하는 주말에는 무엇을 하며 보내나요

저랑 남편은 활동적이어서 볼링도 치고, 겨울엔 스키장, 여름에는 웨이크보드를 타러 가요. 남편이 바비큐 하는 걸 좋아해서 숯불에 고기 구워 먹으러 펜션 여행도 자주 가고요.



Q : 모델 일을 영원히 할 수는 없고, 그 일과 관련해서 다음 스텝은 뭐가 될까요

방송하기 전에 강의를 한 적이 있어요. 어떻게 보면 제 경력도 특이하잖아요. 갑자기 꿈이 생겼고, 열심히 했고, 외국도 나갔다 왔고. 기업 강연도 다니곤 했는데 재미있더라고요. 그래서 가르치는 일을 해보면 어떨까 생각하고 있어요. 대학은 물론이고, 고등학교에도 모델 반이 있거든요. 다만, 제가 보기보다 완벽주의에 철저한 면이 있어서 학위 없이 가르치고 싶진 않아 더 공부를 해야 할 것 같아요.



Q : 모델과 방송 일 이외에 글쓰기를 좋아한다고 하던데 주로 어떤 글을 쓰나요

그냥 일기예요. 끼적이는 것, 낙서하는 것을 좋아해요. 국어 교사인 엄마의 영향인가 봐요. 해외 컬렉션 나갔을 때는 비교적 시간이 많이 남아 카페에 앉아서도 많이 썼어요. ‘오늘 뭘 했다’로 시작해서 거기에서 파생되는 생각을 적어요. 해외 촬영을 갈 때도 마찬가지예요.



요즘은 사진을 찍어 기록하지만 전에는 그 체험을 전부 글로 적었어요. 인도의 우다이프루라는 지역으로 촬영을 간 적이 있어요. 사막 한가운데 오아시스가 있고 낙타 몇 마리가 지나간다고 수첩에 적어가지고 왔는데, 그때의 기억이 아직까지 생생해요. 사진만 찍어온 다른 여행지의 기억은 사라지고 없는데 말이죠. 요즘은 휴대폰이 손에 익어 잘 안 하는데, 일부러라도 그런 습관을 되살리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Q : 앞으로 에세이 같은 걸 내볼 생각은 없나요

그저 주변 친지들한테 선물할 수 있는 정도의 제 책을 쓰고 싶다는 소망은 있어요. 그런데 요즘은 SNS에 몇 자 적는 것도 힘들어요. 얼마 전에 LG 프라다폰이 예뻐서 샀는데 쓰다보니 불편해서 짜증이 나는 거예요. 비판 글을 써서 SNS에 올렸더니, 1분 만에 회사에서 전화가 왔어요. “너 미쳤냐. 그 사람들이 네 광고주가 될 수도 있다”라고요. 바로 내렸죠.



뭘 한 줄 쓰려고 해도 사회적 시선이나, 가족, 남편, 부모님에 대한 생각으로 망설이게 돼요. 원래 글은 행복한 상태보다는 고민이 있을 때 더 잘 써지지 않나요? 저는 그렇거든요. 그래서 제가 글을 쓰면 남편이 ‘네 인생이 행복하지 않구나’라고 생각해요. 남편은 행복하지 않은 순간이 없는 사람이라 그런지 저의 내면적인 고통, 꼭 삶이 힘들지 않아도 인간으로서 느끼는 불행도 있는 법인데, 그런 것은 잘 이해하지 못하더라고요.



Q : 올해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개인적인 다짐이나 실천 목표가 있다면 알려주세요

일을 더 벌이고 싶진 않아요. 지금 일만으로도 체력적으로 힘들고 저만의 시간이 없거든요. 더 유명해지고 싶지도 않고요. 그저 지금 하고 있는 것들을 잘 유지하는 게 직업적 목표예요. 그리고 가정적 목표로는 2세 계획이 있어요. 세탁기 광고를 찍으며 느꼈어요. ‘아, 이 아이가 내 아이라면…(웃음).’



진중권은…

서울대 미학과를 졸업하고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언어구조주의 이론을 공부했다. 탄탄한 논리, 정확한 근거, 조롱과 비아냥거림, 풍자와 위트를 뒤섞은 신랄한 문장 등 100가지 무기로 현상을 해석하는 우리나라 톱 논객으로 꼽힌다. 그러면서 비행기 조종이 취미이고, 고양이 루비를 애지중지하는 감성 로맨티시스트이기도 하다. 여성중앙에서는 ‘시대의 여자’들을 만나 섹시한 인터뷰를 펼쳐보인다. 날 선 독설과 ‘루비 애비’ 특유의 감성을 넘나드는 인간 해석이 관전 포인트다.











기획 조영재

사진 박지홍(cao studio)

여성중앙 2015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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